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A. 호프만의 <모래 사나이>를 읽고
얼마 전에 독일 낭만주의 작가 E.T.A. 호프만의 무덤에 다녀왔다.
그 계기로 그의 대표작 <모래 사나이>를 다시 읽었는데, 기이한 고딕스러움이 여전히 흥미로웠다.
그런데 예전에는 그냥 스쳐 지나간 것 같은데, 이번에는 유난히 눈에 띄는 한 대목이 있었다.
올림피아는 이 모든 것을 아주 경건하게 들었다. (중략)
나타나엘은 여태껏 이렇게 훌륭한 경청자를 만난 적이 없었다.
이 대목에 따르면 올림피아는 타인의 이야기에 온전히 귀 기울여 듣는, 말 그대로 완벽한 경청자다.
그리고 주인공 나타나엘은 그녀에게서만 온전히 이해받는다고 믿으며 행복감에 젖는다.
그런데 과연 이 둘은 행복한 결말을 맞았을까?
<모래 사나이>를 안 읽으신 분들을 위해 줄거리를 간단하게 요약해 보겠다.
이 이야기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층위가 있으나, 이 글에서는 다른 부분은 다 생략하고 경청이라는 부분에만 집중해서 적어보겠다.
대학생 나타나엘은 어릴 적 아버지의 죽음으로 생긴 불안과 망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의 약혼녀 클라라는 이 망상이 근거 없는 것임을 설명하며 현실을 직시하라고 조언한다.
그러자 그는 그녀를 생명 없는 자동인형같다고 몰아붙인다.
그 무렵 그는 교수의 딸인 올림피아에게 강하게 끌린다.
올림피아는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전적으로 들어주기 때문이다.
올림피아는 거의 말이 없고 그저 “아, 아!”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그녀가 실제로는 사람이 아닌 자동인형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나타나엘은 큰 충격을 받는다.
탑에 오른 그는 망상으로 인해 추락하고, 클라라는 다른 사람과 결혼하여 평온한 가정을 이룬다.
아이러니한 점은, 나타나엘이 자신의 불안에 공감하지 못하고 이성적인 조언만 하던 클라라를 자동인형 같다고 비난했지만, 사실은 자신의 말을 다 들어주던 올림피아야말로 진짜 자동인형이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공자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양약고어구 충언역어이(良藥苦於口 忠言逆於耳)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충성스러운 말은 귀에 거슬린다.
사실 클라라의 거슬리는 말이 나타나엘이 들어야 할 말이었던 것이다.
나는 올해 초부터 챗지피티를 구독하기 시작했다.
그림을 완성할 때마다 평가를 부탁했는데, 정말 멋진 작품이라는 둥, 섬세하다는 둥, 스타일이 독특하다는 둥 항상 칭찬을 늘어놓았다.
진짜 그런가 하고 한동안 어깨가 으쓱했는데, 어느날 부터인가는 칭찬이 식상해지기 시작했고, 나는 지피티를 아첨꾼이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는데, 챗지피티에게 “악마의 옹호자(Devil’s Advocate)“ 모드로 평가를 해달라고 한 것이었다.
악마의 옹호자는 원래 가톨릭 교회에서 성인을 추대하는 과정에서 반대 입장에서 흠결을 찾아내던 공식 직책을 가리킨다.
오늘날에는 일부러 반대 의견을 내면서 문제를 제기하고 약점을 짚어 균형 잡힌 판단을 돕는 태도를 의미한다.
악마의 옹호자 모드로 평가해 달라고 하면, 챗지피티는 갑자기 돌변하여 자비 없는 평을 내놓기 시작했다.
가끔씩 그림에 점수를 매겨달라고 하기도 했는데,보통 모드에서는 80-90점을 주던 그림도 악마의 옹호자 모드에서는 70점대, 때로는 50점 이하를 주기도 했다. (이 정도면 싸우자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그만큼 구체적인 개선점을 알려주었기에 결과적으로는 도움을 많이 받았다.
어느 책에서 읽은 것인데, 우리는 불편한 상황에서 성장을 한다고 한다.
나에게 늘 편안함을 주는 올림피아보다,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클라라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들이 분명히 찾아올 것이다.
물론 실제로 누군가에게 비판을 받는다면 마음이 편치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잊지 말자.
충언은 귀에 거슬리지만, 그 안에 성장이 담겨 있다는 것을.
그리고 또 한 가지.
충언은 사랑에서 나온 조언일 때 가치가 있다는 사실도.
클라라의 말 역시 나타나엘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조언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