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갈을 꿈꾸며

육아와 사색_ 7

by 나무인형

신기하게도, 나를 위한 시간이 조금씩 확보된다. 보석이의 밤낮이 정착되며 저녁 8시경에 이른바 ‘육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기는 여전히 자다가도 3시간 간격으로 먹기 때문에 완전한 퇴근은 아니지만, 밤잠을 자다 배가 고파서 깬 아기는 배를 채워주면 잠투정 없이 조용히 다시 잠들어주기 때문에 적어도 재우는 스트레스는 없다. 눈도 안 뜨고 꿈꾸듯 꿀떡거리며 젖을 먹는 보석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책장을 넘기거나 핸드폰으로 할 일을 하다가 잠든 보석이를 침대에 눕히고 나면 내게 확실한 2시간이 허락된다. 아기의 적정 수면시간이 성인 수면시간의 두 배 가까운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보석이가 잠들면 밀린 설거지, 젖병 소독, 욕실 정리, 빨래, 간단한 요리 등 서둘러 밀린 집안일을 한다. 집안일을 빨리 마칠수록 내 시간이 늘어나니 빠르고 정확하게 집안일을 마치기 위해 초능력자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뛴다.


보석이가 태어나기 전인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시간이 범람하는 생활에 익숙했는데, 신생아 돌보기에 좌충우돌하다 모처럼 나만의 시간을 가지려니 어색하다. 급류에 휩쓸려 정신을 잃고 떠내려 오다 간신히 뭍에 다다른 생존자처럼, 금세 급류가 나를 또 덮칠까 봐 두리번거리고 있다. 아기 울음소리 환청이 들려 보석이가 자는 방 앞을 기웃거리고, 고개를 돌릴 때마다 남아있는 집안일을 발견하고 손을 뻗는다. 크지도 않은 살림인데 바뀐 계절 옷 정리나 생필품 구입, 가계부 기입 등 자잘한 할 일이 늘 끝이 없다. 잠잘 시간도 모자란 판에 눈에 띄는 모든 집안일을 다 해결하려고 들면 나를 위한 시간 따위 절대 가질 수 없다.


육아가 힘들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지만 그중에서도 나 자신이 소멸되는 듯한 느낌이 가장 힘들다. 엄마로서 다시 태어나는 압도적 경험이 아름답고 경이롭기는 하나,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만들어왔던 나 자신이 너무 과격하게 변화하는 것에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정신과 신체 모두가 '엄마'로의 기능에 최적화되었으며, 이전에 내가 좋아하는 음식, 내가 즐겨 입는 옷, 내 개인 시간에 자주 하던 활동들이 갑자기 박탈되었다. 원래 나라는 사람이 어떠했는지, 벌써 수십 년이 지난 기억처럼 희미하게 느껴진다.


무력한 아기는 생존을 위해 엄마와 전적인 동일시를 필요로 한다. 갓난아기는 '나'와 타인, 즉 엄마를 구별하지 못하는 상태로 엄마가 아기의 자아가 되어주어야 한다. 아기의 불쾌와 유쾌를 알아채고 감정을 읽어주며,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엄마의 전자동 시스템 속에서 아기는 안온한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엄마는 아기와 전적인 동일시를 해서는 안 된다. 아기에게 유능한 자아를 빌려 줄 수 있으려면 오히려 엄마 고유의 자아가 확고하고 건강해야 한다. 아기에게 엄마가 되어줌으로써 나 자신을 다 잃는다면 오히려 건강한 엄마의 역할을 지속하기 어렵다.


내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는 여러 요소들이 있겠지만 육아와 가사에 치이는 생활을 하면 할수록 '글쓰기'에 목이 마른다. 내용이 꼭 훌륭하거나, 다른 사람이 보고 인정해주는 글이 아니어도 좋다. 아기에게 나를 온전히 희생하는 시간에서 잠시 떨어져 나와 멀찍이서 내 영혼을 관찰하고 스케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투자다. 보석이의 엄마가 되어가는 이 유일하고도 특별한 경험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으려면 치열하게 기록해야 한다. 수시로 핸드폰을 열고 수첩을 열어 스쳐가는 생각들을 사로잡아 두자. 육퇴를 하고 시급한 집안일을 마치고 나면 나에게 1시간 정도 글을 쓸 시간을 주자. 가물어 있는 정체성에 물을 주는 행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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