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커리어)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

1종 대형면허 취득기

30대까지 새로운 것에 목말라했다.

세상에 뿌려진 다양함을 조금이라도 더 맛보고 싶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장소에 가고 새로운 분야를 알고 새로운 음식을 먹고 새로운 옷을 입고

그리고

새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십이 넘어가니 새로움이 주는 설렘 보다는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이 더 좋았다.

특히 삼십 개월된 아이의 내,외적 변화무쌍함은 이해하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사람이 북적이는 핫플레이스, 많은 사람이 모이는 친목 모임, 어린이집 엄마들과의 공동육아도 가급적 피한다.

사회적 운신을 폭을 좁히는 대신 내적 평화를 얻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내적 평화는 가만히 있는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었다.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하고 식사를 조절하고,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을 위해 집안을 정리하고, 사회 변화를 알기 위해 뉴스를 보고 책을 읽고 나름 치열하게 평화를 유지한다.

고요하고 치열하게 지켜오던 평화는 출근과 함께 흔들렸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하고 새로운 것을 공부해야하고 낯선 모임에도 나가야했다.

일요일 근무를 고작 두번하고 다음 날부터 아프기 시작하더니 아침에 먹은 걸 다 게워내고 설사까지 했다.

거의 일주일을 기운없고 입맛 없는 상태로 누워 지냈다.

예전엔 하루 정도 누워있으면 회복했는데 '이 정도로 약해졌나?'싶어 당혹스러웠다.

두달간 쉬었던 운동은 스트레칭으로 다시 시작했고 밤에도 무리하지 않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컨디션이 돌아오고 6월 중순 1종 대형면허를 따기 위해 운전학원을 찾았다.

아이가 크면 함께 캠핑카로 장거리 여행을 할 생각으로 여유있을 때 따둬야겠다 싶었다.

학과 3시간, 장내 기능 10시간 수업을 듣고 마지막날 시험을 보는 과정이었다.

수월하게 첫 운전면허를 땄던 기억을 더듬어 이번에도 쉽게 딸 수 있을 줄 알았다.

오랜만에 하는 새로운 도전에 약간 설레기도 했다.


기능 수업 첫날.

45인승 버스를 타고 운전석 뒷자리에서 강사님 설명을 들으며 1시간 동안 코스를 돌았다.

버스 운전은 승용차와는 차원이 달랐다.

1.5배는 커진 운전대, 무릎이 아프도록 눌러 밟아야 하는 클러치, 온 힘을 다해 넣어야 하는 수동 기어까지 모든게 낯설고 버거웠다.

언덕, 굴절, S자, T자, 평행주차, 변속 등 코스 별 공식은 차치하고 차선 맞춰 주행하고 회전하고 출발, 정지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덜덜거리는 버스의 느낌과 옆에서 말하는 강사님의 목소리조차 다 무섭게 느껴졌다.

첫 날 한 시간의 강의와 한시간 운전을 마치고 버스에서 내리는데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 날 저녁부터 두통이 오더니 다음날 아침까지도 두통이 사라지지 않았다.

두통이 심해지니 입덧할 때처럼 속도 메스꺼웠다.


다음 날은 진통제를 먹고 학원에 갔다.

둘째 날이라고 나아진 건 없었다.

두 시간 동안 강사님이 옆에서 지시하는 대로 운전했는데 운전을 하는 게 나인지 남인지 모르겠는 채로 두시간이 쏜 살같이 지나갔다.

주말까지 세 번의 수업을 더 듣고 나면 시험인데 자신감은 커녕 돈 쓰고 스트레스 받고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했는지 후회가 밀려왔다.


KakaoTalk_20250711_105140181.jpg 내게 불합격의 아픔을 준 버스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당일 오후 치룬 시험에서 첫 코스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실격됐다.

실격되면 그 자리에서 차를 멈추고 시험관 지시대로 바로 내려야한다.

시험장 도로 가운데 버스를 세우고 걸어 나오는데 제대로 가르쳐주지않은 것 같아 학원 측에 화가 났고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사무실로 돌아와 불합격했다고 하니 새로 시험을 치르겠냐고 물어왔다.

여기서 더 스트레스 받지 않고 포기할까 잠시 고민했다.

두 시간 더 수업 받는다고 합격할 자신도 없었지만 학원비가 아까웠고 앞으로 영원히 1종 대형면허는 못따겠다 싶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2시간 추가 수업과 2차 시험을 예약하고 돌아왔다.


사십이 넘어 새로운 걸 시도한다는 게 이렇게 큰 스트레스인지 몰랐다.

견디고 버티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내 몸이 예전같지 않았다.

조금만 무리해도 아프고 탈이 났다.

이래서 나이들면 익숙한 대로 살고자 하는구나 싶었다.

어른이 되니 쓴 소리, 바른 말 하는 사람은 없어진지 오래됐고 하기 싫은 것들은 피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 시간 만큼 나는 변화에 취약해진 것이다.


두 번째 시험 예약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두 번째도 떨어지면 다시 못할 것 같았다.

유투브를 찾아 코스별 팁을 외우고 눈을 감고 아침 저녁으로 운전하는 시뮬레이션을 했다.


내가 실격처리된 굴절코스에서 운전대를 얼마나 풀고 다시 감아야 하는지 그때 클러치는 어떻게 밟고 떼야하는지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연습했던 차와 시험 때 다른 차가 배정되는 경우 당황하지 않기 위해 시험 전 수업에선 서로 다른 차량으로 연습했고 실격될 것 같은 상황에선 우선 정지하고 후진하는 꿀팁까지 익혔다.


그리고 두번째 시험에서 85점으로 합격했다. (합격은 80점 이상)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 멘트를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성공했다는 기쁨 보다는 예전과 달라진 나 자신을 알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느낀 몸과 마음 고생, 이 과정을 다시는 안해도 된다는 안도감이 더 컷다.

나오는 길에 시원한 음료수를 뽑아 강사님과 감독관께 하나씩 드렸다.


나이 먹으면서 사라진 체력과 총기는 경험과 연륜으로 극복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새로운 것을 맞닥뜨리면 예전보다 더 많이 노력해야하고 고통을 감내해야했다.

나이 들어 나아진 게 있다면 내 약점을 알기에 내게 맞는 대응방법을 찾는 게 예전보다 아주 조금 나아졌다는 정도랄까.

나이 먹는다고 저절로 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

역시 공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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