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스콧 감독의 프로메테우스(2012)
이 영화를 보는내내 영화 “디센트”가 떠올랐다. 디센트를 보면서 느꼈던 답답함을 이 영화에서도 느꼈다. 동굴, 흐린 시야, 좁은 공간, 무엇이 나에게 위협을 가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 이는 디센트를 보는 당시 생각했던 답답함의 근원이다. 감각의 마비로 인한 공포심이 내 숨을 막히게 하는거라 그리 생각했었다.
최근 모험이란 주제로 얘길 나눈 적이 있다. 그때 ‘무모함’에 대해서도 말이 오갔었다. 그날 누군가가 말했다. 무모함은 제대로 된 지식 없이 무턱대고 뛰어드는 것이라고. 이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사실 난 이전만 해도 무모함을 모험심 넘치는 자의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두려움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있어 굉장한 걸림돌이고 겁 많은 이들은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각했다. 그래서 그날의 무모함에 대한 말은 내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때 이후로 이 단어가 머릿속에서 부유하고 있다. 그 전 주에도, 그제도, 어제도 계속 생각했다. 무모함의 의미와 무모함이 미치게 될 영향과 무모함 뒤에 따라올 결과물의 형태에 대해서.
그리고 오늘 이 영화를 보고 다시한번 무모함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프로메테우스 또한 내게 지속적인 답답함을 안겨주었다. 이 답답함은 감각의 마비에 의한 것이었다기 보단 정보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목적지와 곧 마주하게 될 이들에 대한 정보 없이 초대장 하나 믿고 무작정 뛰어든 그 무모함에서 답답함을 느꼈다. 엔지니어라 지칭한 존재들이 우리에게 우호적인지 적대적인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준비도 없이 신에 가까워지려 한 그 무모함. 우리를 창조했단 이유 하나만으로 막연히 믿어버리는 그 어리석음(사실 그들이 정말로 우릴 만들어냈는지 조차 확신하지 못한 채 여행길에 올랐다). 혼자만의 길이 아니었기에 이 무모함은 더 무책임해보였다.
모든 위험요소에 대비한다는 건 사실 상 불가능하다. 모든 위험을 대비하기엔 우리가 너무나 짧은 시간을 사는데다 아직 모르는 것들이 아주 많기에. 그래도 준비할 수 있는 만큼은 최대한 준비를 해야한다. 적어도 위험할 수 있다고 언급이 된 것에 대해서는 철저히 대비를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기대한 속도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답답할 수 있다. 위험을 계속해서 알리는 이들에게 겁쟁이라 욕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함께 하는 이들의 안정성 나아가 목숨까지 담보로 걸려있다면 속도에만 급급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