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미술로 만나는 파리 여행 (4)
지옥의 문을 만나기 위해서 로댕 미술관(Musée Rodin)으로 향했다.
사실 조각에는 크게 조예가 없는지라, 여행 계획 단계에서 로댕 미술관을 일정에 넣을지 말지 고민이 많았다.
갈 곳은 많고 체력은 딸리고 시간은 부족하니까.
그래도 이 미술관을 가기로 결정한 것은 바로 <지옥의 문> 때문이었다.
명색이 문학과 미술로 만나는 파리여행인데, 단테의 <신곡> 정도는 만나줘야 뽀대가 날 거 같았다.
로댕의 부조 조각 <지옥의 문>은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이 문은 원래 프랑스 정부가 장식미술관을 건축하면서 로댕에게 정문을 의뢰한 것이라고 한다.
정문을 의뢰한 곳은 정부이지만 아마도 정문의 주제는 로댕이 직접 선택했을 것 같았다.
이런 무시무시한 문을 나라에서 만들어 달라고 하지는 않았을 거 같기 때문이다.
어쨌건 장식미술관 건축이 무산되면서 이 지옥의 문은 로댕의 필사적인 개인작업이 되었다.
단테의 신곡은 10여 년 전에 읽었는데, 지옥편은 꽤 흥미진진하게, 연옥편은 그럭저럭 읽을 만했다.
하지만 천국편은 진짜 겨우 겨우 읽었다.
그러니 로댕이 천국의 문이 아니라 지옥의 문을 제작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아무리 천국이 좋다 좋다해도, 그것을 표현하려다 보면 단조로워질 수밖에 없고, 인간 관점에서 흥미진진한 장면이 들어가지는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로댕 미술관은 실내전시관도 좋았지만, 너른 정원의 자연 가운데에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는 야외전시관이 더 인상적이었다.
야외 조각상들을 천천히 둘러본 뒤, <지옥의 문> 앞에 도달했다.
갑자기 비가 살짝씩 내리긴 했지만, 우산을 써야 할 정도는 아니라서 야외 관람에 큰 불편은 없었다.
그 문 앞에서 관람할 차례를 기다리며, 사람들이 작은 무리를 이루고 서 있었다.
그런데 지옥의 문 앞에 서 있는 두 여성분이 좀처럼 자리를 내줄 생각을 않고 있었다.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서 괴로워하는 인물들을 하나하나 보고 있는 듯 했다.
예술 작품을 오래 바라보면서 진지하게 감상하고 싶은 그 마음이야 이해가 갔지만, 당최 문 앞에서 이동을 안하고 있으니 사진찍기도 어렵고, 가까이 다가가 보기도 어려웠다.
여러 가지로 난감했지만,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좋은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것일 확률이 높으니까.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우리는 지옥의 문 사진을 몇 장 찍고, 문에 묘사된 지옥의 인간들을 빠르게 훑은 뒤 자리를 옮겼다.
지옥의 문 상단에는 그 유명한 <생각하는 사람>이 앉아 있다.
나는 혹시 <신곡>의 지옥편에 나오는 문구, < 여기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라는 문장이 있을까 기대했는데 그 문장은 아쉽게도 적혀있지 않았다.
장식 미술관의 정문이라는 원래의 용도를 생각하면, 방문객들에게 희망을 버리라고 협박하는 셈이니 당연히 그 문장을 적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대신 문의 꼭대기에는 세 사람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서로 각자의 왼손을 마주대고 있는 있는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아마도 그들이 희망 없는 절대적 절망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지옥의 문> 상단에 앉아있던 <생각하는 사람>은 별도의 조각으로도 만들어져 우리가 잘 아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으로 재탄생했다.
여러 가지 크기로 여러 작품이 제작되어 여러 곳에 전시되고 있다.
이 로댕 미술관에도 실내 전시관에 가기 전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한다.
받침대까지 포함해서 대략 3m는 되어 보이는 조각이다.
웅크린 자세로 턱을 괴고 홀로 앉아 있는 모습이지만, 워낙 거대하기 때문에 묘하게도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좀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아래의 인간들을 어떤 방식으로 괴롭힐까 고민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마도 지옥의 문 위에 앉아있던 그 모습이 내 눈에는 심판자처럼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미술관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몇 가지 즐거움도 얻었다.
그중 하나는 빅토르 위고와 발자크의 동상이었다.
이번 여행이 문학과 미술을 주제로 하는 여행인데, 문학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는 방문지가 생각보다 많지 않아 아쉬웠는데, 여기서 위대한 작가들의 동상을 만나니 유난히 반가웠다.
로댕은 이 위대한 작가들의 동상을 실제 외형에 근거하여 재현하기 보다, 사유하는 인간으로서의 모습, 또는 뮤즈에 의해 이끌림 받는 상태로 형상화하려고 했던 것 같다.
위고의 동상은 그리스 신화 속 인물처럼 표현된 것도 있고, 노쇠한 육체의 누드로 표현된 것도 있었는데, 둘 다 사유하는 인간 위고를 보여주려고 했다고 한다.
발자크의 동상은 문인협회 의뢰로 제작을 시작했는데, 너무 닮지 않았다는 이유로 의뢰가 취소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커다란 망토를 부여잡고 무게감 있게 서 있는 발자크의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또 하나의 즐거움은 뭉크가 그린 <생각하는 사람> 이었다.
뭉크는 우울한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사용한 색감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노랑, 민트, 빨강, 하양 등의 밝은 색들은 오히려 생동감을 준다.
물론 그의 작품 주제는 주로 우울하지만, 이 그림만큼은 달랐다.
청동 조각상의 다채로운 색감, 멀리 앉아 있는 부인의 흰옷, 나무 사이로 비치는 푸른 하늘.
그림자 길이를 보니, 오후 한때인 듯하다.
나른하다.
<생각하는 사람>도 위협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자신의 깊은 내면을 바라보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번 미술관에서도 지루할 틈 없이 시간이 흘렀다.
떠날 무렵에는 비가 다소 강해지기 시작해서 그 점이 좀 아쉬웠지만,
날씨는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