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1998)
영화를 따라가는 속도
요즘은 영화가 나를 얼마나 집중하게 하는지, 영화에서 보여주고픈 어떤 것을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는지, 그런 방식이 발휘하는 효과는 어느 정도인지에 더욱 주목을 하게 된다. 이 영화는 사실 자주 끊어봤다. 영화가 매력이 없어 그랬던 것도, 불편해서 그랬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의 관심을 붙드는 장면이 너무 많았기에 자꾸만 흐름에서 빗겨나 샛길로 벗어나게도, 잠시 쉬게도 했다. 이대로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장면에서 잠시 멈추고 생각을 정돈한 후 연이어 감상하길 여럿 반복했다. 말하고자 하는 바야 명확한 듯했지만 영화 속 작은 부분 하나도 나를 잠시 멈추게 하고, 생각하게 하고, 감동하게 하였기에 흐름을 끊는 행동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 영화는 빨리 씹어 삼킴으로써 이해시키는 방식이 아닌, 천천히 꼭꼭 씹게 함으로써 혓바닥 구석구석 맛을 기억시키는 그런 영화였다. 세밀한 맛이 느껴지면서도 전체는 조화롭고 일관된 맛이다. 천천히 느끼지 않으면 모르고 넘어갈 것들이다.
나는 그동안 영화가 느리다, 느슨하다, 여유롭다는 평을 영화의 전개 속도에 맞춰 내렸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말을 달리해야겠다. 영화의 전개 속도보다 관객이 영화를 따라가는 속도를 느리게 만드는 그런 힘으로 영화가 여유로웠다.
기억의 가치
나의 기억은 가끔은 너무 생생해서 눈을 뜬 순간 느껴지는 현실에 이질감을 느끼게도 하고, 가끔은 평생을 잊지 말자 다짐했음에도 금세 옅어져 버리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시간이 앞으로만 흐른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다시 올 수 없는 순간에 대해 아쉬움과 지금, 이 순간이 기억의 저편에 자리 잡은 순간부터 서서히 사라지게 될 사실성에 대한 안타까움. 그 때문인지 사람들은 기억이라는 어찌 보면 단순한 저장창고에 불과한 것에다 더욱 아름답게 포장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사람은 지난 일을 좋게 포장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당시 사건이 나를 얼마나 기쁘게 하였든, 얼마나 상처를 주었든 하는 것은 중요지 않다. 어떤 이유에서든 우린 미래로 나아갈수록 그때의 진실과 그때 느낀 감정의 규모를 자신을 속이는 행위를 자연스레 반복할 뿐이다. 그래서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본래의 빛은 바래지고 형태 또한 처음과는 달라진다. 좋았던 순간은 더욱더 좋은 기억으로, 힘들었던 순간은 영웅담으로 기억된다(물론 그중엔 쳐다보고 싶지 않은 기억도 있지만).
이제 우리도 영화처럼 나에게 있어 가장 특별한 기억을 하나 골라보자. 선택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선택의 과정에 더욱 주목하길 바란다. 하나의 특별한 기억을 고르기 위해 이전의 모든 기억 각각을 어느 시점에서, 어떤 기준으로 가치와 순위를 매기게 되는지를. 가치를 매기는 시점은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지금, 이 순간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억 각각은 정확한 가치가 없다.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순간부터 본래의 의미는 퇴색되었기 때문이다. 단지 지금 내가 중요시하는 어떤 것에 맞춰 그때를 다시 떠올리고 보다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그만큼 더 강한 자기합리화를 곁들여 표면에 끌어낼 뿐이다. 이때의 의미부여에는 나뿐만 아니라 외부에 의해서도 일어난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을 남들의 것보다 더 특별하게, 더 화려하고, 더 아름답게 만들어버린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진실한 가치를 잃어버린 과거에 가치를 매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내가 세상을 살아온 증거
나는 명예를 중시한다. 죽어서도 남는 것은 내가 살아생전 이뤄놓은 것들과 나의 이름 석 자 뿐. 내가 지금을 살았다는 흔적을 남기기에 이만한 것이 또 있을까. 나의 남들과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도 여기서 비롯된다. 남들과는 다른 삶을 열심히 살면 더욱 눈에 띄는 성공을 거머쥘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내가 칭송받는 위인으로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평생을 살았으면 한다.
사실 이는 당장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투자한다고 하지만 그런 사고가 현재를 되레 망쳐버릴 수도 있다. 지금이 그저 먼 미래를 위한 증거물 만드는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도 높고, 그렇게 살다 맞이하게 된 미래에서 지금을 가치 있게 생각해줄 가능성은 반대로 낮아질 것이다. 물론 기억의 미화로 잘 포장할 수는 있겠지만. 그리고 명성이라는 것이 내가 아닌, 타인의 평가에 기반을 둔 만큼 나의 뿌리 자체가 흔들리는 일이 많을 수도 있다. 성공했다 해도 늘그막에 후회로 점철된 채 과거를 자꾸만 되새김질하며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명예에 대한 내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계속해서 추구할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이미 나에게 자연스러운 습관 같은 것이기도 하고, 생각을 바꾸고픈 마음도 없다. 그래도 생각을 조금은 더 구체적으로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후회 없이 나의 증거를 세상에 남길 방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