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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바다 상어유영 Oct 07. 2020

(난임일기) 수정란아 수정란아

추석이 지나고 자연배란된 난자가 수정이 제대로 되었는지 결과를 듣는 진료날이었다.

걱정반 기대반으로 1시간 대기하고 진료실에 들어갔을 때 의사가 결과를 얘기하기 앞서 수정란 발달 사진을 보여주는데 직감적으로 '아 안됐구나' 싶었다.


수정은 됐으나 4세포기에 분화가 멈췄다는 것이다. 

"그게 배아가 죽었다는 말인가요?", "네" 

'죽었다'는 단어가 주는 확실함과 이후 따라오는 절망감에 머리가 멍해지고 더 이상 다음 진행 과정이 궁금하지않았다


의사는 기존의 초음파 사진을 날짜별로 보더니 이번에 배란된 쪽은 왼쪽 난소이니 오른쪽 난소에 기대를 걸어보자고 했다. 기존 사진을 보면 왼쪽보다는 오른쪽 난소에서 배란됐을 때 상황이 더 좋았다고 하면서 다음달에도 자연배란을 기다려 난자를 모아보자고 했다. 힘없이 "네"하고 다음 진료 날을 예약했다.


수납창구에서 이번 진료비를 결재하나보다 했는데, 지난번 채취 시 수정 비용을 결재하란다. 무려 이십만원이 넘는 금액을 이미 죽어버린 아이에 대해 결재하는데 헛웃음이 났다. 병원에서 나오는 에스컬레이터 탔는데 내려오는 속도만큼 희망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내가 엄마가 되는 날이 올까? 내 아이를 안아보고 키우는 시간이 내 인생에도 있을까? 그 가능성이 점점 멀어지는 구나싶다. 난자질을 좋게한다는 운동, 영양제, 식단관리는 흘러가는 시간앞에 속수무책인 것같아 기대도 노력도 허망하게 느껴진다.


무너져내리는 마음을 다잡아볼까도 해봤지만 아직은 그냥 마음이 허물어진대로 두려한다. 

무너진 마음에 새순이 돋아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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