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이 끝난 지 한참이 지난 뒤였다.
오전부터 내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정신없이 휘몰아치던 스케줄은 오후 두 시가 넘어서야 어느 정도 일단락이 되었다. 학원 도서관 안으로 쭈뼛대며 들어가는 아이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나는 계단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몸은 몸대로 정신은 정신대로 피곤했다. 그냥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 일 층까지 내려가도 됐는데 굳이 계단을 택한 이유는 단 한순간이라도 혼자 있고 싶어서였다.
끝없이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을 하염없이 따라 내려갔다. 저 멀리 일층에서 들려오는 북적이는 소음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이윽고 활짝 열린 비상문이 보였다. 나는 비상문을 지나 그대로 일 층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혼자 있고 싶다며 실컷 계단으로 내려와 놓고, 기껏 쉴 수 있는 장소로 고른 것이 사람 많은 카페라니.
카페 안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몇몇 보였다. 아이와 같은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을 둔 엄마들이었는데 등하원할 때 오가며 본 사람들이라 낯이 익다 뿐이지 따로 친분이 있는 건 아니었다. 어쩌다 나는 그들의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아이스 초코를 단숨에 들이켠 후 노트북을 켰다. 배경화면이 모습을 드러내는 동안 나는 좋든 싫든 옆 자리 엄마들의 여행 계획을 강제로 들어야만 했다. 그냥 딴 데 갈걸. 후회해 봤자 늦었지만. 다음번엔 좀 걷는 한이 있더라도 다른 곳으로 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밀린 일기를 쓰려고 블로그 창을 띄웠다. 나는 새하얀 창위로 깜빡이는 커서를 뚫어져라 보았다. 커서가 깜빡일 때마다 내가 원하는 글자들로 저절로 바뀐다면 참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던 나는 무심코 카페 출입문 쪽을 쳐다보았다. 때마침 카페 안으로 들어오던 여성분과 눈이 마주쳤다. 일 초가 지났을까. 아니 지나긴 한 걸까. 그 찰나의 순간 찾아든 어색함을 견디지 못한 나의 시선이 노트북에 채 닿기도 전에, 여성분이 더 빨리 움직여 내 앞에 다가와 섰다.
"안녕하세요!"
수줍음이 많고 소극적이고, 자신감이 부족한 나에게 있어서 모르는 사람과 단 둘이 남겨지게 되는 상황은 그야말로 고문 그 자체다. 여기에 상대방의 표정 하나하나에 반응하게 되는 예민함까지 더해진다면 최악 중의 최악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그날의 상황이 그랬다. 나를 보고 반색을 하며 다가온 분은 아이의 유치원 같은 반 엄마였고 일 년에 몇 번 안 되는 유치원 행사 때 마주친 적이 있었지만 스치듯 인사만 주고받은 게 전부인 데다, 나는 뒤풀이 모임엔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으므로 나에겐 거의 처음 보는 얼굴과 다를 바 없었다.
서로에 대해 아는 거라곤 아이들의 이름 말곤 아무것도 없는 사이. 그나마 가지고 있는 공통점들을 간신히 끌어모아 대화를 이어가려 안간힘을 써 봐도 내가 어떤 반응을 해줘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말을 이 엄마가 꺼낼 때면 나는 "아.."라는 말 외에는 그럴 듯 한 대답을 찾지 못해 길을 잃고 만다. 이럴 때는 가만히 침묵을 지키는 편이 낫다. 수년간의 경험을 통해 터득한 사실임에도 매 순간 적응이 안 되는 것이, 언제쯤이면 모르는 사람과 공유하는 침묵을 노련하게 다룰 수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아마 이번 생은 힘들지 않을까..
수줍음을 많이 타고, 직접적인 표현보다 비언어적 의사표현이 편한 나 같은 사람들은 썩 달갑지 않은 오해를 사는 일이 종종 있다. 모든 이가 그런 오해를 한 건 아니었지만, 내향인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몇몇 인연이 내게 그런 존재였다. 그때도 나는 말수가 적었고, 어떤 때는 시선을 마주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곤 했다. 그렇다고 내가 감정이 없거나 무관심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그 둘의 눈에는 내가 다른 모습으로 비쳤던 것 같다.
"너는 알고 보면 숨기는 게 많을 것 같아."라고 말하던 E, 자기 친구에게 나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내가 잠시 자리를 뜬 사이 "근데 쟤는 좀 어두운 구석이 있어."라고 친구에게 굳이 안 해도 될 부연설명을 덧붙이던 U가 그랬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었다. 황당했다. 다행인 건 내가 상처를 받고 그들의 말을 곱씹을 만큼 속이 여리진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말을 하는 것보다 들어주는 것이 편한 사람이다. 하지만 나와 관계를 맺게 되는 인연이 늘어나면서 이런 태도를 쭉 고수하는 것이 내게도 좋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수줍음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쌀쌀맞거나 무뚝뚝함으로 보일 수도 있는 거니까. 거기다가 눈을 뜬 순간부터 잠들 때까지 쉴 새 없이 떠드는 꼬맹이를 만나게 된 이후로 나는 감정표현을 예전보다 더 자주 하게 되었다. 아이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세심한 존재였고, 어떤 감정을 드러냈을 땐 그 감정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필요로 했다. 예를 들어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이가 졸리다는 이유로 짜증을 낼 때, 엄마는 너를 다시 만나서 반가운데 네가 엄마를 보자마자 짜증부터 내면 엄마는 서운한 기분이 든다는 식으로 그 상황과 그때 느낀 감정을 세세하게 묘사하면, 얼마 안 있어 아이가 작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짜증내서 미안해-라며 손을 내밀어준다. 이런 대화를 어릴 때 그 누구와도 나눠본 적이 없어서 처음엔 이런 과정들이 익숙치 않아 꽤나 애를 먹었다.
어쩌면 나는 나의 수줍음을 핑계로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나의 마음을 저절로 알아차려 주길 바랐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세상에 그런 초능력을 부리는 사람들은 어디에도 없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