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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인형 Jul 07. 2020

엄마와 아빠, 세상을 절반씩 나누어가지다

육아와 사색_38  아기의 '엄마', '아빠' 이름표 붙이기 

 일주일 전부터 보석이는 분명하게 '엄마'와 '아빠'를 부른다. 울고 칭얼대면서 엄마를 찾던 것과 명확하게 "엄마!"라고 부르며 나에게 달려와 안기는 것은 많이 다르다. 아이가 나를 엄마라고 불러줌으로써 나는 더 깊이 엄마가 되었다. 밀려있는 설거지에 파묻혀 있다가도 아이의 명랑한 "엄마?"소리가 등 뒤에서 들리면 당장 고무장갑을 벗고 아이를 안아주고 싶다.


 말할 수 있는 단어가 몇 가지 더 있지만 아직 '엄마'와 '아빠'처럼 자유자재로 목적과 쓰임에 맞게 구사하는 말들은 아니다. 귀여우니까 잠깐 열거하고 지나가면 극도로 괴로운 상황 - 머리 감을 때, 병원에서 진찰받을 때 - 절박하게 "끝! 끝!"하고 외친다거나 정말 아프게 부딪치면 엉엉 울며 "아파! 아파!"라고 말하는 정도다. 단어의 의미를 인지하고 선별해서 사용한다기보다 고통과 통증을 호소하는 본능적인 외침에 가까운 용도의 말 같다. 


 반면 '엄마'와 '아빠'라는 단어는 보석이의 의도 이상으로, 다소 과하게 사용되고 있다. 집안의 모든 물건에서 엄마나 아빠가 연상되는 부분을 발견하고 하루 종일 엄마, 아빠를 외치는 것이다. 옷방에 가서 아빠의 바지와 셔츠들을 하나씩 꼽아가며 아빠, 아빠? 하고 부르고, 내 핸드백을 뒤져 지갑, 파우치를 꺼내 엄마, 엄마 외치는 식이다. 이게 왜 엄마이고 아빠인지 알 수 없는 공용의 물건도 많은데, 보석이의 시선에서 엄마나 아빠 중에 조금이라도 더 사용한 물건이면 거기에 따라 이름이 정해지는 것 같다. 이를테면 소파는 아빠, CD 플레이어의 리모컨은 엄마다. 때로는 단 한 번의 장면이 강렬한 인상을 남겨 엄마와 아빠 중 하나의 이름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장난감 틈새에 낀 먼지가 잘 닦이지 않아 면봉을 가져와 닦는 날 유심히 본 이후로는, 면봉을 볼 때마다 엄마? 하고 부른다. 


 하루 종일 엄마, 또는 아빠로 우리 집이 양분되는 걸 보고 있자니 고등학교 때 잠깐 배운 프랑스어가 떠올랐다. 프랑스어는 모든 명사를 남성형과 여성형으로 나눈다. 해는 남성 명사인 Le soleil, 달은 여성명사인 La lune 같은 식이다. 프랑스어뿐 아니라 독일어, 러시아어 등 '문법적 성'을 갖고 있다. 언어가 발생하는 시기에 그만큼 남성과 여성이라는 구분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이런 언어가 탄생했을 것이다. 


 보석이의 세상에서는, 엄마와 아빠가 압도적으로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제일 먼저 '엄마'와 '아빠'라는 단어를 구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세상의 다른 모든 사물들은 이 두 단어를 통해 명명되고, 경험된다.


 보석이의 세상에 반절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엄마라는 존재가 된 나는 덩달아 완전하고, 거대한 존재가 된 기분이 든다. 나의 손끝이 잠시 닿은 어떤 물건에도 '엄마'라는 이름표가 달리는 걸 보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다.  


Photo by Andrea Piacquadio from Pexels


 보석이를 낳고 그동안은 내가 조건 없이 한 사람을 이토록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이제부터는 내가 조건 없이 누군가에게서 이토록 사랑받을 수 있구나를 알게 되는 시기인 모양이다. 물론 보석이는 아직 나를 사랑한다기보다 물과 공기처럼 필요로 한다는 게 더 어울리는 수준이지만, 울던 아이가 나에게 안기자 비로소 편안하게 잠들 때, 어설픈 연기와 개그로 놀아줘도 일류 연기자, 일류 개그맨을 보는 듯 몰입하고 깔깔거리며 웃을 때, 내가 먹어봐도 그저 그런 맛의 음식을 산해진미 대하듯 먹어치울 때, 나는 여태까지 겪어보지 못한 깊은 사랑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보석이를 재우다가 잠든 듯하여 토닥이던 손을 살짝 뺐더니 서둘러 내 손을 끌어다가 다시 제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가만히 누워 아이의 쌕쌕이는 숨소리와 나를 붙잡은 보드라운 손을 느끼며 오늘의 행복을 어떻게 기록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으니 어느덧 아이가 내 손을 스르르 놓는다. 작은 입술을 헤 벌린 채 잠든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다짐했다. 내 작은 아가야, 너에게 부끄럽지 않은 반쪽의 세상이 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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