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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바다 상어유영 Jan 02. 2023

(태교일기) 둘이 가서 셋이 나오다.

38주4일

대학병원은 약 두 달 전에 수술 일정을 잡는다.

12월12일과 14일 중 택일을 하라는 의사의 느닷없는 질문에 잠시 고민하다 하루라도 더 뱃속에 있는 게 아이에게 나을것 같아서 14일로 택했다.

그렇게 우리 아이 새싹이의 탄생일이 결정되었다.

임신일수로는 38주 4일이 되는 날이다.


수술일이 잡히니 막연한 두려움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바뀐다. 

여름부터 준비해두었던 아기 옷과 이불 등을 꺼내서 두 번씩 빨고 육아용품이나 장난감들은 소독하고 닦아 비닐봉투에 고이 넣었다.

출산가방을 싸기 위해 트렁크를 거실에 열어 두고 필요한 것이 생각날 때마다 넣었다. 

기저귀, 옷가지며 5박6일 입원용 물품과 3주간의 조리원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다보니 생각보다 짐이 많다.

아이와 함께 돌아왔을 때 허둥지둥하지 않도록 냉장고, 펜트리, 다용도실 등 집안도 최대한 정리를 해두어야할 것 같았다. 

날짜가 지나갈수록 할 일이 자꾸만 눈에 보였다.


37주 이후엔 언제든지 아이가 나와도 된다고 했는데 자다가 갑자기 배가 아프면 어떻게 해야하나 싶었다. 

남편을 불러 차를 몰고 가야하는지 119를 불러야하는 지도 미리 생각해 봐야했다.

만삭에 이르니 몸은 한결 더 무거워져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아이가 커지면서 폐가 위로 밀려올라가 숨이 가빠지고 무게 때문에 꼬리뼈 통증은 더욱 심해졌다.

그래도 무사히 38주3일이 되어 남편과 함께 출산 가방을 들고 병원에 갔다.

어디가 아파서 입원하는 게 아니라 다행이긴 하지만 병원에 가는 길은 설레기보단 착잡했다. 

둘이 차를 타고 가지만 돌아올 땐 셋이 되겠구나......

뒷 좌석에 장착해 둔 바구니 카시트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2022년 12월 13일은 중부지방에 눈이 많이 왔다.

집에서 나서자마자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입원 전에 마지막 오찬을 어복쟁반으로 화려하게 하고자 했으나 남편이 늦게 오는 바람에 정작 점심도 못먹고 입원수속을 했다.

산부인과 병동에 들어서자마자 간호사는 환자복을 주고 혈압을 재러 오겠다고 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자마자 혈압을 재고 간단한 수술사항을 안내받고 곧 태동검사와 피검사 그리고 수액을 꽂을 굵은 바늘을 찔렀다. 두 군데나 찔렀는데 잘 안되서 세 번째에 성공했다.

그 사이 남편이 사온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허기를 달랬다.

병원 침대에 누워서도 아이가 잘 있는지 걱정이 됐다.

간호사가 자기전, 새벽, 수술 직전까지 태동검사를 했다. 다행히 새싹이는 잘 있었다.


다음날 오전 10시30분이 되자 이동식 침대가 나를 데리러 왔다.

멀쩡하게 걸어서 들어간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침대에 누워서 실려갔다.

분만장까지 가는 복도의 천장 불빛이 막 지나갔다.

설마 이대로 죽진 않겠지? 

영화에서 보니까 마취가 중간에 깨는 경우도 있던데......

하반신만 마취한다던데 내 배를 가르는 소리가 들리면?

애한테 뭔가 문제가 있으면 어쩌지?

30미터쯤 가는데 별의별 생각이 다든다.


수술실 들어가기 전 회복실 침대에 누워서 심박동과 산소포화도를 재는데 자꾸만 눈물이 난다.

난임병원 침대에서 시술을 기다리며 올려다보던 그 천장과 비슷해서 그런지 이제야 그 끝이 보이는 것 같아서 더 눈물이 났다.

11시가 되니 내 침대로 여러 명이 와서 끌고 수술실로 들어간다.

수술대에는 내 힘으로 올라갔다.

마취과 의사가 간단히 설명한 뒤에 척추마취를 위해 등을 새우처럼 구부리라고 했다.

바늘에 대한 공포가 있어서 그런지 찌른다고 할 때 몸을 움찔했다.

생각보다 아프지 않아서 약간 민망했다.

그리고 약물이 주입되니 허리부터 허벅지까지 따뜻한 느낌이 든다. 참 신기했다.

발끝부터 마취가 시작되어 가슴 아래까지 마취가 된다고 했다. 

실제로 감촉을 느껴보라고 여러 번 차가운 솜을 문지르며 물어보는데 신기하게도 아래에서 위로 서서히 감각이 없어진다.

그래도 배를 가르는 건데 아프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긴장에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마취과 의사가 가슴까지 마취된 걸 확인한 후에 내 산부인과 주치의가 들어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배 부분을 누르고(이건 나도 못봐서 정확히는 모름) 느껴지냐고 물어봤다. 

아무 느낌도 없었다. 이때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

곧이어 의사가 메스, 메스 몇 번을 얘기했다.

아마도 내 배가 갈라지고 아이를 꺼내고 있는 것 같은데 정말 아무 느낌이 없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갑자기 아기 울음소리가 났다.

영화에서만 보던 바로 그 장면일 것이리라...


눈을 부릅뜨고 내 아이의 안위를 확인하고 싶었는데 가슴 위에 가려진 파란색 천 때문에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내 머리쪽에 서 있던 의사인지 간호사인지 모르겠지만 그 분에게 애가 어떤지 물어봤다.

그 분은 내게 아이가 참 예쁘다고 말해줬다.

내 오른쪽 어딘가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연신 나더니 외관상 아이는 문제없이 건강하다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이어 누워있는 내 왼쪽으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얼굴을 보여줬다.

쪼글거리고 빨갛고 못생겼으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하얀 천에 쌓인 새싹이는 뽀얗고 주름도 별로 없이 너무 예뻤다.


아이를 보자마자 나는 꺼이꺼이 울었다. 

그건 정말로 '감격의 눈물'이었다.

거기 있던 의사와 간호사에게 감사하다고 계속 얘기했다.

지난 38주의 임신기간과 2년5개월 시험관 시술을 했던 기간이 잛은 순간 머리 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바로 아이는 밖으로 나간 것 같았다.

아마도 수술실 밖에 있던 남편을 만나지 않았을까 짐작했다.

누군가 나에게 후처치하는 동안 자겠느냐고 물어봤다.

그게 수면마취를 의미한다는 걸 단톡방 동생들을 통해 알아뒀던 터라 얼른 재워달라고 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그 회복실에 와있었다.

다시 내 손가락과 팔에 혈압계와 산소포화도를 재는 기계가 채워져 있었다.

추워서 간호사에게 온풍이 나오는 이불 같은 것을 더 켜달라고 부탁했다. 

곧이어 남편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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