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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바다 상어유영 Apr 26. 2024

(아이와 미술관)1. 수원시립미술관

육아와 집안일에 잊혀가는 나를 찾는 기행

가 예술과 가까웠던 건축학도 시절 건축 관련 책들은 하나같이 어려웠다. 해한 표현과 어색한 번역은 몇 장 버티지 못하고 책을 덮게 만들었다. 그런 소소한 좌절감이 결국 건축을 포기하게 만든 게 아닐까 핑계도 대본다.  (결정적으로 축에 재능이 없었음)


그나마 당시 내가 읽은 예술과 관련된 책들 중 지금까지 기억되 이해와 공감이 갔던 책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정도가 아닐 한다.

 책에 나온 대로 과에서 건축물 답사 여행가고 혼자서 일정을 만들어 답사를 해본 적이 있는데 유홍준 님과 같은 그런 흥분과 감격은 없었다. 아마도 내 지식과 감성이 유홍준 님에 비해 일천하기 때문이겠지......


가 예술을 멀리하게 된 발단은 건축에서 시작했으나 이후 그 대상은 미술로 확대되었다. 아름다움을 가까이하고 싶고 알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고 특히 나는 어릴 때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 가끔 미술관에 들러 전시를 보면 현대미술 중 특히 추상미술은 도무지 이안 되고 제목마저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작품들은 미술과 친해지고 싶은 내겐 폭력이었다.

그래서 미술작품과 미술관은 내게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짝사랑 되고 말았다.


아이를 갖기 위해 일을 그만두고 낳은 그 아이가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다시금 예술을 그중에서 미술에 대해 목마름을 느꼈다. 집에만 있다 보니 시각적인 자극이 필요했던 것 같다.

집에서 아이와 하루종일 같이 있을 때 짬나는 대로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보면 콘텐츠에 대한 갈증은 어느 정도 충족이 되는데 시각적인 아름다움 특히 아름다운 그림이 주는 감동이 아쉬움으로 다가올 때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미술 나아가 예술에 대한 내 오랜 짝사랑을  어떻게든 표현할 용기가 생겼다. 용어에 대한 설명에서 시작해 작품에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쉽지만 깊이 있는 내용이 단숨에 책을 읽고 관련 책을 추가로 읽게 만들고 추천하는 장소에 가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의 해묵은 짝사랑을 찾아 한발 다가가보려고 한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16개월 된 아들과 함께이지만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미술관을 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집에서 가까운 곳부터 하나씩 시작해 보기로 한다.

첫 방문지는 수원시립미술관이다.

자 이제 시작!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유모차를 밀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데 앞에 서계시던 도슨트(이름표를 걸고 계셨음)께서 입구로 가서 티켓팅을 해야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입구 쪽으로 돌아가 지갑을 꺼내는데 오늘예술이 있는 날(매월 마지막 수요일)이라 입장료에 주차까지 2시간 무료란다.

역시 하늘은 돕는 자를 돕는구나!

미술관이 더욱더 가깝게 느껴진다.



1 전시실 기획전은 수원에서 활동한 이길범 화백의 전시다. 정조 어진(소실되어 상상으로 그렸을 텐데 어떻게 그렸을지 너무나 궁금함)을 포함해 그의 초기부터 후기까지  작품과 작품을 위해 모은 자료부터 스케치까지 전시하고 있었다.

미술관에 가면 작가의 작품은 주로 마지막 완성작만 보게 되는데 그가 참고했던 사진들 연습했던 습작들을 보니 한 인간으로서 노력하고 고민했던 과정이 이해가 되어 작품이 더욱 다가오는 것 같았다.



2,3,5 전시실 기획전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방법(Can't help but love her, 영어로 읽으니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반어법 표현인 듯)은  사실 사전 설명을 읽었을 때 가장 기대가 없었는데 전시 영상을 보는 순간 울컥했다.

작가가 직접 붓이 되고 실이 되어 노동의 수단으로 쓰이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데 몇 시간째 서류 작업에 파묻혀 컴퓨터 모니터로 거의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자세로 일하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다.


여성과 노동에 대해서 주로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었는데 허드렛일, 단순작업, 집안일 등을 맡아온 우리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을 예술적 방법(동두 기지 여성들과 미군 사진, 작가 자신의 몸을 물체화해서 노동의 현실을 보여줌, 작가 엄마의 옛날 사진 통해 가부장 사회에서 그녀의 위상과 경직된 표정 반면 패기 있는 아버지의 모습과 노년의 반대의 모습)으로 보여주는데 그냥 다큐멘터리 주요 내용을 시각화한 것 같았다.

작품을 보면서 작가의 메시지를 알아차리고 내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묵직한 감동을 느꼈을 때 눈물이 핑 돌았던 것이다.


작품의 메시지를 알아채는 순간의 설렘과 감동을 느끼기 위해 미술관에 가는구나를 알게 되었다.



전시를 보고 자연스레 발길이 2층으로 향했다. 유모차가 있어서 엘리베이터를 탈 수밖에 없었는데 내리자마자 나혜석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 전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보고 한번 검색해 봤던 그 신여성.

녀의 작품을 잠시 보고 역시나 조선말기 시대를 앞서간 신여성쯤으로 생각하고 나왔는데 나중에 미술관 밖에서 우연히 마주친 아까 그 도슨트 분이 나혜석에 대한 설명을 길게 해 주셨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 시간에 맞게 움직이거나 원하는 곳을 자유롭게 다닐 수 없는 단점이 있는 반면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내게(정확히는 아이에게) 무척 친절하고 호의적인 것이 장점이다.

유모차를 밀면 앞에서 문을 잡아주는 것은 다반사이고 아이가 귀엽다며 젤리, 초콜릿 심지어 용돈까지 주는 분도 있었다.


이번에 만난 도슨트 분도 입구에서 잠시 인사만 나눴는데 미술관 밖에서 만나자마자 아이가 귀엽다며 수원행궁 화령전에 대한 설명(정조의 군복 영정을 모신 곳, 유일하게 묘가 아닌 곳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 나혜석의 작품 중 화령전 모란이 이건희 컬렉션 중 유일한 작품)에서 나혜석 아들(한국은행 총재)이 모은 어머니의 작품으로 수원시립미술관이 시작됐고 그녀의 성장배경, 결혼과 이혼, 세계여행, 불륜, 행려자로 객사하기까지 기구한 인생사가 나혜석에 대해 궁금증을 일으켰다.

결국 돌아오는 길에 그녀의 책 한 권을 빌려왔다.



사전 정보로 기대가 컸던 세컨드 임팩트는 큰 임팩트는 없었지만 볼 만했다.

원본과 복제, 어디까지가 복제이고 어디까지가 2차 저작물인가의 정의가 호기심을 자극했고 여러 작가의 관련 작품을 콜렉팅 해놓아 전시주제에 대해 이해가 쉬웠다.


아들과 가까운 카페에서  점심과 번개같은 커피로 첫 미술관 나들이를 마무리한다.

'아는 만큼 보이는 눈'과 '뜻밖의 곳에서 발견하는 내가 주는 공감과 감동'이 이 기행과 계속 함께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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