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먹는 밥은 '병맛'

나의 식사 파트너

by Rocky Ha










봄에 남편과 지역농산물 센터에서 오이, 호박, 가지 등의 모종을 사다가 텃밭에 심었다. 초보 농부인 남편은 주말에 향남 집에 내려올 때마다 풀을 매주 었고, 비가 적게 온 봄철에는 노심초사하며 새벽과 저녁으로 물을 주고 남편보다는 농사에 한 수 위인 나의 조언에 따라 거름이며 유황을 뿌려 정성껏 돌보았다.


오이가 막 달리기 시작하고, 가지가 한두 개 열매를 맺고, 호박 넝쿨이 울타리를 타고 뻗어 올라갈 때쯤인 6월 말에 나는 귀농 교육을 받느라 한 달여의 기간 동안 제주 집에 머물러야 했고, 막 결혼한 새 신랑인 남편도 색시가 그리워 향남 집을 팽개치고 연속 2주를 제주에 내려와서 주말을 보냈다.


지난주 목요일에 교육을 수료하고 다음 날인 금요일 아침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오후에 퇴근하는 남편과 향남 집으로 내려왔다. 우리는 그간 채소들이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해서 짐만 현관에 대충 던져놓고 텃밭으로 갔다.


세상에. 이른 봄에 남편이 정성을 많이 쏟은 것을 알아라도 주는 것처럼 채소들이 주렁주렁 열매를 매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채소들은 각자의 존재에 충실한 선명하고 건강한 색을 뽐내고 있었다. 진보라의 윤이 자르르 흐르는 가지는 어찌나 매혹적이던지. 또 토마토 열매들은 내 주먹만 하게 달려서 빨갛게 익어 있었고, 오이는 너무 익어서 노란 늙은 오이가 되어 매달려 있었다. ‘호박은 역시 조선호박’이라며 심은 호박은 아이 머리만 하게 자라서 누런 녹색 물이 들어가고 있었다. 우리 텃밭은 그야말로 풍요의 극치였다.


푸르게 우거진 콩잎과 당귀 잎사귀 한 바구니, 토마토와 호박 한 바구니, 오이와 가지 한 바구니. 아직 여느 시골 살림을 따라가려면 한참 먼 신혼의 우리 집 살림살이 중에 넉넉한 그릇은 죄다 나와 바구니 역할을 했다.

드디어 토요일인 오늘 점심. 여름에는 푸성귀 장을 보는 게 아니라는 나의 평소 소신에 딱 어울리는 건강한 밥상을 차려냈다. 내 팔뚝만 한 가지 두 개를 잡아서 불린 쌀 위에 수북이 얹어 불 위에 밥을 안쳤다. 밥이 끓는 동안 역시 또 내 팔뚝만 한 늙은 오이 두 놈 잡아서 두꺼운 껍질을 벗겨내고 고운 속살을 굵은 채로 썰어 시원하게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는 밭으로 가서 파를 두 뿌리 뽑아서 청양고추와 함께 썰어 간장과 참기름, 남편이 작년에 담아 둔 ‘양파 청’을 넣어 매콤한 양념장을 만들었다. 밥이 끓어 뜸이 드는 사이에 차가워진 오이 채를 냉장고에서 꺼내 고춧가루와 갖은양념을 넣어 조물조물 ‘노각 생채’ 완성.


가지가 듬뿍 들어간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가지 밥’과 양념장, 매콤하고 아삭한 식감의 ‘노각 무침’, 거기에 봄에 키워서 담아 놓았던 ‘열무김치’로 점심상을 차렸다. 오전에 잠깐 비가 멈춘 사이, 숨 막히게 덥고 습한 밭에서 김을 매느라 비지땀을 흘리고는 샤워를 하고 잠깐 잠이 든 남편을 깨웠다.


가지 밥에 양념장을 넣고, 노각 생채와 열무김치를 함께 넣어 쓱쓱 비벼 참 잘도 먹는다. 이쁘다. 나의 누추한 솜씨가 남편이 가꾼 싱싱한 재료를 만나 보약 같은 한 끼의 식사가 되었다.

더위로 지치는 여름. 하나뿐인 아들을 군에 보내고, 입맛 없어 겨우 밥을 물에 말아 장아찌 하나 얹어 혼자서 먹고 있을 나를 생각해 본다. 차리기도 귀찮고 먹기마저 귀찮았던 나의 식사.


배우자에게서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독립하여 자유를 즐길 중년의 나이에 웬 결혼이냐며 나 스스로 화들짝 놀랄 때도 물론 있다. 그러나 함께 먹을 때, 나는 결혼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인생에 먹는 즐거움이 반이라고 했는데 진수성찬이면 무엇을 하겠는가. 혼자서 삼시 세끼를 먹어 본 사람은 그 진수성찬이 얼마나 ‘병맛’인지 안다. 소박한 음식이라도 늘 ‘함께’ 맛있게 먹어주는 남편이 있다는 것은 분명 나의 남은 반생의 큰 축복이다.




식사는 남편 덕에 늘 맛있게 하는 걸로. 더해져만 가는 체중은? 음.... 모르는 체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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