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미술로 만나는 파리 여행 (2)
파리에서 가장 먼저 가보고 싶었던 곳은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이었다.
가장 방대한 인상주의 컬렉션을 보유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특별히 인상주의 그림을 더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인상주의가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상, 그 당시의 혁신성, 그리고 지금도 많은 대중이 사랑하는 그림들이라는 사실이 나를 그곳으로 끌어당겼다.
그러니 허세로 가득 찬 내가 안 가볼 수가 없는 곳이었다.
오르세 미술관은 철도역을 개조해 만든 미술관이다.
베를린에도 오래된 철도역을 개조해 만든 함부르거 반호프 미술관이 있다.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사실에 근거해 뭔가를 상상할 수 밖에 없다.
함부르거 반호프 박물관에 가면 대략 두세 시간이면 전시물들을 다 관람할 수있었기 때문에, 나는 오르세 미술관에서도 비슷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미술관 입구에 들어선 순간 천장의 높이와 저 먼 곳까지 줄지어 서 있는 조각상들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 여기는 네다섯 시간은 각오해야겠구나!
실제로도 우리는 다섯 시간 동안 그 미술관 안에 머물렀다.
처음에는 동선대로 천천히 그림을 감상하려고 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볼 수 있는 0층에는 초기 인상주의와 사실주의, 신고전주의, 아카데미즘 계열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한 층씩 올라가며 차근차근 작품을 감상하다가는,
정작 5층의 인상주의관에 도착했을 때 체력이 바닥나 버려 모든 게 귀찮지지는 건 아닐까 조바심이 들었다.
오르세 미술관을 찾는 많은 이들의 관심은 5층에 전시된 인상주의 회화에 쏠려 있었고,
실제로 미술관 측도 이를 잘 알고 있기에 인상주의 회화를 메인으로 홍보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도 전략을 바꿨다.
인상주의 회화를 먼저 보기로 하고, 5층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나이가 들면 이런 식으로 자꾸 효율성을 따지게 되는데,
그건 내가 지극히 경제적인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부족한 체력을 효율적으로 잘 분배하는 게 점점 중요해 지기 때문이다.
5층에 도착하니 0층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체감상 세 배쯤은 되어 보였다.
한 그림 앞에 오래 머물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줄을 서서 작품 잠깐 보고, 사진을 찍고 옆으로 비켜주는 것의 반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다.
모니터나 인쇄물로만 보던 그림들을 실제로 마주하니, 질감이나 붓터치, 색감들이 다르게 느껴졌고, 그림을 둘러싼 화려한 액자들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나는 르노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근처를 계속 서성였다.
뒤에 오는 이들을 위해 잠시 옆으로 비껴섰다가, 또 다시 돌아가서 한참을 바라보곤 했다.
19세기 후반 파리의 중산층이 누렸던 행복한 순간이, 그림 속 인물들의 얼굴에 비치는 따사로운 햇살로 드러나는, 평화로우면서도 활기찬 그림이었다.
행복감은 전염된다고 한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행복하고 싶으면 행복한 사람들을 곁에 많이 두라고.
그래서인가. 그림 속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인물들을 보고 있자니, 감상자인 나에게도 그 행복감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 외에도 인상적인 작품들이 많았으나, 너무 많아서 여기에 하나하나 적어두기 어렵다.
사람들에 치이다 보니 나도 점점 지쳐갔고, 그림 감상에 큰 흥미가 없는 남편은 이미 방전된 모양이었다.
일단 5층을 빠져나왔다.
내려오는 길에 중간층에서 로댕의 <지옥의 문>을 감상한 후, 미술관 내 레스토랑에서 방전된 육체를 충전하기로 했다.
식당 내부의 화려한 상들리에와 줄지어 있는 긴 창문들, 천장을 채우고 있는 화려한 천장화.
아, 이런게 파리구나 싶었다.
맛있는 식사를 하며 체력 충전을 마친 후, 0층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작품들을 다시 관람하기 시작했다.
이 곳에도 초기 인상주의 작품들이 있기는 했지만, 여기는 주로 인상주의 이전의 전통 회화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곳의 회화 감상이 더 흥미로웠다.
이 미술관에서 내 마음을 끈 작품들은 앵그르의 <샘>이나 부그로의 <비너스의 탄생>, 모로의 <이아손과 메데이아>, <오르페우스> 같은 작품들 이었다.
성서나 신화를 다룬 그림들에는 수많은 상징과 알레고리 그리고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의 서재에는 <샘터>라는 잡지가 꽂혀있었다.
아마 정기구독을 하셨던 거 같다.
그 잡지에는 <이달의 명화>라는 꼭지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너무 어릴 때 기억이라 가물가물하지만, 거기에 소개되는 그림들은 보통 성서나 신화와 관련된 작품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어릴 때 기억은 저 깊은 무의식에 각인되고….
그래서인지 나는 성서와 신화를 그린 그림들을 볼 때마다 자연스럽게, 불안과 걱정이 없이 아버지 서재에서 책 읽으며 놀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곤 한다.
혁신의 상징이었던 인상주의는 이제 보통 사람들이 회화를 떠올릴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가장 대중적인 예술이 되었다.
물론 나도 그 그림들에서 느끼는 도시의 여유로움 혹은 도시 근교의 목가적인 평온함을 좋아한다.
하지만 내가 조금 더 오래 바라보고 싶은 그림은, 그림 안에 풀어야 할 비밀이 내포되어 있는 듯한 그림, 약간은 현실 세계와 어긋나 있는 것 같은 그림인 듯 하다.
이렇게 장장 다섯 시간의 오르세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건물을 나섰을 때, 밖에는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쓰지 않은 채, 우리는 센 강변으로 가서 천천히 산책을 하면서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