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했던 냉동배아 이식에 실패하고 결과를 확인하던 날 의사는 설 연휴 이전에 채취, 이식할 생각이 있다면 바로 과배란을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보통 과배란은 생리 2~3일 차에 동난포(난포로 성장할 만한 아이들) 갯수를 보고 시작하는데 아직 생리를 시작하기 전인데 가능한지 물었더니 의사는 크게 상관이 없다고 했다.
실패의 슬픔과 좌절의 쓰나미가 밀려오기도 전에 갑작스러운 다음 차수 진행을 어떻게 해야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휴직 기간이 끝나기 전에 한 번 더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오후에 피검사 결과를 듣고 바로 초음파 검사를 했다. 동난포가 3개 정도 보인다고 했고 그렇게 바로 다음 과배란을 시작했다.
아직 멍자국이 남아있는 배에다 성장호르몬과 과배란 호르몬 주사를 맞았다. 여기저기 연두색, 검푸른색 멍자국 위에 또 주사를 놓는 걸 보니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렇게 해서 또 안되면 어떡하지'
시술을 시작한 이후로 난임병원 주사실은 현타가 자주 오는 곳이 되었다.
앞으로 맞을 자가주사제를 받아 들고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게 잘한 일인가 싶었다.
몸도 회복을 하고 쉬어야하는 게 아닐가? 날짜를 당겨서 과배란을 하는게 잘하는 짓인가? 그때서야 잠시 잊고있던 걱정의 쓰나미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걱정과 두려움의 파도에서 허우적거리며 난임 단톡방에 나와 비슷한 경우가 있었는지 물어보니 아무도 그런 경험이 없다고 했다. 당장 내일 아침부터 자가주사를 해야 하는데 그냥 주사를 맞지 말고 이번 차수를 포기할까 싶기도 하고, 이미 맞아버린 성장호르몬 주사가 아깝기도 하고, 이번 기회가 로또처럼 성공차수면 어떡하지 같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주사를 맞은 지 3일째날 휴가로 자리를 비운 주치의 대신 다른 의사에게 진료를 받았는데 난포가 몇 개 보이지 않는 상태라는 말을 듣고 걱정이 가시질 않았다.
그로부터 2일 후 내 주치의를 만났을 때 난포가 몇 개 커진 게 보였고 그제야 좀 안심이 되었다.
채취 결과 5일 배양 배아가 나오면 냉동하고 era검사라는 정확한 이식 타이밍을 알게 되는 검사를 하고자 했으나 5일 배아는 나오지 않았다.
총 7개가 채취되었는데 그 중 3개만 이식이 가능한 상태였고 나머지 배아는 상태가 좋지 않아 다 폐기됐다고 들었다. 3일 배양 배아를 이식하는 날 면역글로불린 주사도 맞고 크녹산도 맞고 주사비만 100만원 넘게 결제하고 나오면서 제발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바랬다.
6차에 걸친 난자 채취로 몸에 무리가 가는 게 느껴졌고 더 이상의 좌절과 슬픔은 느끼고 싶지 않아서였다.
5일 배양 배아를 간절히 바랬으나 3일 배양으로 그쳐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기대 없이 8일째 되던 날 해본 임테기에 아주 엷은 두줄이 나오는 게 아닌가?
첫 번째 시험관 이후 1년이 딱 지난 시점에 두줄을 확인하고서 '이제야 됐구나. 네가 내게 와주었구나' 싶었다.
다음날 아침에 해본 테스터기 줄은 조금 더 진해진 두 줄이었다. 조금 더 진해지면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테스터기는 전날과 비슷한 진하기의 두줄...
걱정은 됐지만 아침에 남편에게 두줄이 나온 임테기를 보여주고 병원으로 피검사를 하러 갔다. 그날은 남편도 휴가여서 같이 갔다. 정말 간절히 50만 넘기를 바랬다.
피를 뽑고 3시간 동안 병원 앞 카페에서 기다렸다가 간호사에게 들은 결과는 16.7이였다.
100이 넘어야 안정적인 수치인데 16.7이라니 기대가 물거품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의사는 5로 시작해서 성공한 케이스가 있다며 일단 주사와 약은 유지하고 3일 후 다시 병원에 오라고 했다. 다음날 아침 배에 주사를 찔러 넣고 시간에 맞춰 약을 먹었지만 임테기는 어제보다 조금 더 흐려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