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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바다 상어유영 Mar 21. 2021

시아버지의 부고 문자를 보내다

곤히 자고 있던 새벽 3시 26분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벌떡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시어머니가 다급하게 남편을 찾았다.

며칠 전 새벽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기에 시아버지의 상태가 많이 안좋구나 싶었다.


남편은 전화를 끊자마자 시아버지를 병원으로 옮겨야겠다며 잠시 앉아서 정신을 차리더니 급하게 옷을 입으러 나갔다. 커피 한잔을 내려 텀블러에 담고 귤 몇 개와 두유를 봉투에 넣어 남편 손에 들려 보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침대로 들어왔다.


금방 잠이 들지 않아 눈을 감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남편이었다.

"아버지 돌아가셨대"

"장례식 동안 지낼 짐 챙겨서 아침에 내려와"


순간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예상치 못한 말에 정신이 멍해졌다.

전화를 끊고 정신이 아득해져서 잠시 누웠다.

그때가 대략 4시였다.

핸드폰으로 검색해보니 동대구역으로 가는 첫차는 5시 24분에 있었다.


가까운 이의 죽음과 장례식의 주체가 되어 본 적이 없던 나는 현재의 상황과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지금 이 순간 시어머니는 어떻게 있으실까? 시어머니와 남편은 어떤 마음일까? 돌아가신 분을 어떻게 병원으로 옮길까? 장례식 장소는 어디로 정하나?'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상하고 시뮬레이션해서 내가 할 일과 마음가짐을 정하고 싶었으나 자꾸만 정신이 아득해졌다. 예상을 못한 바는 아니었지만 실제 그 일이 일어나니 충격이 컸다. 평상시보다 가방을 싸는데 시간이 두배 넘게 걸렸다.


정신없이 운전을 해서 기차역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고 새벽에 대구로 내려갔다.

기차 안에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더니 아버님을 XX대학병원으로 옮겼다며 그곳 장례식장으로 오라고 했다.

동대구역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택시 안에서 시아버지의 부고를 친정엄마에게 알렸다. 엄마는 엄마(나의 외할머니), 작은형님(나의 작은 고모)에 이어 사돈의 연이은 부고에 충격이 큰 듯했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시어머니와 남편이 앉아 있었다.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모자의 모습이 그렇게 처량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시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손을 잡고 소리 내어 우셨다. 나도 같이 울었다. 아직 며느리로 2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가족 중 누군가의 존재가 상실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피부로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상조회에서 나온 장례지도사가 앞으로의 절차를 안내해 주었고 상주가 입는 옷을 가져다주었다. 상주복을 입고서 본격적으로 장례식이 시작됐다. 식을 시작한다는 표현이 이상하긴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과 함께 그를 기리고 보내는 의식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동시에 주변 사람들에게 부고를 알려야 했다. 회사에서 가끔 오는 부고 형식을 복사해 이름과 내용을 수정했다. 남편은 친인척, 시아버지의 친구, 지인과 시어머니의 지인들께 그 소식을 문자나 전화로 알렸다. 나도 회사 동료에게 시아버지 부고를 알렸다. 속속 조화가 도착했고 동료들의 부의금이 카톡으로 날아왔다.


코로나로 친척을 제외한 손님은 거의 없었다. 같은 장례식장 다른 빈소도 비슷한 상황인 것 같았다. 손님이 없어도 빈소를 지키고 향을 꺼뜨리지 않는 것은 상주의 중요한 의무였다. 중간중간 오는 손님과 절을 하고 끼니때가 되면 차려주는 밥을 꼬박꼬박 먹었다. 장례식장에 음식이 떨어지지 않도록 주문하는 일과 음식을 마다하는 시어머니를 챙기는 것은 며느리의 일 중 하나였다.


3일째 되던 날 아침에 시아버지와의 마지막 인사가 있었다. 차갑고 촉촉한 피부 감촉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닌 나는 생소하고 무섭기도 한 의식이었지만 남편과 시누이, 시어머니는 서럽게 울었고 감사해했고 사랑한다고 오랫동안 말했다. 오전 중에 발인식을 시작해서 점심이 되기 전에 거창 선산에 아버님을 모셨다.


시댁은 불교라 곧이어 절에 49재를 지내러 갔다. 나는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할머니와 큰아버지의 49재를 참석해 본터라 그리 어색하지는 않았다. 월요일에 돌아가셨기에 돌아오는 일요일부터 향후 7주간 계속된다는 49재는 돌아가신 분이 좋은 곳으로 가도록 기도하고 그 기간 동안 가족들이 돌아가신 분을 기리는 기간이었다. 절 앞마당에는 홍매화가 진한 분홍색의 향긋한 향기를 살짝살짝 보내주고 있었다.

앞으로 매화 향이 날 때마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생각나겠구나 싶었다.

아버님. 좋은 곳에서 아프지 않고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하시고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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