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인형 May 12. 2019

침범

육아와 사색_ 5

임신해보면 ‘배가 남산만 하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임신 중반 이후로는 거울을 볼 때마다 '배가 이보다 더 커진단 말이야?’라고 중얼거릴 만큼 계속해서 배가 부풀어 오른다. 임신 후반에 이르면 내 몸에 거대한 배만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스스로 이러한 변화를 체감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봐도 변화가 확연해 시선이 배로 먼저 간다는 점에 있어서도 ‘남산’이라는 칭호를 얻을 만하다. 남산만 한 배가 보여주는 ‘임산부’라는 정체성은 너무도 강력해서 원래 나의 정체성도 가릴 수 있다. 누구를 만나도 나라는 사람보다는 이 커다란 배, 뱃속의 아기, 임신 사실에 주목하고 그에 관련된 이야기를 주로 나눈다.      


뱃속의 아기는 아직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갖는다. 모체인 나야 물론이고, 남편과 부모님, 친척들도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기대하며 흥분해 있다. 이 아기가 태어남에 따라 그들은 모두 새로운 호칭을 얻게 될 것이다. 대중교통 등 공공장소에서 내 부른 배를 보고 선뜻 자리를 양보하거나 짐을 들어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내 배에 향후 이 사회의 일원이 될 어떤 사람의 기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뱃속의 아기는 나만의 소유가 아니며 아기를 둘러싼 가족과 사회에 속해 있음을 점차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아기의 존재가 자명한 만큼 아기를 둘러싸고 있는 자궁과 살가죽이 내 것임도 분명하다. 어떤 사람들은 그 사실을 완전히 잊는 것 같다. 그리 가까운 사이도 아닌 사람이 내 눈도 마주치지 않고 배를 향해 인사하더니 아기를 만지듯 배를 쓰다듬는 식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예민하게 군다 소리를 들을까 싶어 목 뒤로 불쾌함을 삼키지만, 이후로 사람들과 마주할 때 언제 배에 손이 다가올지 몰라 신경이 쓰이는 게 사실이었다. 이전의 모습과 많이 달라졌다 해도 내 피부, 내 복부가 공공의 것으로 취급되는 건 완전히 적응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출산 후에는 사람들의 관심사가 배에서 가슴으로 옮겨간다. 생각해보면 정말 신기한 일이긴 하다. 가슴에서 먹을 게 나오다니. 심지어 신생아는 이 젖만 먹고 몸무게가 두 배, 세 배 되도록 자라난다. 경이로운 자연의 섭리다. 하지만 이 젖줄의 숭고함을 지나치게 의식한 탓인지, 보는 사람마다 엄마의 가슴이 ‘젖’의 기능을 잘하는지 걱정해준다.      


Photo by Jordan Whitt on Unsplash


여자의 가슴은 속옷이 따로 있을 정도로 매우 개인적인 신체 부위인데, 아이를 낳자 타인들과 공유하는 영역으로 신속히 탈바꿈했다. 나는 아기와 가슴을 공유하는 것만 상상했지, 부모님이나 기타 친인척과 내 가슴의 안위를 공유하게 될 줄은 몰랐다. 자신이 아기를 낳고 길러본 전문가라 여기는 동네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의 참견은 더욱 가관이다. 젖 잘 나오느냐, 젖 잘 먹느냐, 언제 먹느냐 지금 젖 먹여야 하는 것 아니냐 등등 세세히도 묻고 따진다.      


모유수유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모유수유가 ‘어렵지만 다들 하는 일’인 줄 알았다. 그러나 직접 경험해보니 ‘드물게 성공하는 일’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됐다. 모유수유를 고수하다 보면 여러 모로 엄마의 문제 해결 능력을 시험하는 일에 부딪치는데, 그중 한 가지가 나의 사적 영역을 침범하는 이들에게서 나 자신을 보호하고 그런 침범적인 사건들을 감내하면서도 모유수유를 지속하는 일이다. 


모유수유에 익숙해지고 수유 텀이 길어지면 조금은 무던해지기를 바라지만, 개인 공간(personal space)에 다소 민감한 나는 언제든 가로로 또는 세로로 열어젖혀 젖가슴을 내놓을 수 있게 만들어진 수유복을 입는 생활이 끝내 편안해지지는 않을 것 같다. 늘 현관문을 열어놓고 사는 기분이랄까. 

매거진의 이전글 날이 밝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