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터널 애니멀스

톰 포드 감독의 녹터널 애니멀스(2016)

by 유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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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에 의한 영화


에드워드는 수잔에게 한 편의 소설을 전한다. "녹터널 애니멀스". 공교롭게도 이 영화의 이름 또한 녹터널 애니멀스이다. 그렇게 이 영화엔 두 개의 이야기가 공존하게 된다.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이름의 이야기가.

같은 이름의 서로 다른 두 작품은 모두 수잔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모두 수잔이 풀어나가고 있다. 에드워드의 소설은 글로서 수잔에게 전해진다. 전해진 글을 수잔에 의해 영화상에서 드러난다. 수잔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과 소설 속 현실은 유사한 구도를 지닌다. 그리고 이 두 시공간의 사이는 교묘한 편집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방식이 서로 다른 두 녹터널 애니멀스가 수잔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불행의 집행자


모든 걸 다 가진 수잔은 자신은 불행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염치없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그녀는 마치 자신의 행복 또는 불행을 다른 누군가에게 맡기고 있는 듯하다. 자신이 행복을 느끼는 것도, 불행을 느끼는 것도 그 사람의 허락 아래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 양 스스로 감정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그녀는 과연 누구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인가. 누구에게 자기 삶의 권한을 내맡기고 있는 것인가. 왜 자신의 손 위에 오롯이 놓여있는 행복을 외면하고 다른 누군가가 열쇠를 쥐고 있다며 자신을 속이는가.



죄책감이라는 구속


수잔은 삶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자신의 엄마처럼, 그 엄마의 엄마처럼, 엄마의 엄마의 엄마처럼 그 수많은 딸과 엄마가 만들어낸 엄마의 굴레에 자신을 가뒀다. 자신을 직접 죄인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만들어버림으로써 그렇게 싫어하던 엄마의 삶을 살게 된다.


그 근원, 그 악의 굴레가 형성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물론 가정환경으로부터의 학습이 가장 막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난 이보다 뒤인 그녀와 에드워드의 관계에 더 주목하고 싶다. 그녀는 에드워드에게 상처를 준다. 현실주의라는 이름으로 그를 평가하고 약한 인간 취급하며 결국엔 다른 이와의 또 다른 관계로 그를 배신한다.


그녀는 그에게 남기고 온 상처로부터 죄책감을 느낀다. 그녀는 이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랑하는 이에게 준 상처에, 그토록 벗어나고 싶던 엄마의 모습이 겹쳐져 자신을 고통에 밀어 넣는다.



진짜 죄


불륜, 배신, 강간, 살인, 폭력. 영화를 보고 있으면 자꾸만 날이 선다. 전혀 도덕적이지 못한 행위들에 속이 뒤틀리고 곧장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진짜로 방금 나열한 저 불법적이고 비도덕 한 행위들이 불편함을 만든 것일까? 이 영화에서 진짜 나쁜 놈은 누구였을까?


솔직히 난 에드워드를 볼 때마다 심기가 불편해졌다. 그리고 자꾸만 눈에 띄는 십자가도 불편했다. “나약함”. 에드워드와 십자가, 이 둘 사이의 공통점은 바로 나약함이다. 이 나약함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관객인 나를 불편하게 했다.


소설 속 에드워드는 아내와 딸을 잃는다. 그 과정에서 그는 무력하기만 하다. 저항하면 할수록 그가 약하디약한 인물임이 더욱 부각된다. 나쁜 짓을 저지른 놈보다 무력하게 사랑하는 두 사람을 뺏겨버리고 마는 아버지란 존재가 나를 더 화나게 한다.


십자가는 신이란 존재 앞에 인간을 나약하게 만든다. 수잔은 수시로 십자가 목걸이를 만진다. 소설 속 에드워드도 십자가를 만진다. 둘 다 무력감에 빠져들 때 십자가를 만진다. 그들은 한없이 무력하기만 한 인간이기에 신에 의지해보려 했지만 끝내 신은 이들을 도와주지 않는다.


그 외에도 무력감은 영화의 곳곳에 심겨 있다. 경찰차가 스쳐 지나가 버리는 장면에서도, 밤이라는 시간적 배경에서도, 광활한 미국의 자연 앞에서도 말이다. 난 이 모든 무력감 앞에 불편해지고 분노하게 된다.



강함이 곧 완벽한 복수가 된다


소설 속에서도, 영화 속 현실에서도 에드워드는 약했으나 결국 강해진다. 강해진 그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복수를 하게 된다. 그리고 복수의 대상이 되는 이를 죄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수잔은 죄가 없었다. 강인했던 그녀는 죄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약해질 대로 약해진 마음으로 에드워드를 찾아간 순간 그녀는 죄인이 된다. 그녀는 약해진 마음으로 상처를 떠안게 된다. 복수는 이렇게 약했던 이가 강해진 상태에서 강했던 이를 약하게 만듦으로써, 죄인으로 만듦으로써 완벽하게 마무리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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