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이노베이션과 악의 평범성

당신이 모르는 기업 혁신의 어두운 면

by 박원규


오픈이노베이션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2003년 미국의 경영학자 헨리 체스브로가 제시한 이 개념은 간단히 말해 '기업이 혼자서 모든 것을 개발하지 말고, 외부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적극 활용해 혁신하자'는 전략이다.


삼성이 스타트업과 협업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거나, 네이버가 외부 개발자들과 함께 새로운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들이 모두 오픈 이노베이션의 예라고 볼 수 있다.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모든 기술을 혼자 개발하기엔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다. 그래서 많은 대기업들이 스타트업의 민첩함과 창의성을 빌려오려 하고, 점점 정부에서도 지원사업까지 만들어 독려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윈-윈 전략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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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녀는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을 통해, 악행의 근원이 항상 특별한 악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역설했다. 오히려 악은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그들의 일상 속에서 저질러진다는 것이다. 체제에 순응하고 상부의 명령을 그저 따르는 무사유의 상태. 바로 거기에 악이 스며든다고 아렌트는 경고했다.


이는 비단 나치 독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 기업 사회에서도 우리는 아주 자주, 흔하게 '악의 평범성'을 목격하곤 한다. 나 역시 대형 금융사에서 오픈 이노베이션 업무를 맡으며 이와 유사한 상황을 많이 겪었다. 스타트업의 혁신적 기술과 서비스를 탐내면서도, 정작 협력과 상생의 자세는 갖추지 않은 채 모방과 탈취를 일삼는 모습들. 그 주체는 다름 아닌 평범한 직장인들이었다.


물론 그들 모두가 악의에 차 있었다고 단정 짓진 않겠다. 어쩌면 그들은 그저 회사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그리고 그 조직에서 인정받기 위해 충성하는 자신들의 모습이 옳다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경쟁사보다 앞서가야 한다는 조직의 목표에 부응하기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도 동원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협력 관계에 있는 스타트업의 자산을 일방적으로 취하는 것, 상호존중과 신뢰가 바탕 되어야 할 오픈 이노베이션의 정신을 저버리는 것. 과연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혁신을 가져올 수 있을까. 우리는 여기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덫에 걸려들지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이폰이 탄생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

애플의 아이폰도 사실 오픈 이노베이션의 결과물이다. 애플은 터치스크린 기술을 직접 개발하지 않았고, 수많은 협력사들과 부품업체들의 기술을 연결하고 통합해서 하나의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플랫폼 역시 외부 개발자들에게 개발 도구를 개방하고, 함께 생태계를 키워나가는 전형적인 오픈 이노베이션 모델이다.


이처럼 성공한 오픈 이노베이션에는 공통점이 있다. 진정성 이쓴 협력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오픈 이노베이션은 대등한 파트너십 위에서만 가능하다. 스타트업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존중하고, 그들과 함께 성장하려는 자세가 돼야 한다. 눈 앞의 이익에 급급해 상대방을 착취하려 든다면, 그것은 결코 지속 가능한 혁신의 동력이 될 수 없다. 단기적 성과는 얻을지 몰라도, 결국 신뢰와 협력의 생태계를 무너뜨릴 뿐이다.


변화는 개인의 인식에서부터 출발한다. 아무리 조직의 압박이 있다 한들, 우리 각자가 양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평범한 직장인 한 명 한 명이 '악의 평범성'에서 벗어나, 진정한 혁신가로 거듭나는 것. 그것이야말로 대/중견기업과 작은 스타트업이 함께 상생의 길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당신은 어떤 직장인이 되고 싶은가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본인들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많은 직장인들이 이렇게 생각한다. 윗선에서 내려온 지시사항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 '시키는 대로'가 때로는 누군가의 혁신과 꿈을 짓밟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우리는 잊고 살아간다. 조직의 성과, 나의성과를 위해서...


당신은 어떤 직장인이 되고 싶은가? 저마다 자문해볼 일이다. 주어진 역할에 안주하며 조직의 논리에 따르기만 하는 무사유의 존재가 될 것인가. 아니면 사려 깊은 성찰과 실천으로 작은 변화의 불씨를 지필 것인가.

오픈 이노베이션의 참된 의미를 구현하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평범한 직장인 한 명 한 명이 '악의 평범성'에서 벗어나 진정한 혁신가로 거듭날 때,

기업과 스타트업이 함께 상생하는 길이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