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앙 부처에서 공직생활을 13년 가량하고 퇴직했다.
대학을 졸업할 당시 큰 조직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싶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었다.
다행히 원하던 곳에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으니 운이 좋은 편이었다.
업무는 시스템화 되어 있었고 사업업무를 지원하는 총무, 인사, 운영, 전산 등 각종 서비스들은 해당 파트에서 해결해 주었다. 조직이 크기 때문에 효율성과 민첩성이 떨어지는 단점도 있었지만 10년쯤 근무하면 내 집처럼 편해진다.
조직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으며 일한다는 건 어쩌면 직장인으로 가장 큰 장점이었다. 당시에는......
하지만 정년퇴직을 생각하고 들어간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중도퇴직을 하고보니 내가 조직에서 가졌던 강점은 부질없는 것이 되어 있었다.
내가 쓰던 한글 프로그램은 사회에선 많이 쓰지않는 프로그램이었고 내가 했던 업무들은 시야나 범위가 너무 커서 일상생활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나는 작은 컴퓨터 에러에도 속수무책인 바보가 되어 있었다.
내가 큰 조직에서 작은 나사로 나를 맞추며 마구 돌아가고 있던 사이에 사회는 너무나 빨리 변했고 작은 나사는 조직에서 벗어난 순간 쓸모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
막상 퇴직을 하고 동네에서 만난 전업주부 언니들이 얘기하는 삶의 지혜와 그들의 재테크, 자녀교육 노하우는 실생활에 적용가능한 정보였다.
지금 당장 쓸수 있거나 돈이 되는 정보는 엄마들의 단톡방과 인터넷 까페에 스쳐지나가는 게 더 많다는 것을 퇴직 후에야 알게 되었다.
물론 내가 고위공직자였거나 권력을 가졌었다면 고급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으나 실무자였던 나는 업무를 파악하고 조직에 나를 맞추는 것도 버거웠다.
오히려 퇴직 후 생각해보니 작은 조직에서 일부터 백까지 모든 걸 혼자 처리했다면 사회인으로서 내 쓸모는 더 커졌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내가 사장으로 자영업을 했다면 사회 변화를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차리고 개인의 능력치는 일당백이 되어있지 않을까?
물론 다양한 관계자와 의견을 조율하고 협의하는 절차와 방법, 세련되게 말하는 방법이나 태도, 훌륭한 상사에게 배울점, 불편한 동료와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 큰 조직에서 얻은 지혜와 노하우도 당연히 있다.
이런 것들은 작은 조직의 조직원과 자영업 사장님들이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하는 것들일 것이다.
다만 큰 조직에서 한자리 차지했다고 그 자리가 나라는 사람과 동일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일수록 퇴직 후 나와의 괴리감이 나를 초라하게 만들고 이후 활동 범위는 좁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직원으로서의 나는 그 조직에 속해있을 때까지 유효한 것일 뿐이다.
언제나 자연인 나의 존재를 잊지말아야 한다.
퇴직은 원래부터 있던 "자연인 나"라는 존재로 돌아온 것일 뿐이다.
특히나 큰 조직에서 근무하는 분일수록 이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늘 책상머리에 써붙이고 읽으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