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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인형 Jan 21. 2019

생동

prologue _ 미혼자의 시선

바쁜 사람들은 출근이나 등교를 하고 한가해진 아파트 단지를 슬렁슬렁 산책하다 보면, 이전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싱싱한 아름다움에 자꾸 눈길을 빼앗긴다. 그것은 부드럽고도 탄탄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는, 아기엄마들이다.


그녀들은 아마 흔히 말하는 젊은 여자로서의 ‘전성기’는 지난 나이일 것이다. 화장을 두껍게 입히고 구두 굽을 딸깍거리며 까다로운 직장 상사 앞에 서 있게 한다면 번잡한 지하철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피로감 짙은 평범한 여성의 얼굴일 것이다.


반면 오늘 그녀들은 버둥거리는 아이를 먹이고 입히느라 선크림조차 바르지 못하고 맨얼굴로 정신없이 집을 나섰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들이 품고 있는 아기의 순백의 피부로부터 전염된 걸까.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그들의 맨얼굴에서는 뽀얀 광채가 난다. 그녀들의 분주한 손놀림은 정확하고도 정에 겨워 그녀들의 손길이 닿은 곳마다 작은 별빛이 반짝이는 것 같다.


아기엄마들이 함께 까르르 유모차를 밀고 지나가면, 길도 숲도 살아나 반짝거린다.      




한편 아기아빠들은 저녁이나 주말 놀이터에서 아기와 아기엄마 옆에 서서 온순한 표정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자신의 행복을 받아들이는 데에 오롯이 집중하고 있는 듯한, 조용한 표정이다. 


결혼하지 않은 같은 연배의 남자들은 아직도 연애라는 게임을 위해 눈을 희번덕거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기와 아기엄마의 옆을 지키고 있는 아기아빠에게서는 그런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부드러움과 여유가 배어나온다.


그들의 헐렁한 반바지와 꾸밈없는 더벅머리에서, 그들이 가진 것이 자신의 몸뚱이뿐 만은 아니라는 엄숙한 기쁨 같은 것이 묻어나온다.      




그들 세계의 중심에는 반짝이는 한 생명이 있다. 


자신을 숭배하는 젊고 아름다운 엄마와 아빠를 가진, 부유한 영혼이다. 아직 아무 것도 가져본 적이 없어, 지금 소유하게 된 이 세계는 완벽한 천국이고 눈부신 감격이다. 이 작은 존재는 자신의 하얀 웃음의 파장이, 자신을 둘러싼 이 세계를 뒤흔들 만큼 강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흠결 없는 그네들의 피부와, 손발목의 얇게 접힌 아기살이 인위의 때가 묻지 않은 우주의 신비를 드러낸다. 아직 균형을 체득하지 못해 멈칫거리는 아장걸음은 당연했던 세상의 논리들을 낯설게 하는 파격의 묘미를 보여준다.



      



너무나 당연한 듯 이 눈부신 작은 생명을 들어 올려 무릎에 앉히는 것은 그들의 중년의 어머니다.


자식의 자식을 무릎에 앉히는 것이 그녀의 삶에서도 처음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손짓은 당연하고 익숙하다. 그동안 많은 것들을 받아들여 보았기 때문에 지닐 수 있는 삶의 손때 때문이다. 


그녀가 그녀의 자식의 자식을 안음으로써, 이 작은 생명과 그의 아름다운 젊은 부모는 모든 것이 제자리에 놓인 안정된 세상에 자리를 편다. 


염색머리 사이사이로 자기주장을 포기하지 않는 흰 머리카락들과 다중초점의 현명한 안경테가 그들의 세계를 비호한다. 그녀와 그녀의 자식과 자식의 자식이 생명의 선순환 속에서 근심 없이 살아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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