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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cky Ha Aug 16. 2020

귤밭이 오시다




귤밭을 계약했다. 덜컥. 제주에 이주해서 세 번째 해. 첫해에는 다 지어놓은 1600평 귤밭에서 귤을 따서 팔아봤다. 사정이 생겨서 수확을 못 한다고 해서 나와 친구가 같이 따서 직거래로 팔았다. 두 번째 해에는 서울 사람들이 사서 그대로 방치한 귤밭을 무상으로 임대받아 지어봤다. 그런데 수확 철이 되니 다른 주인이 나타나 다 지어놓은 귤밭의 귤을 자기네 밭이라며 따갔다. 알고 보니 그 밭의 주인은 셋이었다. 그중에 한 사람이 다른 땅 주인들에게는 의논도 없이 자기 맘대로 우리에게 농사를 지으라고 허락을 한 것이었다. 정말 허망하고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올해는 수망리 최 선생님이 당신네 귤밭 농사를 같이 지어서 나누자고 제안하셔서 작은 귤밭을 같이 하고 있었다.     


그간 우리 과수원을 사지 않은 것은 경험이 부족해서 자신도 없었거니와 무엇보다도 자금을 융통하지 않고 내 돈만으로 귤밭을 사고 싶어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친정아버지의 가까운 지인이 아버지를 통해 나에게 돈을 융통해 달라고 청을 넣었고 부모님의 간곡한 부탁을 외면할 수 없어 2억 8천이라는 큰 돈을 꿔드렸다. 그래서 이제나 주시려나 저제나 주시려나 기다린 세월이 5년. 급기야 그분은 올 4월에 내 돈을 갚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그 후손들과 소송 중이지만 원금을 다 받을 방법은 없어 보인다. 이미 그분 재산에 달라붙어 있는 빚쟁이들이 너무 많다. 얼마간의 돈을 받는다 해도 그게 언제가 될지. 소송은 끝없이 길어질 거 같다. 그래서 그 돈을 받아서 얼마를 더 보태어 귤밭을 장만하고자 했던 애초의 나의 계획은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돈 나오기를 기다릴 일이 없어지고 나니 오히려 용기가 났다. 나는  대출을 받아 과수원을 사기로 했다. 제주의 부동산 가격이 하향세라고 하지만 유입인구가 급격히 줄어 주택의 가격이 조금 떨어진 것을 제외하면 우리 집 주변은 제2공항에 대한 기대로 오히려 토지 가격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그래서 언제 사도 살 거라면 더 기다리지 말고 땅을 알아보자 싶어서 주변에 매물로 나온 귤밭들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여러 군데의 귤밭들을 가 봤지만, 마음에 드는 귤밭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마음에 들면 너무 가격이 높았고, 가격이 맞아 현장을 가보면 너무 외지거나, 비탈이 심하거나, 돌밭이어서 농사짓기가 어렵거나, 아니면 나무가 죽어가고 있거나. 여덟 번째 귤밭의 지번을 부동산으로부터 받아 별 기대 없이 가봤다. 수망리 최 선생님 댁과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였다. 특별히 나무가 건강한 것도 아니고 주변의 경관이 좋은 것도 아닌데 나는 그 밭이 마음에 들었다. 감당할 수 있는 가격에 크기도 적당했고 너무 외지지 않은 것도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2년여 동안 방치되어 비쩍 마르고 병색이 있어 보이는 나무들이 왠지 안쓰럽기도 하고 정이 갔다. 내가 돌보고 정성을 쏟아서 다시 윤기 있는 잎들이 돋아나고 탐스러운 귤이 맘껏 열리는 건강한 나무로 다시 돌아가게 해주고 싶었다. 사실 꼭 그 밭이어야 한다고 남편에게 갖다 붙인 이런저런 이유는 다 부차적인 것들이었고 내가 그 밭을 선택한 이유는 오직 그 이유 하나였다.     


계약을 하기까지, 농협에 대출 가능 유무를 타진해 보면서 아슬아슬한 우여곡절이 여러 번 있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씩 하나씩 해결이 되어갔고 급기야는 내놨던 안성 땅도 제 때에 팔려서 추가 대출을 고민하지 않고도 잔금이 마련되었다. 땅은 다 임자가 있다는 옛말은 틀리지 않은 거 같다.  그 밭은 이미 “우리 꺼”가 될 거로 정해져 있으니 아니 내 마음에 들어와 있으니 우리가 최선을 다해 준비하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 귤밭은 그저 단순한 의미의 ‘부동산’이 아니다. 우리는 남은 생을 스스로 이 밭에 고용되어 살고자 한다. 몸이 노쇠하여 더는 노동을 할 수 없을 때까지 우리는 이 땅과 이 땅의 나무들과 더불어 살아갈 것이다. 몸을 써서 노동하여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고 자연에서 겸손과 순리를 배울 것이다. 부의 축적과 경제적 가치에 몰입하지 않고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더불어 즐기는 삶에 집중할 것이다. 나와 남편은 그렇게 밭에서 일하고 밭에서 늙어가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 이 귤밭은 우리 남은 생의 동반자인 것이다. 이 밭은 우리가 산 게 아니라 우리에게 와 준 것이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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