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견례

우리의 인생

by Rocky Ha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양가의 어른들을 모시고 정식으로 인사도 드리고 결혼의 허락도 공식적으로 받는 것을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상견례’라고 한다. 나는 상견례를 두 번 했다. 그러니까 결혼을 두 번 하게 된 것이다. 내 나이 때의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첫 번째 상견례는 양가의 부모님을 모시고 정갈한 일식집에서 했다. 양가 어른들은 품위를 지키려 애쓰시며 덕담을 나누었고 20대의 철없던 나는 이미 신랑 될 사람의 집에 인사도 다녀왔고 또 그의 어머니와 큰 형님을 여러 번 만났던 터라 긴장감 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 그냥 어른들끼리는 만난 적이 없으니 결혼 전에 서로 인사를 나누는 의례적인 절차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별 까다로운 것도 없었고 특별한 사건도 없어서인지 23년이 지난 지금에는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두 번째 상견례는 사뭇 달랐다. 혼주가 부모님에서 자녀들로 바뀐 것이다. 그는 이혼했고, 나는 사별을 했다. 이 결혼이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나는 우리의 결혼을 어떻게 아이들에게 알릴 것인지에 대해서 오랫동안, 여러 번에 걸쳐 의논했다. 그의 자녀는 딸과 아들로 20대의 성인들이고, 나의 아들도 스물세 살의 성인이다. 손이 많이 가는 나이도 이미 지났고, 입시가 앞에 있어서 심리적 혼란을 걱정할 나이도 분명 아니지만, 그와 나는 사뭇 조심스러웠다. 아마도 그는 어떻게 하면 그의 아이들이 엄마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 아빠를 빼앗긴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하고, 나에게는 그의 자녀들과 한 가족이 되는 데에 어려움을 겪게 하지 않을까를 생각했던 거 같다. 나 또한 나의 아들이 아빠의 자리였던 엄마의 옆자리를 낯 모르는 ‘아저씨’가 차지하게 될 거라는 것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을지가 걱정스러웠다.


그 문제뿐만 아니라 그와 나는 각자의 삶을 살면서 많지는 않지만, 자신들이 이룬 약간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던지라 우리의 재정적 ‘연합’으로 그간 상속의 최우선 순위였던 본인들이 ‘듣보잡’ 아줌마, 아저씨에게 그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는 것을 이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신경이 쓰였다. 사실 우리는 상속은 물론이고 대학을 마칠 때까지만 재정적 지원을 하고 그 이후로는 아이들에게 한 푼도 주지 않을 것을 합의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상견례를 피해 갈 어떤 방도도 없었다. 꼭 결혼하여 함께 살고 싶었다. 100세 인생이라 죽으나 사나 큰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 50년은 더 살게 되었다. 한 번의 선택으로 한 사람과 7, 80년을 함께 살면 좋겠지만 그게 웬만한 인내력과 운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힘든 세월이 된 것이다. 아직 혼자가 되어보지 않은 중년의 나의 자매들과 친구들은 말한다. 만일 혼자가 되면 자유롭게 혼자서 편하게 살 거라고, 재혼을 뭐하러 하냐고, 심하게는 재혼하는 걸 보면 남자 없이 못 사는 여자일 거라고. 그들은 내가 다시 결혼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나에게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나도 그들의 말이 영 틀린 말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의 성급하고 옹졸한 예단일 수 있다. 사람이 어떤 행동이나 결정을 내릴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각자 재혼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나의 재혼에 만족한다. 혼자 있어 보니 둘이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 건지 새삼 깨닫는다. 물론 귀찮고 거슬릴 때도 있다. 왜 안 그렇겠는가. 그러나 그쯤은 이제 여유롭게 넘어갈 수 있는 내공은 있다. 외로움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충분히 알았기 때문이다. 둘이 함께 ‘있음으로’ 좋은 게 너무 많다. 나는 사별 후, 약간의 우울증이 있어서 어딜 나다니고 새로운 것을 도전하길 망설이는데 나와는 달리 그는 에너지와 호기심이 많아서 매우 활동적이다. 그러다 보니 나도 덩달아 움직이게 되고 정보를 알아보게 되고 그간에 가지고 있던 관심들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데 적극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거 같다. 그래서 무기력하고 멍하게 시간을 보내는 일이 없게 되었다. 오히려 가끔 고단할 지경이다. 또 그와 나는 좋아하는 것이 같다. 바로 식물을 키우는 것이다. 채소도 직접 가꿔서 먹고 마당에 이런저런 나무와 꽃들을 기르는데 관심이 많다. 더 나아가 우리는 제주에 농장을 만들어 귤나무와 함께 예쁜 정원을 만들어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와서 편히 쉬다 갈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하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런 계획은 나 혼자 가지고 있던, 실현될 가능성은 매우 낮은 목표였는데 그와 함께 ‘연합’함으로써 실현의 가능성은 매우 높아졌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적지만 둘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우리는 시간 날 때 우리의 꿈을 이야기한다. 재혼하지 않았다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우리는 20대의 자녀 혼주님들을 ‘모시고’ 근사한 중국집에서 상견례를 했다. 나는 많이 긴장했다. 내 아들이 엄마마저 나를 떠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까 봐 걱정했다. 또 그의 갓 스물이 된 아들이 내가 엄마 자리를 빼앗았다고 생각하고 날 받아들이는데 힘들어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짠했다. 그러나 그건 모두 나의 기우였다. 우리 아이들은 그야말로 어른이었고 독립적이며 현명했다. 케이크까지 준비해 와서 우리의 결혼 발표를 축복해 주었고, 당신들의 인생이니 당신들의 결정을 존중한다, 그러니 본인들 걱정은 말라고 했다.




나는 나이 50이 넘어 새로운 사랑을 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리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되었다. 이것이 인생이다. 우리의 인생은 알 수가 없다. 그저 인생이 준비한 선물이 내게 당도하면 감사히 받고 성실히 임하며 가장 좋은 선물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면 된다.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인생이 좋은 선물을 준비하고 있기를 기도하고 또 그들이 성실히 그 선물을 빛낼 것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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