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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is libris Oct 13. 2020

오랜만에 동네 서점에 들렀다

코스모스

오랜만에 동네 서점에 들렀다. 시장에서 채소와 과일을 조금 사고 돌아오는 길에 책 냄새가 맡고 싶었다. 서점 앞을 자주 지나다녔지만, 서점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간 적은 처음이다. 서점은 주로 대형 서점을 이용했다. 일명 책 구경은 왠지 대형 서점에서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마도 장서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이왕이면 책이 많은 곳에서 책을 고르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눈에 잘 띄는 매대에 놓여 있는 책들을 살펴보느라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한다는 게 함정이지만.





대부분의 대형 서점은 햇빛도 들지 않는 건물 지하에 위치하고 있다. 요즘에는 서점 인테리어도 잘 꾸며져 있고, 앉아서 책을 읽을 별도의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들고 빈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싶지만 유동 인구가 많은 도심지역에 위치한 서점 안에서 책에 집중하기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하루는 대형 서점 몇 곳을 들릴 일이 있었다.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저녁에 다시 한번. 서로 다른 지점을 들렀지만 거의 같은 책들을 두 번 세 번 보고 돌아왔다. 스타벅스는 세계 어디를 가나 커피 맛이 비슷하고, 미국의 햄버거 맛을 한국에서 즐길 수 있는 프랜차이즈들이 즐비하지만, 책까지 같은 맛을 내는 책들을 읽어야 한다는 사실이 피곤하게 느껴졌다. 대형 서점은 더 이상 다양한 입맛을 만족시켜주는 시골 장터를 대신해주지 못했다. 인터넷 미리보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몇 페이지 더 볼 수 있다는 차이밖에 없었다.





다시 동네 서점으로



어렸을 때 친구들과 약속 장소로 일컬어지던 동네 서점을 이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극히 일부는 아직까지 그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지만 이전의 영광은 사라지고 명목만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전통 시장 근처에 동네 서점이 하나 있는데 초중고 학습지와 문제집을 주로 판매하고 있다. 그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일도, 학생들로 북적이는 일도 없다. 


문을 열고 서점 안으로 들어갔더니 나이가 지긋하신 주인아저씨께서 힐끗 쳐다보신다. 학생 같아 보이지도 않고, 아이가 학교에 다니기에는 조금 어려 보이는 애매한 나이의 손님이 서점에 들어서는 일은 흔하지 않은 일인 듯 보인다. 각종 문제집이 가득 놓인 매대를 지나 구석에 작게 마련된 주인아저씨의 추천 도서(?)를 발견했다. 베스트 셀러들이 대부분이지만, 서점 주인아저씨가 직접 골라놓았을 법한 책들도 몇 권 눈에 들어온다. 이 집 아저씨는 역사에 관심이 많으신 듯하다. 특히 동양 역사와 관련된 책들이 여러 권 놓여 있다.




요즈음 세계의 대형 도서관들은 보통 수백만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다. 이 소장 자료 중에서 문자로 적힌 기록은 정보량의 10^14, 즉 100조 비트 정도이고, 그림에 실린 정보는 이보다 많은 1000조 비트에 이른다. 이것은 유전자 정보의 약 1만 배, 두뇌 정보의 대략 10배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다. 책을 1주일에 한 권씩 뗄 수 있다면 한 사람이 평생 동안 읽을 수 있는 책의 총수는 수천 권에 이른다. 그렇지만 이것은 현대 도서관이 소장한 장서의 기껏해야 1,000분의 1에 불과한 작은 양이다. 그렇다면 정말 중요한 문제는 몇 권을 읽는가보다 어떤 책을 읽는가에 달려 있다. 책에 기술할 수 있는 정보는 그 정보가 태어날 때부터 완전히 확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며 새로운 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정보의 내용 역시 점차 수정돼야 한다. 동시에 정보는 변하는 세상과 조화를 이루도록 변신해야 한다. 이것이 정보가 갖는 속성이다. 


칼 세이건 《코스모스》 




동네 서점 '푸르스트의 서재'



사양산업이라고 여겨졌던 동네 서점이 다시 하나둘씩 문을 열고 있다. 대형 서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낭만으로, 주인장 사심이 잔뜩 들어간 책들로 채워진 공간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을 위한 서점이 생기고, 커피와 차에 관한 책을 모아놓은 공간, ISBN조차 찍혀있지 않은 독립 출판물만을 다루는 곳들이 생겼다. 이런 모습만 보면 마치 파리의 서점 문화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 같다. 파리에서 동성애 관련 책들로 가득한 서점을 발견하고는 한참을 그 앞에 서서 들어갈까 말까를 고민했던 적도 있다.


점점 무엇을 읽을까 고민할 시간도 줄여야 할 것 같은 시대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누군가의 추천 도서를 읽어왔기에 책을 고르는 게 피곤하다고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프랜차이즈 햄버거에서 느낄 수 없는 맛을 동네 나만의 맛집에서 기대하듯 획일화된 추천 도서보다는 내 취향에 맞는 책을 찾게 된다. 발품만 조금 팔면 자신에게 꼭 맞는 책들이 가득한 보물창고 같은 서점을 만나기도 한다. 이런 서점 한 곳이면 평생 읽을 만큼 많은 책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한 곳이면 충분하다.



왜 책을 많이 읽어야 하지?



나는 가끔 책도 편독하면 안 될 것 같은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을 느낀다.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한다고 교육을 받아서인지, 왠지 책도 골고루 읽어야 할 것 같다는 원인 불명의 부담감에 쌓인다. 그래서 이따금씩 의식적으로 전혀 관심 밖의 책을 산다. 평소에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주제에 대해서 읽고, 전혀 생소한 내용의 책을 고를 때도 있다. 너무 어려운 수준의 책을 골라 무슨 무슨 의미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적도 있다. 이런 책들을 읽을 때면 간혹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 지루하기에 짝이 없다. 이왕 읽기 시작했으니 인내심을 갖고 며칠에 걸쳐 책을 모두 읽는다 하더라도 책을 덮는 순간 머릿속에는 남는 게 거의 없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비록 편독일지라도.


알쓸신잡에선가? "사람들은 왜 책을 많이 읽으려고 할까?"라는 질문이 나왔다. 명확한 답이 뒤따라 나오지는 않았지만 무작정 많이 읽는 것이 좋다는 나의 인식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진정한 친구는 한 명이면 충분하다는 말처럼 어쩌면 진정한 책은 한 권이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깊이 읽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지 않을까? 대뇌 피질에 잠시 올려놨다가 없애버릴 독서는 왠지 슬프다.


책을 굳이 많이 읽으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위로가 필요할 때 위로가 되는 책 한 권이면 충분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방황하고 있을 때 자신을 잡아줄 책 한 권이면 충분하다. 골고루 읽지 않아도 되고, 모두가 읽는다고 따라서 읽지 않아도 괜찮다. 어쩌면 책은 읽는 것보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책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지도 모른다.


술을 마시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시대, 오늘 주문하면 내일 집으로 책이 배달이 되고, 정보 전달이 아니라 위로와 공감이 책의 주된 기능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책 자체보다는 책이 있는 공간에서 낭만을 느끼고, 책을 읽지 않아도 위로와 재미를 찾는다.


이제 가을이다. 꼭 가을에만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동네 서점에서 마음에 드는 주인장 추천 도서 한 권쯤은 펼쳐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글자들로 가득한 한 페이지도 제법 괜찮은 인스타 피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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