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 이후 다시 시험관 시술을 하기까지 고민이 많이 필요했다.
의사는 소파수술 후 한 달만 쉬고 다시 시험관 시술을 해도 된다고 했지만 내 몸과 마음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시험관 시술을 한다는 건 또 이런 아픔을 겪을 수도 있다는 걸 감내해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에게 준 시간은 3개월.
잘 먹고 잘 지내려고 노력했지만 난소 수치는 더 떨어졌고 컨디션도 난조였다.
그렇지만 시간가는 게 제일 무서워 시험관 시술을 재도전하기로 했다.
초음파로 보이는 동난포는 1개.
절망스러웠지만 이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안보일까봐 저자극으로 시험관을 시작했다.
클로미펜이라는 먹는 약을 받아오고 첫날엔 과배란 주사도 맞았다.
약을 먹은 지 3일째부터 컨디션이 더 떨어지고 매사가 귀찮아지더니 시간이 가도 회복될 기미가 없었다.
제일 참기 힘든 건 매사에 의욕이 없는 것.
내 일상의 모든 발단이 의욕이라는 걸 이번에 알게됐다. 의욕이라는 불꽃이 일지 않으니 몸도 마음도 재처럼 스러져갔다. 먹고싶은 것도 움직이기도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귀찮아졌다.
소파에 옆으로 누워 의미없는 TV 채널돌리기를 계속하다 두통이 오면 반대편으로 돌아눕고 나중엔 허리가 아픈 지경이 됐다. 그동안 영양제 챙겨먹고 나쁜 거 안먹으려 노력한 게 무색해졌다.
그렇게 무력감과 죄책감 속에서 몸무게는 늘어만 갔다.
이게 우울증인가 싶었다.
늪에 빠진 것같은 상태로 과배란 기간 10일이 지났다.
육체와 영혼은 서로 마주보는 상과 거울처럼 영향을 주고 받았다. 몸이 처지니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잠도 늦게 자고 나쁜 꿈을 꾸다 깨기도 일쑤였다.
난자가 잘 자라려면 10시엔 잠자리에 들어야한다는데 부정적인 미래 걱정으로 가득찬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면 일찍 잘 수도 없고 수면의 질도 떨어져만 갔다.
이건 악순환도 이런 악순환이 없었다.
난자채취를 하기 전날은 새벽에 깨서 지금껏 해왔던 모든 걱정들을 시간 순서로 나열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병원 침대에 누워서도 '배란이 되어버렸으면 어떡하지, 채취했는데 공난포이면 어떡하지' 같은 걱정을 끝도 없이 늘어놓았다. 수면마취를 깨우는 간호사의 소리에 게슴츠레 눈 뜨고 물은 첫마디는 "몇 개 채취됐어요?"였다.
간호사는 잠시만요 하더니 조금 있다 다시 와서 손가락 4개를 펼쳐줬다.
그 손가락이 나를 고통의 바다에서 건져주는 것 같았다. 배도 아프고 정신도 몽롱했지만 침대에 누워 회복하는 내내 어디로 여행을 갈지 생각하고 있었다.
이게 호르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마음의 문제이기도 하구나 싶었다.
2년이 다되가는 지금에서야 시험관 시술이 힘들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몸이 아프고 축나는 것도 있지만 사람 기분을 이렇게 들었다놨다 하는 게 정말 힘든거구나 싶었다.
우울증이 이런거구나 살짝 맛봤지만 다시 느끼고 싶지 않다.
다들 임신을 준비한다고 하면 마음을 놓아야된다고 하지만 마음놓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금 내가 엄청 스트레스를 받고있구나 인식하고 잘 견디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를 토닥여주고 끝났을 때 결과가 어찌됐건 나 자신에게 작은 보상이라도 해주는 것.
그거 말고 더 할 수 있는게 있을까?
어렵사리 채취한 난자들이 잘 수정되고 그렇게 자라서 제발 건강한 한명의 사람이 되기를 바랄뿐!
지금은 잠시의 이 휴식을 무난히 즐기고 싶다.
나에게 어떤 보상을 해줄지 생각만해도 흐뭇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