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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is libris Jun 08. 2020

첫 문장으로 사랑에 빠지지만, 읽으면서 완성된다

설국

집 거실에는 책을 읽는 의자가 있다. 거실 한쪽 면을 차지하고 있는 창문을 비스듬하게 등지고 있는 흔들의자에서 나는 한두 시간, 조금 길게는 세네 시간씩 매일 책을 읽는다. 정남향으로 나 있는 창 앞은 하루 종일 밝고, 문을 열어놓으면 시원한 바람도 들어와서 책 읽기에 딱 좋다. 차 한 잔 가져다 놓고 의자를 앞뒤로 흔들며 책을 읽는 것이 요즘 하루의 시작이고 끝이다.


얼마 전에 흔들의자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 첫 문장을 읽고는 책을 덮어 버렸다. 그리고는 책을 침대 베개 옆에 놓아두었다. 책에 대한 서평이나, 여타 정보는 없었지만 왠지 이 소설은 밤에 몰래 침대에서 읽어야 할 것 같았다. 소설, 특히 고전 문학을 읽을 때는 책에 대한 정보를 전혀 찾아보지 않는다. 책에 대한 소개나 감상평, 줄거리 같은 책에 관해 어떤 정보도 찾아보지 않고 책을 읽는다. 고전은 그만한 믿음이 있다. 고전을 읽을 때는 이런 정보들이 오히려 감상에 방해가 될 뿐이다. 책을 다 읽고 찾아봐도 늦지 않는다. 결국 밤에 침대에서 비밀스럽게 소설 《설국》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비밀스럽고 신비스러운 소설이었다.


문학의 첫 문장이 제법 많이 신경 쓰는 부분이라고는 들었지만, 환한 낮이 아니라 어두운 밤에 읽고 싶게끔 하는 책은 처음이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그 유명한 김훈의 《칼의 노래》 첫 문장을 만났을 때는 격정의 시기를 보낸 섬들에 찾아온 새로운 봄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떤 내용이 앞으로 나올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소멸'이라는 단어가 굵게 힘이 실려 있는 듯 느껴지기까지 했다. 여전히 꽃이 피고 지는 무심함을, 바다에 결박된 버려진 섬의 모습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책을 읽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 피는 숲에 저녁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 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싶었다. 뭍으로 건너온 새들이 저무는 섬으로 돌아갈 때, 물 위에 깔린 노을은 수평선 쪽으로 몰려가서 소멸했다.


김훈 《칼의 노래》





반면 책을 사놓고 마음의 준비가 오래 필요한 책도 있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첫 문장을 읽고는 책의 혼탁함을 받아들일 자신이 없어, 책장에 꽂아 두었다. 한창 공부를 하면서 밝은 미래를 꿈꾸던 시기였기에 의식적으로 삶의 무거움은 피하고 싶었다. 대신 앞으로 나아가기에 간편한 차림이 책들이 필요했다. 십여 년이 지나고 책의 첫머리를 다시 읽었을 때, 삶의 어둠과 허무함, 그리고 절망감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제야 책을 읽을 준비가 다 된 것 같았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는 동북 지방의 시골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꽤 자란 다음에야 기차를 처음 보았습니다. 정거장에 있는 육교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도 그것이 선로를 건너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전혀 생각 못하고 다만 그것이 정거장 구내를 외국의 놀이터처럼 복잡하고 즐겁고 세련되게 만들기 위해서 설치된 것이라고만 믿었습니다. 그것도 꽤 오랫동안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첫 문장이 되는 것일까? 알베르 카뮈 《이방인》에서는 책을 시작하는 한 문장으로 주인공의 모든 것을 알 것만 같았다. 남들과는 다른, 지나치게 솔직한, 그리고 자신만이 전부인 것 같았다. 요즘 같아서는 남들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소시오패스라는 딱지를 붙여주어야 할 것 같은 시작이다. 하지만 그 유별남 때문에 이후 그에게 일어날 어떤 사건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 그것만으로써는 아무런 뜻이 없다. 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알베르 카뮈 《이방인》





오늘도 거실에서 책을 읽었다. 제법 날씨가 더워졌기에 커튼을 열고, 창문을 열어놓고 한참 동안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오랫동안 읽던 책을 읽기 시작한 그 자리에서  마무리 지었다. 책을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니 첫머리의 뜻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소설의 첫머리를 이해한 것이다. 우리는 소설의 첫 문장을 기억하지만, 그 문장에 뜻을 부여하는 것은 그 책의 나머지 부분이다. 그 첫 문장이 빛날 수 있는 것은 뒤따라 나오는 수많은 문장들 때문이다. 첫 문장으로 사랑에 빠지지만, 책을 읽으면서 사랑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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