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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온 May 05. 2024

빅쇼트

아담 맥케이 감독의 빅쇼트(2015)



과정으로 사로잡기


이미 일어난 일로 관객을 사로잡으려면? 우린 모기지가 불러일으킨 처참한 결과를 알고 있다. 혹시나 모르는 이가 있을까 싶어 친절하게도 감독은 시작부터 결과를 알리고 들어간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영화도 그렇다. 결과를 안다고 해서 과정이 재미없어지거나 무의미해지지 않는다. 과정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이미 알고 있는 사실, 결과는 처음과 완전히 다른 형태가 되거나 더 풍부한 코멘트가 달리게 된다.



현실적인 이야기로 불태우다


이 영화는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다큐멘터리 냄새도 조금 나는 것 같다.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이 화면이 카메라를 통해 전달되고 있는 것임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그만큼 부드럽지 않은 움직임. 이는 우리로 하여금 카메라를 자꾸만 의식하게 하고 현실의 공기로 환기한다. 중간중간에 삽입된 진짜 현실의 장면 또한 관객을 현실의 공간으로 끌어내린다.


이런 방식이 누릴 수 있는 효과는 무엇일까? 위기에 대한 경각심. 영화를 현실화하려는 감독의 노력이 나에게 미친 영향은 경각심이다. 물론 어떤 매체든 그 매체에서 출력되는 정보는 우리의 기억에 새겨져, 이후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내가 주의만 기울인다면, 아니 어쩌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매체를 통해 경각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여기에 현실감을 더함으로써 한발 더 나아갔다. 경각심에 깊은 분노의 골마저 패였다.


게다가 이 영화는 누군가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힘든 형태이다. 그러다 보니 극 중 인물들이나 보이는 상황에 대해 당사자의 입장에서 한 발 떨어져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만약 감정이입을 하게 만드는 구조였다면 우린 체계를 향한 무력감을 느끼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발 떨어져 그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는 관찰자의 입장의 우리라면 무력감보단 투쟁 의지를 불태우게 된다.



하나의 위기와 세 가지 이야기


하나의 위기 위에 놓인 세 명의 사람이 눈에 띈다. 영화 <국가 부도의 날, 2018>도 세 개의 공통되면서도 개별적인 사건이 영화를 이루고 있다. 두 작품의 구성은 비슷해도 방향은 다르다. 빅쇼트의 경우 세 사람의 목적지는 이익을 얻는 것이다. 반면 국가 부도의 날은 한 사람은 이익을 위해, 한 사람은 이 사회를 지키기 위해, 한 사람은 자신의 삶, 가족을 지키기 위해 움직인다.



난 틀리지 않았어!


시장의 흐름을 파악했다. 표면적으로는 좋아 보이지만 내면은 썩을 대로 썩어있다. 이제 우리의 결정은 확실하다. 빅쇼트. 현재의 역방향에 당당히 거금을 투자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길고 외로운 싸움. 그들은 결국 원하던 승리를 맛보게 되지만 어딘가 개운치가 않다.


우린 가끔 대단한 뭔가를 알아버렸다 싶은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이전과는 다른, 아주 획기적인 날. 마치 내가 다시 태어난 듯한 착각마저 드는 날. 이런 날을 마주하게 되는 계기의 순간은 이전의 흐름에 반하는 무언가 또는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일 수도 있고, 기존에 알고 있던 사실이 다른 어떤 것과 결합하여 더 큰 의미로 발전하게 되었을 때일 수도, 힘든 싸움 끝에 간신히 결과에 도달했을 때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러한 순간을 맞이한 이후엔 내가 다 안다는 착각에 쉽게 빠지게 되는데 아쉽게도 세상은 나의 기대만큼 단순치가 않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요소들과 결합해서 보이는 게 세상이다. 아무리 내 의견이 그럴싸해 보여도 아닐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제 내가 틀렸을 가능성으로부터 탈출하여 내 말이 맞음을 검증받으려고 한다. 이 과정에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일단 우리가 결과와 연관된 수많은 사건을 알지 못하는 이상은 운이라는 게 필요하고, 대중의 반응도 굉장히 중요하다. 남들이 날 흔들어놓을 때 흔들리지 않을 인내심과 매 순간 검증을 위해 계속해서 발버둥 치기도 해야 한다. 대중들로부터 그리고 나 자신으로부터도 가라앉지 않게 하기 위해 계속해서 내 말을 증명할 근거를 찾아내고 이를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비관주의자의 손에도 기회는 머문다


낙관주의자와 비관주의자가 있다고 하자. 둘 중 누가 더 많은 기회를 잡게 되는가? 영화를 보는 동안 이 질문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영화 속 비관주의자들이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들은 삐뚤어질 대로 삐뚤어진 마음으로 사회를 바라본다. 냉소적인 그들의 태도는 올 기회도 걷어차 버릴 기세로 차게 식어있다. 그런 이들에게 인생을 뒤엎을 키가 쥐어지게 된다. 비관주의자는 기회를 잡지 못한다? 아니었다. 비관적이라 해서 그들의 인생 전반이 세상을 등지고 있을 거란 생각은 나의 편견에 지나지 않았다. 단 하나의 특성만으로 누군가의 성공 가능성을 예측하기보다 그 사람을 이루고 있는 다양한 요소를 통해 그의 가능성을 내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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