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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바다 상어유영 Aug 18. 2022

(난임일기) 아홉번째 난자 채취

리 가려면 돌아가라고 했던가?

매번 난자를 채취하고 배아를 만들어 3일 후에 이식하는 방법을 택했었다.

유산 이후엔 한 달이라도 젊을 때 난자를 채취해서 배아를 만들어두는 방법을 택했다.

흔히 말하는 냉동배아 모으기로 전략을 수정한 것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횟수도 2번 밖에 남지 않았고 내 나이도 감안해서 더 이상 채취 이식을 반복하는 건 무리겠다 싶었다.


지난 번 시술을 통해 배아를 2개 냉동해뒀다.

드래곤볼을 모으듯 배아를 모아두면 마음도 편할 것 같았다.

난소가 늙는 속도가 자궁이 늙는 속도보다 빠르다는 불안도 한몫했다.


지난번 과배란하는 동안 몸과 마음이 너무 피폐해져서 이번에는 필레테스를 끊어서 운동부터 시작했다.

겨울에 입을 외투도 하나 사고 기분 전환을 위해 노력했다.

무엇보다 다시 일을 하기 위해 실습자리를 알아봤다.

출근할 때는 매일 놀고 먹기를 간절히 바랬는데 막상 놀아보니 적절한 노동은 사회적 교류와 자기발전의 원동력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공무원을 그만둔 40대 여성 백수를 써줄 곳은 아무데도 없을 것 같았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지인찬스!

대학 동기 오빠에게 전화를 걸어 재취업을 위한 기술을 익히게 실습 좀 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오라고 했다. 그렇게 11월부터 일주일에 3일간 동기 오빠네 가게에 가서 실습을 했다. 나이 40이 넘어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건 쉽지 않았다. 특히 오래 서있는 건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아니던가!

3주가 지나면서 서서히 몸은 적응이 되어갔다.

겨우내 깡마른 나무에 새 물이 돌듯 그렇게 몸도 마음도 바닥을 치고 나니 살 것 같았다.


아침에 눈이 반짝 떠졌고 더딘 속도에 좌절도 했지만 새로 뭔가를 알아가는 게 신났다.

건강 관련 공부를 하면서 베타카로틴,Vit.B,C,E를 고함량으로 바꾸고 에스프레소 커피에 들어있는 콜레스테롤을 피하기 위해 드립커피를, 과자며 빵같은 정제된 탄수화물로 만든 음식을 자제했다.

한달이 지나니 컨디션도 좋아지고 몸무게가 2킬로나 줄었다. 퇴근 이후에도 책을 읽고 공부를 했고 내 시간과 삶이 꽉 차는 것 같아서 기분도 좋았다.

11~12월 두달간 실습을 통해 실전에 투입되어도 되겠다는 결론이 섰을 때 하산을 했다.


12월28일부터 9차 과배란 주사를 시작했고 아이스백에 주사를 싸들고 새해 첫날을 맞으러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다. 용평에서 스키도 타고 선자령 트레킹도 하면서 그동안 멀리했던 컵라면에 치킨까지 원없이 먹었다.

집에서 전전긍긍하며 결과를 기다리는 것보다 시간도 잘가고 노는 데 정신을 쏟다보니 뭐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3박4일 여행 중에 병원 일정이 있어서 평창에서 수원까지 왔다가 진료보고 다시 평창을 가기도 했다. 마치 새로 여행가는 것처럼 가는 길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마지막날까지 알뜰하게 스키를 타고 돌아와서 1월5일에 난자를 채취했다.


원없이 놀았고 영양제도 원없이 먹어서 그런지 이번에 잘 안되도 어쩔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난자가 빨리 자라서 9일째 되던날 채취를 했다.


결과는 5개 채취 4개 냉동.

놀랍게도 그 중 3개가 최상급이고 1개가 중상급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한 아홉번의 과배란 중 가장 성적이 좋았다.

식단 관리를 하지도 않았고 빡세게 운동을 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좋은 결과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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