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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바다 상어유영 Sep 28. 2020

죽음을 앞에 두게 되면

말기 암환자의 치료가 중단된 후

내가 결혼했을 때 시아버지는 2년째 암 치료 중이었다. 처음 인사하러 갔을 때 뵌 얼굴에선 전혀 환자 느낌이 나지 않았는데 결혼하고 1년 8개월이 지난 지금은 많이 늙고 호흡도 가빠지고 살도 빠져서 편찮아 보인다.


시아버지는 그동안 지방에서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에 매달 치료를 하러 오셨는데 나도 몇 번 병원에 가서 약을 타다 드리고 항암주사를 맞고 나오는 동안 기다리고 했었다. 그러다 고가의 면역항암제 투여를 받게 되셨는데 2번째 사이클 중에 더 이상 치료 효과가 없다는 말을 듣게 됐다. 


지방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는 것도 힘들고 집 가까운 곳으로 병원을 옮겨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서울 병원에서도 더 이상 치료할 약이 없고, 있다 해도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며 전원을 권했다. 그리고 동네 대학병원에서도 더 이상의 치료제는 없으니 진통제 타러 오시고 심하게 아프면 응급실로 내원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서울 병원 진료실에서 더 이상의 치료제가 없다는 사실상의 사형선고를 들었을 때 옆에 있던 나도 힘이 빠지고 어떠한 위로도 되지 못해서 아버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동네 대학병원 진료 결과는 그 사형선고의 확인사살 격이었으니 아버님이 받은 충격이 크셨던 것 같다. 시아버지의 병명은 악성중피종인데 폐를 싸고 있는 막에 암이 생긴 것이었다. 그러니 상태가 악화할수록 호흡이 가빠지는 게 제일 큰 증상이었는데 아버님이 담배를 피운다는 조카의 전화를 받고 나는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그리고 순간 화가 났는데 죽음을 앞두고 그깟 담배가 뭐길래 그렇게 피우고 싶은 건지, 자기 몸을 그렇게 소중히 할 줄 모르니 상태가 더 악화되는 게 아닌가 하는 짜증이 확 올라왔다. 그렇지만 시아버지는 내 아버지가 아니기에 그런 마음을 표현할 수는 없었다. 남편은 한참 동안 말이 없이 하던 청소를 계속했다. 


그리고 저녁에 아버지랑 전화를 하겠다며 핸드폰을 들고 집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돌아온 남편에게 무슨 말을 했냐고 물으니 담배 얘기는 안 했다고 그냥 아버지 마음이 어떤지 물어봤다고 했다. 코앞에 닥친 죽음에 어차피 죽을 거 내가 그토록 피고 싶던 담배 하나 못 피고 죽으면 억울해서 어쩌나 하는 마음을 남편은 이해했던 것 같다.


시댁과 우리 집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자주 가뵙지는 못하지만 시어머니와 통화를 통해 시아버지의 상태를 듣는데, 전원 이후 시아버지는 부쩍 시어머니를 노려보고 춤바람이 날 지 모르니 계 모임에 나가지 마라 빨리 집에 들어와라 등 평소에 않던 간섭과 이상한 잔소리가 늘었다는 것이었다.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은 자기밖에 생각할 줄 모르고 왜 내가 이 좋은 세상을 떠나야 하는지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 아마도 시아버지는 그런 단계를 겪고 있는 중인 것 같다. 그런데 이 상황은 나에게도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하는 상황인데 이 문제가 내 상황이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를 생각해보니 너무 준비된 게 없었다.

죽음이 내 문제라고 인식조차 하지 않고 살아왔고 그렇기에 지금 살던 것처럼 영원히 살 것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죽음 앞에서 혼자이고 거부할 수 없기는 하나 적어도 지금의 심정과 그동안 즐거웠던 추억을 나눌 수 있다면 가는 길이 덜 외롭지 않을까 싶다. 지금 시아버지는 몸도 아프고 희망도 없는 절망의 길을 홀로 가느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는 상태인 것 같다.


죽어가는 마당에 친구가 무슨 소용이고 추억 따위가 무슨 도움이 되겠냐 할 수도 있겠지만 죽음 앞에선 돈도 명예도 아무짝에 소용이 없다. 죽음을 앞에 둔 사람에겐 그저 따뜻한 식사를 함께 할 수 있는 가족, 아픈 마음을 다독이며 안부인사를 물어오는 친구와 지인, 종교가 있는 사람이라면 영원한 안식의 세계에 대한 위로와 믿음 정도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누군가의 죽음 과정을 가까이서 겪어보는 것이 처음인 나로서는 어떤 위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저 최대한 자주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일상을 나누는 것 밖에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 최대한 실천해볼 생각이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당연한 과정 앞에서 과연 나는 얼마나 준비를 하고 살아왔는지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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