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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바다 상어유영 May 27. 2021

공무원13년 차,사직서를 냈다

13년 근무한 직장을 그만두던 날

2008년 4월 5일.

출근길 지옥철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시내로 향하는 직장인 대열에 합류했다.

정장 파워숄더에 어우러진 구두 소리는 후줄근한 학생을 커리어우먼으로 변신시켜주었고 목에 건 사원증과 테이크아웃 커피잔은 사회인의 증표였다.  


그렇게 겉모습은 직장인이 되었으나, 내 몫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부끄러움을 가방 한켠에 쑤셔 넣고 퇴근을 하는 날이 몇 년간 지속됐다.


직장인으로 인정받고 당당하게 내 의견을 말할 수 있기까지 나름 치열한 시간을 보냈고 부끄러움과 자아반성의 담금질을 통해 그나마 반쪽짜리 공무원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조직 내에서 직급과 통찰력의 한계에 항상 부딪혔지만 노력으로 극복하려 애썼고 무엇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시너지를 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 임무와 상대의 임무를 어떻게 조합해야 최고의 효과를 낼 수 있을 지 방법을 찾아 제안하고 함께 일하면 기분 좋고 젠틀한 동료가 되고자 했고 능력 있고 센스 있는 부하직원이고 싶었다.

그렇게 30대의 나를 완전히 바쳐 조직의 구성원이 되고자 했고 어느 정도는 그렇게 됐다고 생각했다.


업무와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감이 생기자 바닥을 치던 자존감도 자연스레 조금씩 올라왔다. 그렇게 10년이 넘어가니 한 번씩 해본 업무는 지루해지고 이해하기 힘든 동료와 상사의 행동에 지쳐갈 때쯤 남편을 만났다. 그리고 42살에 늦은 결혼을 했다. 일이 지겨워 새로운 업무를 하고 싶어질 때 결혼을 했고 좋은 기회다 싶어 난임 휴직을 했다. 휴직할 때만 해도 업무에 복귀하고 다시 일을 할 생각과 고민을 했었다. 


그런데 시험관을 6번이나 했는데 결과가 참혹했다. 이대로 다시 업무로 복귀하면 적응기간 동안 엄청난 스트레스로 시험관 시도는 더 이상 생각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내 인생에서 아이와 직업 중에 무엇을 선택하겠는지 묻는 선택지가 내 앞에 떨어졌다. 사실 휴직한 2년간 단 한 번도 생각을 안 한 적이 없다.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갈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그런데 결론이 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부은 연금이 아깝고 이렇게 안정적인 직장을 어떻게 다시 구할 수 있을까 싶어서 계속해서 갈등만했다. 가사휴직을 하고 싶어서 알아보다가 더 이상 휴직이 되지 않음을 알았을 때 결정의 시간이 왔음을 직감했다.

복직을 하든지 사직을 하든지......

고민의 시간이 길다고 나은 선택을 한다는 보장은 없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이후의 삶을 내가 어떻게 만들어 가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선택하기로 했다. 일은 나중에 언제라도 다시 할 수 있지만 아이를 갖는 건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거침없이 사직서를 냈다.


물론 써놓고 최대한 늦게 내고 싶었다. 사직서를 던질 만큼 용기는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5일간 가슴속에 사직서를 넣어두다 한 주가 끝나기 전 금요일 아침에 남편과 함께 우체국을 찾아 등기우편을 부쳤다. 이메일로도 인사과 담당자에게 보냈다.

생각보다 너무나 간단했다. 그렇게 들어가기 어려웠고 한 사람으로 인정받기 어려웠던  곳인데 나오는 건 이렇게 쉽구나 싶었다.

같이 일했던 동료와 상사들께 카톡을 보냈다. 어떤 분은 친히 전화를 걸어 잘했다고 하셨고 어떤 동료는 너무 아깝다며 인사과의 처사에 분통을 터뜨렸다.


공무원에게 소속 기관은 단순 월급을 주는 일터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를 위해 함께 고민하고 더 나은 가치를 위해 일하는 동료들은 단순한 직장 동료 이상이었다. 주말에도 업무를 생각하고 삼시 세 끼를 거기서 해결했고 퇴근 후에는 체력단련장에서 운동까지 했으니 내게는 그곳이 집이요 동료가 가족 같았다. 사직을 결정하고 그동안 썼던 업무 다이어리를 꺼내봤다. 지나간 11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다이어리에 남아있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기록했던 흔적이지만 이제 과거가 되었다. 이 고민과 노력이 내 세포 어딘가에 남아있겠지 하면서 위안해 봤다.




지금껏 나는 치열하게 한 길을 걸어왔고 남들이 보기에 그냥 쭉 가도 될 길에서 잠시 멈췄다. 운전을 좀 해보면 알겠지만 일직선으로 쫙 뻗은 대로는 앞이 보여서 안정은 되지만 보이는 광경이 뻔하고 앞길이 예측 가능해서 재미가 없다. 대신 구불구불한 길이나 안 가본 길은 새로운 광경에 호기심이 생기고 긴장감을 줘서 운전하는 재미가 있다.

내가 앞으로 가려는 길에 어떤 광경이 펼쳐질지 알 수 없지만 이미 선택했으니 담담히 새로운 길을 가보련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 위에 또 새로운 일들이 다채롭게 합쳐져 만들어질 인생길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싶다. 그렇게 나를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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