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배란이 호르몬을 과하게 주사하여 여러 개의 난자를 키우는 것이니 난자 채취 이후 난소는 푹 쉬어줘야 한다. 하지만 내겐 시간이 별로 없다. 의사는 과배란 후 쉬는 두 달은 자연주기 즉, 원래 호르몬 흐름대로 하나씩 배란되는 난자를 모으자고 했다.
자연주기라 해도 초음파로 난포 성숙을 추적하다 마지막 단계에선 배란방지주사와 난포 터지는 주사를 맞고 수면마취 후 난자 채취를 해야 한다. 당연히 난자 채취를 하는 날 남편도 정자를 채취하고 그렇게 수정란이 몇 개 모아지면 자궁 상태를 봐서 이식을 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성숙하는 난포를 관찰하러 병원에 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틀에 한 번 꼴로 병원을 5번 갔다. 난포는 하루에 1밀리미터씩 더디게 자라고 있었다. 마지막 내원 때 초음파실 모니터에서 대각선 지름이 1.66센티미터인 타원형 난포를 보았다. 그리고 이틀 뒤 일요일에 채취 일정이 잡혔다. 채취를 한다고 해도 건강한 난자가 나와주어야 하고, 또 수정이 되어야 하고, 적절히 분열이 되어 냉동하고, 이식 날 해동해서 착상할 때까지 수정란이 건강히 버텨줘야 하는 긴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초음파로 보는 내 몸은 정상으로 돌아온 걸로 보였다. 하지만 공난포 사건과 세 번의 시험관 실패를 겪은 내 마음과 정신은 아직 예전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또 다시 실패할지 모른다는 걱정, 다시는 건강한 난자를 갖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2년이라는 나이만 먹은 채 다람쥐 쳇바퀴 도는 직장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 6개월 남은 시간이 시한폭탄처럼 느껴졌다.
8월 22일 이후 약 4주간 입맛도 없고 알 수 없는 피로감과 무기력증으로 운동도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작년 이맘때를 떠올려보면 난생처음으로 받은 긴 휴가를 어떻게 쓸지 무얼 배우고 어디를 갈지 생각하며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하고 감사해서 어쩔 줄 몰라했었는데 말이다.
다음 채취되는 난자를 위해서라도 잘 먹고 잘 자고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하는데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게 참 괴로웠다. 코로나로 외출이 어려운 상황도 있지만 내 상황과 같은 경험을 하고 있거나 했었던 사람이 아니라면 이야기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사실 내 문제로 일어난 일 같아 남편한테도 속마음을 다 털어놓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9월 20일 채취 날 한 개의 난자가 채취되었다. 남편도 자기 몫을 했으니 이제 내 몸밖에 있는 저 어린것(?)이 건강히 버텨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동안 마음 졸이며 했던 걱정은 10% 정도 덜어진 것 같다. 냉동 결과는 추석이 지나고 진료실에서 들을 수 있다. 삼일 정도 집에서 쉬다가 다시 등산도 가고 운동도 하러 나가야겠다. 몸과 마음을 다독다독 다독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