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고의 집을 배회하다, 메종 드 빅토르 위고

문학과 미술로 만나는 파리 여행 (5)

by 우주진


이번엔 미술의 발자취에서 문학의 발자취로 걸음을 옮겨보겠다.

지난 글에서 위고의 조각상과 마주친 사연을 언급한 김에, 이번 글에서는 메종 드 빅토르 위고(Maison de Victor Hugo) 방문기를 써 보려고 한다.


내가 읽은 빅토르 위고의 작품은 <레 미제라블>과 <웃는 남자>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베를린 미술관에서 그의 미술 작품들을 보고 감명을 받은 바 있어서, 문학과 미술을 모두 아우른 그의 예술 세계가 늘 궁금했었다.

그러니 이번 파리 여행에 위고의 집을 방문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위고가 1832년에서 1848년까지 살았던 메종 드 위고는 마레지구 보주 광장을 마주하고 있었다.

도심의 고급 공동주택 중 한 채가 그의 이름을 딴 박물관이 된 것이다.

예전 이 지역은 귀족들이 주로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그는 귀족은 아니었지만, 이 집으로 이사할 당시 이미 <파리의 노트르담>으로 명성을 얻은 유명 작가였다.


큰 박물관도 아닌데 입구에는 제법 진지한 보안 검색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덕분에 우리도 조금은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입장하였다.

입구 앞에 난 계단을 한 층 올라가자, 위고가 살았던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좋아하지만 작가의 집을 일부러 찾아다니는 편은 아니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적혀 있는 설명을 읽지 않아도 눈으로 볼 수 있는 즐거움이 큰 곳이다.

하지만 작가의 집은 사정이 다르다.

여기저기 붙어있는 설명문을 읽지 않으면, 전시된 것들의 맥락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위고의 집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어는 당연히 읽지 못하고, 영어 역시 술술 읽는 수준은 아니어서, 나는 그저 안개 속을 걷듯 그 공간을 막연히 추측할 뿐이었다.

그나마 당시 파리 엘리트 계층이 어떤 분위기 속에서 살았는지를 어렴풋이 경험해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인상적인 부분에 관해서는 간단하게 스케치를 해 보겠다.


붉은 살롱

붉은 살롱 Le Salon rouge

위고는 이 방에서 예술가, 작가, 유명 인사들을 맞이했다.

그 유명한 안데르센도 이곳에 왔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이곳은 서로 다른 예술관과 세계관, 철학이 달궈지는 용광로와 같은 곳이 아니었을까.

붉은 벽지로 둘러싸인 이 방에서 그런 상상을 해 본다.


중국식 응접실과 식당

중국식 응접실 Le Salon chinois

식당 La salle à manger

이 두 공간은 위고의 영국 망명 시절을 보여주는 장소이다.

그는 목수들과 함께 건지섬에서 살던 집을 직접 장식하고 가구도 직접 디자인했다고 한다.

파리에 위고의 집 박물관을 열면서, 영국집의 가구와 벽장식들을 이곳에 가져와 배치한 것이다.
벽에 붙은 패널은 중국식으로 만든 것인데, 당시 서양인들의 눈에는 동양 스타일이 힙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인테리어와 가구 디자인까지 직접했다는 걸 보니, 그는 자신의 생활 공간까지도 창작하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다.


흥미로운 점은, 바로 그 망명 시기에 그가 <레 미제라블>, <웃는 남자>, <징벌시집>,<관조>,<세기의 전설>,<바다의 노동자들> 같은 주요 작업을 집필했다는 사실이다.

내가 전에 베를린에서 본 그림들도 이 시절에 그린 것들이었다.

생각해 보면 조국은 그를 추방했지만 그는 더 열정적으로 자신을 드러냈고 점점 더 큰 목소리를 갖게 된 것 같다.


서재와 침실

서재 Le Cabinet de travail

이 방은 원래도 위고의 서재였다.

벽은 온통 녹색 벽지로 덮여 있었다.

녹색이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집중력을 높인다는 사실을, 그 당시 사람들도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위고의 침실 La chambre de Victor Hugo, avenue d‘Eylau

이 방의 침대와 가구는 위고가 망명 이후 다시 파리로 돌아와 살았던 집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집은 단순히 이 집에 살았던 시절의 위고만을 보여주는 공간이 아니었다.

망명 이전의 시간, 망명 시절, 그리고 파리로 돌아온 이후의 삶까지, 그가 경험했던 여러 시간과 공간들을 세심하게 편집해서 보여주는 새로운 공간이었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도 있었다.

작가의 집에 가면 으레 보게 되는, 친필 원고라던가, 책의 초고라던가 하는 자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혹시 내가 제대로 보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그런 자료들은 다른 곳에 따로 보관되어 있는 걸까.

그런 사실들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 채, 그 집을 나와야 했다.


문득 이런 의문도 들었다.

그런데 위고는 왜 망명길에 올라야 했나?

그 집에서는 그 이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찾지 못해, 이후 따로 검색을 해 보았다.

처음에 그는 나폴레옹 3세의 지지자였다.

하지만 1851년 나폴레옹 3세가 쿠데타를 일으켜 독재 권력이 되자, 위고는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결국 망명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나폴레옹 3세 실각 후에야, 그는 18년 만에 파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가 돌아왔을 때, 시민들은 그를 열렬히 환영했다고 한다.


이곳을 떠나기 전, 기념품 샵에 잠시 들렀다.

거기서 에코백 하나를 발견했는데,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Errer est humain, flâner est parisien - Victor Hugo



무슨 뜻인지 정확히는 몰라도 왠지 멋짐이 느껴져 살까 고민했다.

하지만 색이 온통 검은색일 뿐이고, 내 취향이 아니어서 결국 구입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 문장이 마음에 남아서, 어디서 인용된 문장인지 나중에 찾아 보았다.

<레 미제라블>에서 인용된 문장이었다.


내가 읽었던 한국어 번역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배회하는 것은 인간적이고, 어슬렁거리는 것은 빠리답다.>

(펭귄클래식코리아, 레 미제라블 3권 4편)


배회와 어슬렁거림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감이 잘 잡히지 않지만….

확실한 건 내가 이 집에서 편안하게 어슬렁거리지는 못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어디서부터 또 무엇을 봐야 하는지를 몰라 배회했다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역시 나는 파리지앵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인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