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미술로 만나는 파리 여행 (6)
빅토르 위고의 집을 방문했으니, 이번에는 발자크의 집(Maison de Balzac) 방문기를 적어보겠다.
나에게 발자크는 익숙한 작가였다.
그의 책을 많이 읽어서가 아니라, 예전에 우리 동네에 BALZAC라는 이름의 커피숍이 있었고, 내가 그곳의 단골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고리오 영감>의 마지막 장면을 좋아했다.
주인공 라스티냐크가 페르라셰즈 묘지에서 외친 그 말.
“자, 이제 파리와 나, 우리 둘의 대결이다!”
외국 생활에서 서럽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그 문장을 떠올리곤 했다.
물론 그 대상은 파리가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베를린이었지만.
그래서 메종 드 발자크를 방문하는 것은 꽤 기대되는 일이었다.
그 기대는 다행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집 자체는 단촐했지만 정겨웠고, 전시물들은 인상적이었다.
작은 정원도 좋았고, 정원 안에 자리 잡은 ROSE 라는 이름의 카페도 마음에 들었다.
메종 드 발자크는 파리 중심가에서 동떨어진 곳에 있는 파시(Passy) 지역에 있었다.
발자크는 이 집에서 1840년부터 1847년까지 약 7년을 살았다.
빚쟁이들을 피해 이 곳에 은둔하다시피 지내면서, 그의 대표작인 <인간 희극>의 대부분을 집필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왜 그렇게 많은 빚을 졌을까?
아무래도 그는 현실감각이 없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사업병, 투기병, 분수에 맞지 않는 생활방식으로 큰 빚을 졌다고 한다.
아무튼 커피광이었던 그는 하루에도 수십 잔의 커피를 들이키며 잠도 거의 안 자면서 글을 썼다고 한다.
그가 실제로 사용했다는 작은 책상을 보며,
여기서 수없이 많은 인물 군상이 탄생했다고 생각하니, 이 작고 네모난 책상이 어떤 거대한 세계의 근원처럼 보였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 전시관의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으니,
바로 <인간 희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삽화를 찍어내던 오리지널 판화판들의 전시였다.
방 하나를 가득 채운 인물들의 판화판들을 보고 있으니,
내가 그의 책을 너무 적게 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앞으로 읽어야 할 책이 많구나 하는 생각도.
또 한 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발자크의 초상이 다양한 스타일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로댕 미술관에서 보았던 로댕 역시 발자크의 조각을 남겼다.
전에도 언급했듯이 망토를 걸친 로댕의 발자크 동상은 의뢰인으로부터 반려되었지만, 사람들에게는 무척 인상적으로 남았던 모양이다.
누군가는 그 조각을 바다표범 모양으로 패러디한 작은 조각상으로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다고 한다.
사실 이 바다표범 모양의 발자크 조각은 아주 귀여웠다.
기념품 샵에서 그 모형을 팔았다면, 나도 하나 구입했을 것이다.
현대의 한 작가는 발자크의 모습만으로 850점 이상의 초상화와 조각 등을 제작했다고 하는데, 그중 5점이 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었다.
빅토르 위고의 집에서는 예술가이자 영웅으로서의 위고를 보게 되는데,
발자크의 집에서는 인간적인 발자크를 만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모습을 한 조각이나 초상이 많다는 점에서,
그가 아마도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짐작하게 된다.
이 집에는 작은 정원이 딸려 있다.
정원 역시 발자크의 인간적인 면모처럼 소박하고 정겹다.
거의 손보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였다.
정원 한쪽에는 ROSE 카페가 자리하고 있다.
커피를 사랑했던 발자크를 생각하면,
그 독자들 역시 커피를 좋아할 거라는 고려가 있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었지만,
야외 테라스의 파라솔 아래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차를 마셨다.
오늘 같은 날은 발자크를 생각하며 커피 한 잔을 마시면 좋았겠지만,
카페인을 마시지 못하기 때문에 그 점이 조금 아쉬웠다.
카페 테라스에 앉아 있으니 저 멀리 에펠탑이 보였다.
발자크가 살던 시절에는 아직 에펠탑이 없었으니,
그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풍경이었겠지만,
현대의 방문객인 내가 바라보기에는 고지대에 위치하여 저 멀리 에펠탑도 보이는 이 집의 전망이 무척 좋았다.
그리고 참 좋은 집에 살았었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비가 그치고,
우리는 동네 산책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