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미술로 만나는 파리 여행 (8)
나는 도파민 중독자다.
항상 새로운 것들을 좋아한다.
한때 나는 피카소의 그림을 좋아했다.
다른 작가들과는 다른 선구성과 급진성에 매력을 느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피카소의 그림만 계속 보는 일은 조금 힘들어졌다.
여러 작가의 작품 사이에 그의 그림이 한두 점 섞여 있을 때는 괜찮았지만, 연달아서 보는 것은 부담스러워졌다.
그의 그림이 주는 정보량이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과했다.
그림 전체에서 해석해야 할 요소가 너무 많았다.
인물화를 본다고 하면, 얼굴의 눈, 코, 입은 물론이고 자세와 배경, 심지어 손가락까지도 변형되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그 모든 것을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머리와 눈의 에너지가 빠르게 소모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번 파리 일정에 피카소 미술관(Musée Picasso Paris)을 넣으면서도, 막 기대가 되고 설레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그냥 빼기에는, 피카소의 이름이 너무 거대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나는 그 미술관에서 새로운 피카소를 만났다.
그가 무슨 심경의 변화를 겪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탈리아에 가서 르네상스 고전 미술을 보고 돌아와서는, 잠시 신고전주의적 스타일에 심취한 적이 있다고 했다.
1920년대 초반, 아주 찰나의 짧은 시간이었다.
멋지긴 하지만 피곤한 작품들을 감상하며 지나던 중, 1922년 작 <시골의 춤>이라는 작품을 보게 되었다.
두 남녀가 춤을 추고 있는 그림이었다.
차분하게 눌린 색감, 매트한 질감, 둥글고 볼륨감 있는 인물의 형태, 동그랗게 뜬 눈이지만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표정까지.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내 시선을 붙잡았다.
완전히 사실주의적인 것도 아니어서, 작가의 개성이 느껴졌다.
왠지 21세기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작품 설명을 보니 파스텔과 유화를 함께 사용한 그림이었다.
오래 바라보고 있어도 눈이 편안했다.
그림의 전반적인 정서가 차분했다.
굳이 해석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그림이었다.
그저 춤을 추는 두 사람을 바라보기만 하면 되었다.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이 몇 점 더 있었다.
1922년작 <해변을 달리는 두 여인>도 그중 하나였다.
푸른 해변을 배경으로 흰 원피스를 입은 여인 둘이서 달려간다.
푸른 바다, 흰 원피스, 달리는 여인들의 피부색이 대조를 이루며 시원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달리는 역동성에서 느껴지는 해방감,
시원한 푸른빛에서 오는 또 다른 해방감.
머리로 이해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먼저 와 닿는 그림이었다.
피카소의 작품 앞에서 정서적 반응이 먼저 일어난 것은, 진짜 오랜만이었다.
그래도 피카소의 대표적인 스타일을 아예 소개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인상적이었던 도라 마르와 마리 테레즈 발테르의 초상화 사진을 올려본다.
바라보고 있으면 여전히 피곤하긴 하지만, 그 앞에 서 있으면 작가와 나 사이에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 느낌이 든다.
알고 보면, 머리로 해석해야 하는 그림도 좋아하기는 하는 모양이다.
다만, 너무 많이 보는 것이 곤란할 뿐.
전시를 보고 난 뒤, 우리는 건물 뒤뜰에 잠시 앉았다.
그리 크지 않은 안뜰이었고, 가운데 푸른 잔디를 바라보며 편안히 쉴 수 있었다.
의자에 앉아 마주보는 뒷건물들의 반복적인 구조와 창문의 모습이 묘하게 안정감을 주었다.
전형적인 가을날씨였다.
비는 내리지 않았고, 공기는 선선했고, 바람도 산들산들 불었다.
우리는 그 안뜰에 앉아 한참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가장 오래 기억하게 될 것은
피카소의 급진적인 실험정신이 아니라,
잠시 신고전주의 그림을 그렸던 몇 해와
그 안뜰의 평온한 가을 풍경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