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드루얀 《코스모스》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에서 소개된 바빌로프와 동료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옮겨 적어 놓는다.
1940년 8월 5일 저녁, 우크라이나 서부의 현장 연구소에 까만 차가 와서 바빌로프를 태웠다. 그들은 그를 얼른 모스크바로 데려가 비밀경찰인 인민 위원회(NKVD)가 쓰는 루뱐카 건물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감방에 가두었다. 바빌로프는 한 번에 10시간, 12시간 내리 신문을 당했다. 보통 한밤중에 그를 깨웠고, 고문이 행해졌다. 그런 식으로 400회 넘게 1,700시간 동안 취조당한 끝에 그는 무너졌다. 1941년 가을, 바빌로프는 모스크바 부티르카 교도소의 사형수 감방에서 몇 달 동안 처형일을 기다리며 시들어 갔다.
바빌로프의 충성스러운 동료들은 지하 저장실에 모였다. 그들은 추위에 떨면서 바빌로프라면 자신들이 어떻게 하기를 바랄까 추측해 보았다. 그들은 그의 생사조차 몰랐지만, 그래도 그라면 했을 법한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1941년 크리스마스, 레닌그라드는 히틀러의 군대에 포위되어 있었다. 이미 100일 넘게 포위되어 있었고, 4,000명이 굶어 죽었다. 히틀러는 점령은 시간문제라고 여겼다. 기반 시설이 모두 무너져 내린 도시에서 섭씨 -40도의 고통을 오래 견딜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몇 달이 흘렀다. 식물학자들은 갈수록 여위었고 추위로 파랗게 질렸다. 그들은 초를 켜고 큰 탁자에 둘러앉아서 씨앗, 견과, 쌀을 분류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마치려고 애썼다. 하얗게 입김이 나왔다.
1943년, 다시 크리스마스가 왔다. 나치 친위대의 특공대는 아직도 연구소 급습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모래주머니를 두둑하게 쌓고 그 위에 포를 올려둔 채 기대어 쉬었다.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포위 상태에서 세 번의 크리스마스를 나며 굶어 죽어 갔다. 이즘에는 도시 인구의 3분의 1이 아사했다. 자그마치 80만 명이다.
바빌로프의 보물을 지키는 그들도 굶주림에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침침하게 밝혀둔 냉랭한 연구소에서 책상에 앉은 채 죽었다. 곁에는 땅콩, 귀리, 완두콩 표본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명예가 그것을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모두가 굶주림에 쓰러져 갔다. 그런데도 컬렉션에서는 쌀 한 톨 사라지지 않았다.
식물학자들은 왜 쌀 한 톨 먹지 않았을까? 왜 2년 넘게 매일 굶어 죽어 나가고 있던 레닌그라드 시민들에게 씨앗과 견과와 감자를 나눠줄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여러분은 오늘 무언가를 먹었는가? 만약 먹었다면, 그 음식 중에는 아마 그 식물학자들이 죽음으로 지켜냈던 종자에서 유래한 음식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바빌로프와 동료 식물학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미래가 그토록 손에 잡힐 듯하고 귀중한 현실로 느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앤 드루얀 《코스모스》
바빌로프와 동료들은 고단하게 삶을 마침 불운의 사람들이었을까? 아니면 전쟁통에서 목숨을 내놓을 수 있을 만큼 중요하고 가치 있는 (씨앗을 지켜낼) 의무와 책임을 만난 행운아였을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전시 상황에서 자신에게 의미 있는 무언가는 그들에게 목숨과도 맞바꿀 수 있을 만큼 중요해진다. 단순히 지켜야 할 의무나 해내야 할 과제 이상의 가치를 갖고, 그 가치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건다. 처절할수록, 그리고 간절할수록 꿈에 대한 의존도는 높아진다. 참혹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꿈이고, 해야 하는 일이고, 만들어 가야 하는 미래다.
남들은 일주일은 들여야 하는 양의 논문을 하루 만에 읽고 교수님께 말씀드렸더니 칭찬과 함께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고 의례 반문을 하셨다. 예상 밖의 질문에 잠시 생각하고는 "성공하고 싶어서요.”라고 대답했다. 성공이 정확하게 어떤 모습인지도 몰랐지만, 아무것도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처절하게 벗어나고 싶었다.
간절함은 비참함을 만든다. 손에 잡힐 듯한 꿈을 포기하지 못해 몇 년을 어두운 단칸방에서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몸이 아픈 것도 속상하고, 쉬는 것도 불안하다. 합격이라는 목표를 앞에 두고 끊임없이 자신을 소모한다. 소모하지 않고, 희생하지 않으면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아서이다.
바빌로프와 동료 식물학자들은 행운아였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냥 행복할 수 없는 이유는 글에서 그들의 처절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숫자로, 뉴스로, 이야깃거리로 청춘들의 소식을 듣지만 삶을 외줄 타기 하듯 하루를 보내는 청춘들은 이미 전시만큼 처절하다. 그들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안정적인 재정적인 지원이 아닐지도 모른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말 한마디와 힘들면 함께 쉴 수 있는 여유가 더 필요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