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자!
오늘은 결혼 후, 남편의 첫 생일이다. 그리고 어제는 결혼 후, 나의 첫 생일이었다. 우리는 결혼하여 가족을 이루기 전에 반백 년이라는 적지 않은 세월을 각자 살아왔으므로 서로가 생각하는 생일의 의미나 기대치가 다를 것이다. 그것이 어디 생일뿐이랴.
이제 결혼하여 6개월을 겨우 넘긴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온 50여 년의 차이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그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확인하고, 앞으로 서로 어떻게 물들어 갈지를 가늠하느라 하루가 다르게 전투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그 치열한 싸움의 밑바닥엔 차이를 받아들이고 끝끝내 우리의 사랑을 지켜나가리라는 믿음과 확신이 서로에게 있다. 그래서 더욱 치열하게 싸울 수 있는 것이리라.
사랑은 어쩌면 가장 어렵고 복잡한 역학관계이고 우리가 맺고 살아가는 ‘관계’라는 많은 봉우리 중에 가장 최고봉이어서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것임을 실감한다. 나의 경우는 더욱 그 과정이 고단한 듯하다.
오랜 세월 동안 타인들과의 마찰을 의식적으로 피하며 살아왔다. 10년이 넘는 세월을 공황장애라는 병과 함께 공생하면서 나름대로 터득한 살기 위한 방법이랄까. 타인과 어떤 마찰이 생기거나 오해를 받으면 그것을 적극적으로 부딪혀서 해명하거나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오해가 풀리거나 내가 원하는 결론에 도달할 수는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나의 내면은 이미 너덜너덜해진다. 그로 인해 스트레스가 온몸을 점령하면 애써 진정시켜온 신경들이 다시 교란되어 공황이 재발하는 상황을 반복되곤 했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나는 마음을 다스려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무진 애를 썼고, 오해를 받으면 해명하기보다는 ‘언젠가는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될 날이 오겠지’하는 마음으로 안 좋아진 관계를 그저 관망하는 자세로 살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관계에서 이런 일방적인 수용 자세는 건강한 관계를 오래 지속시키지 못하는 것 같다. 무조건 상대의 태도나 의견을 수용하다 보니 어느 순간 상대가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점점 무리하거나 무례한 요구가 생기고, 나의 내적 평화를 위해 눈감아 두었던 불편함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은 나 스스로 상대와 관계를 끝내고 싶다는 갈망을 갖게 한다. 그 결과 씁쓸하고 불쾌해져서 상대를 멀리하게 되고 결국 그 관계는 정리되게 된다. 그러면 나는 그 내상으로 또 수없이 많은 밤을 상실감과 후회로 뒤척이곤 하는 것이었다
다시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완벽한 타인이었던 남편과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다 보니 크고 작은 차이와 마찰을 겪는다. 때로는 이 사랑이라는 여정을 그만 포기해 버리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힐 만큼 격렬하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사용하는 단어들의 온도 차이도 크고,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그와 90년대에 대학을 다닌 나와의 문화 차이도 커서, 오해로 심하게 싸움을 벌이곤 한다. 그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과 내가 그에게 사랑받고 싶은 지점이 다르고 내가 표현하는 사랑의 크기와 방법을 그는 이해하지 못하거나 부족해한다.
예전의 나라면 그냥 묵묵히 견디거나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나의 내면 속으로 침잠해 버렸을 텐데, 요즘의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남편과 툭하면 싸운다. 차이를 다 드러낸다. 한치의 양보도 없이 거슬리는 단어 하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하나에도 다 태클을 걸고 싫은 감정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우리는 언제 끝날지 모를 싸움을 시작한다. 차이와 이견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서로 이해와 합의를 이루어내지 못한다면 그 관계가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알기 때문이다.
겉으로 우아하게 웃고 배려심 깊은 표정으로 상대의 얘기를 들어주는 건 별로 안 친한 관계만으로 족하다. 오래갈 필요가 없는 관계이니까 힘들여 나의 호불호를 드러낼 필요가 없다. 그러나 나와 가장 가까이에서 죽을 때까지 함께 할 나의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으련다. 나를 다 까서 보여주고 나도 그의 민낯을 정면으로 직시할 때, 우리는 좀 더 솔직한 사랑을 하게 될 것이다. 상대에 대한 곡해 없이, 나의 일방적 이해나 희생 없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관계, 그 위에서 이루어지는 배려가 우리의 사랑을 좀 더 단단하게 해 줄 거라고 믿는다.
그러려면 조금은 더 싸워야 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그만큼 더욱더 오래, 깊이, 진하게 사랑하게 될 것이니.
그의 생일을 맞아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어떤 물질적인 것보다도 귀한 나의 진심 어린 사랑인데, 들여다보니 또 싸우자는 거네. ‘오늘 당신 생일을 맞아 또 한판 붙어볼래, 여보?’
올해 남편과 나의 생일은 하루 차이다. 우리는 함께 생일상을 차려 엄마와 아버지를 초대하여 넷이서 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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