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깊은바다 상어유영 Nov 11. 2022

(태교일기) 태교여행과 만삭촬영

28주

요즘 젊은 부부들은 임신하면 태교여행이 필수라던데 임신 전엔 솔직히 유난떤다고 생각했다.

태교란 거창한 이름으로 자기들 놀러가는 걸 합리화하는 것 같은?

10차 시험관 시작 전인 3월에 여름휴가를 계획하며 제주행 비행기표와 숙소를 예약해뒀는데 어쩌다보니 그게 내 태교여행이 될 줄이야!

겪어보지않고 미리 판단하면 안된다는 진리를 다시 복습한다.


막상 여행을 앞두니 걱정이 앞선다.

의사에게 물어보니 제주도 정도는 가도 좋다고 했다.

몸이 더 무거워지기 전인 28주차, 9월25일에 김포에서 비행기를 탔다.

지하철 핑크색 임산부석이 비어있는 것도 공항에서 패스트 트랙으로 통과시켜 주는 것도 항공사에서 주는 풍선아트꽃과 잘생긴 스튜어드가 쓴 손엽서도 모두 고맙고 기분이 좋았다.

사회적 배려를 받는 입장에 있어본 적이 없던 내가 그 대상이 되고 배려를 받아보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하게 느껴지고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가 이런 거구나 싶었다.



이미 태교여행을 다녀온 선배님들이 제주도에서 만삭 스냅촬영도 하라고 알려줘 그것도 예약을 했다.

45&49세 부부의 태교여행과 만삭촬영이라니......

누군가 주책이라고 비웃을까 걱정이 됐지만 내 인생에 다시 없을 기회같아 하기로 했다.

남편도 처음엔 남사스럽다고 했지만 배부른 아내의 말에 더 토를 달지는 않았다.

 

여름 더위가 한풀 꺾인 제주도는 아침 저녁으로 선선했고 낮엔 약간 더운 정도라 다니기 좋았다.

그동안 임신하고 걱정하느라 몸도 마음도 약간은 지쳤었는데 깨끗한 공기, 빛나는 잎사귀, 부드러운 햇살, 푸른 바다가 단지 나에게만 좋은게 아니라 뱃속 새싹이에게도 좋을 것 같아 기쁨은 두 배가 되었다.

좋은 것 보고 맛있는 걸 먹으면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 난다더니 태어나면 꼭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적어도 한 달 이상 아이를 이런 깨끗한 자연에서 뛰어놀게 해주고싶다는 데에 미쳤다.

마침 펜션 안주인이 근처 초등학교에 아이가 전학 오면 그 가족에게 집을 임대해준다는 정보를 알려주셨다.

막연한 생각이 구체화되고 이미 그걸 실현한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되니 희망이 차올랐다.

콘크리트빛 도시에서 태어나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학원을 다니다 입시를 거쳐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닐 아이의 미래를 그려보면 어릴 때 그 정도의 초록과 추억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엔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는데 무지해서 또는 바쁘단 핑계로 흘려버렸던 기회가 때마침 내가 열려있을 때 다가온다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을 가고 다른 사람을 만나고 책을 읽는게 아닐까 싶다.


나의 아이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듣고 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최고의 방법은 내가 그런 삶을 살며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인데......

이 또한 그렇게 살아오지 못한 내 아쉬움을 아이에게 투영하는 욕심일지 모르겠다.


새 생명을 가지면서 내 인생을 많이 돌아보게 된다.

아이에게 나는 어떤 엄마일까, 어떻게 얘기해주고 가르쳐 줘야할까, 과연 내가 그런 걸 다 감당할 수 있을까 같은 끝없는 물음이 나를 부담스럽고 작아지게 만든다.

이제는 취소할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큰 변화가 내 앞에 있다.

출산과 양육을 넘어 아이에게 좋은 부모 사람이 되어야할텐데.......







새싹아

자식은 부모를 선택해서 온대

네가 어떤 연유로 우리를 선택했는 지 모르겠지만

잘 키우려고 노력하지 않고 사랑만 많이 주면서 키우려고 해볼께

고맙다 우리한테 와줘서


                    


                    

작가의 이전글 (태교일기) 당근과 핫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