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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온 Jun 30. 2024

무기력과 나

에리히 프롬의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나에게 바라는 것


나는 내게 바라는 것이 있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일을 찾아 그것에만 완전히 몰입하는 것.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다 걷어내고 오직 나와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일만 나의 세상에 남기는 것. 비록 참석자는 조촐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풍족해질 수 있는 순간에 완전히 몸 담그는 것. 시간이 흐르는지도 모르겠고, 내일 당장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고, 다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은, 그저 내 손에 쥐어진 것만 보이고, 들리고, 알고 싶고, 각인시키고 싶은 상태에 도달하는 것. 몰입은 살면서 몇 번 만나지 못한 귀하고도 드문 사건이지만 너무나 강렬하고 즐거운 시간이었기에 늘 그 순간을 다시 마주하길 바라게 되었다. 앞으로는 이 완전한 집중의 상태를 원할 때마다 계속해서 꺼내어 얻을 수 있길 원한다. 그래서 난 이 갈망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자꾸만 산만해지려는 마음을 의식적으로 억누르는 노력을 하고 있다.


나는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 정확한 앎을 얻는 것. 언제나 어떤 상황 앞에서도 당당하게 맞설 수 있도록 내 생각과 말과 행동이 정확했으면 좋겠다. 뒤돌아서서 내가 맞게 말하고 행동했는지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드넓은 세상 앞에서 내 좁디좁은 경험을 뽐내며 다른 가능성을 무시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감정에 취한 나머지 상대방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나는 지극히 사람이기에, 신도, 현인도 아니기에 그나마 평범한 사람의 입장에서 취할 수 있는 작은 노력이라도 하기로, 최대한 다양하고 많은 양의 정보를 얻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있다. 나 자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 나 자신을 실망하게 하지 않을 것, 내 이름에 먹칠하지 않을 것. 내가 오늘의 나를 어느 순간에, 어느 각도로 돌이켜 봐도 항상 떳떳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난 되도록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요소를 가능한 한 모두 파악하고 이에 대비해야 한다. 타인을 향한 관대한 이미지도 놓쳐선 안 된다. 그러하기에 난 내 기준을 타인에게 강제하면 안 된다. 내 뜻에 맞추길 강요해서도 안 되고, 지금의 내 기분을 앞세워 상대의 기분을 망가뜨려서도 안 된다. 내가 잘나 보이기 위해 상대를 희생시켜도, 그 사람이 빛날 기회를 박탈해서도 안 된다. 늘 의식을 또렷이 깨우고 항시 내 사고와, 말과, 행동을 감시하고 평가하는 노력을 기해야 한다.



애매하고도 모난


오히려 애매하게 집중하고 애매하게 열정적인 사람이 되어 버렸다. 몰입에 대한 열망이 깊어진 이후로 집중하고자 하는 지점에서 확실하게, 강하게 집중하기 위해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하고 있다. 때문에 불필요한 생각이 많아졌다. 이건 이래서 하면 안 되고, 저건 저래서 해야 하고.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에너지 손실을 막기 위해 스스로에게 지운 규정이 많아졌다. 판단 내려야 할 지점도 덩달아 많아졌다. 매번 규칙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따져 묻다 보니 집중해야 할 때를 놓치거나 집중해야 할 상황에 다다랐을 땐 이미 힘이 바닥나 있다. 그래서 난 불만스럽고 무기력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내가 집중하고 싶은 지점은 늘 놓치고 있고 엄한 곳에서 막대한 힘을 쏟아붓고 있기 때문에.


앎은 무기력한 일상에 한 줄기 위로가 되어주는 듯했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될 때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되면 다시금 내가 풍족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앎이 짧은 기간 동안 한꺼번에 들이닥친다면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과 같은 결과를 얻게 된다. 특히나 다양한 영역에서 정확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의도적으로 여러 분야의 지식에 애매하게 손을 대고 있는 나의 경우, 허무하게도 새로운 지식 앞에 이전 지식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곤 한다. 과거에 몰려 들어온 것들은 새로운 몰려 들어옴에 의해 그대로 다시 밀려 나가 버린다. 결국 열심히 섭취했음에도 남은 것은 없다. 유를 향해 노력했지만, 자꾸만 무로 되돌아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매번 목격하다 보면 무력감과 상실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난 점점 말이 없는 사람이 되어간다. 열정도, 에너지도 넘쳐 나지만 실수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의도적으로 의욕을 억눌려야 하기에, 다른 이가 불편을 겪지 않고 자유롭게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내가 나설 기회는 줄여야 하기에 점점 조용하고 신중한 사람이 되어간다. 하고 싶은 일도, 하고 싶은 말도 참다 보면 그만큼 불안과 불만이 생긴다. 내가 미래를 위해 지금 놓치고 있는 것들, 놓치는 모든 기회와 놓치는 모든 감정에 대한 보상을 되돌려 받지 못하면 어쩌나, 지금 내가 이걸 놓치고 있는 게 옳은 걸까 하는 불안이 작게 작게 내 신경을 갉아 먹는다. 내가 놓쳐버린 것을 나 대신 거머쥔 이들을 향한 질투 어린 불만이 내 신경을 긁어댄다.


애매하고 모난 사람이 된 오늘의 난 바쁠 땐 힘이 넘치고 한가할 땐 무기력에 빠진다. 난 내 안에 강한 의욕과 열정, 호기심이 아직도 가득함을 알고 있다. 그것들이 가끔 말로, 표정으로 삐져나오는 것도 알고 있다. 심지어 다른 사람도 눈치챌 만큼 욕심이 비집고 나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난 또 내 열정을 외면하고, 또 생각의 굴레에 잠기고, 또다시 조심스러운 침묵을 택한다. 스스로에게 지운 강박에 따라 또 그렇게 애매한 선택을 하며 애매한 위치를 점한다.



자연스럽게


저마다 다른 이유로 무기력에 잠길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 채 눈앞에 닥친 상황에 맞춰 살다가 무기력에 빠지게 된 사람도 있을 테고, 내가 느끼는 감정을 무시하고 이성의 소리에만 귀 기울이다 무기력에 젖어 든 사람, 삶의 주체성을 상실하고 소비의 대상이 되어버린 탓에 무기력해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완벽을 추구해서 모든 시작이 어렵게 느껴지는 무기력에 빠졌을 터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내가 바라는 것과 주변에서 내게 바라는 것이 일치하지 않아서, 이런 상황 속에서 내가 아닌 타인의 기준을 택해서 무력감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아니면 나와 같은 경우, 쓸데없는 고민과 자신을 향한 제재가 많아져서 무기력을 경험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 원인이야 어떻든 자연스러운 자신을 놓치고 살아가기에 우린 어느 방향으로 돌아가도 자꾸만 무기력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내가 나아가고 싶은 곳과는 다른 길로 자신을 잡아끌기에 가는 길이 재미없고 시시해져 버리는, 무기력해지고 마는 것이다.


불필요하게 복잡한 것들은 지워야 한다. 지금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올려진 것들을 찾아내어 모두 지우고 걷어내야 한다. 무게를 덜어내어 나아가는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 어떤 길 앞에서도 내가 원하는 속도에 맞춰 걷기도 뛰기도 하려면 가벼워야 한다. 망설이는 순간을, 자꾸만 깊어지는 생각을 지워내어 내가 가고 싶은 길로 하루라도 빨리 달려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이 확실하다면 굳이 애써 고민하느라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 말고, 그저 가려던 길을 떠올린 순간 느낀 즐거움의 힘만으로 생각 없이 잽싸게 달려야 한다. 나를 위한답시고 지금 하고 싶은 일을 억지로 막지 말아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될 만큼의 여유가 있다면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있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나를 억지로 막지 말고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도록 숨 쉴 구멍 정도는 내줘야 한다.


오랜 고민 끝에 난 나와 새로운 약속을 하기로 했다. 본연의 나를 가리고 있던 것들을 조금씩 내려놓기로 했다. 나를 가볍고, 자연스럽게 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를 복잡하게 만들던 것들을 지워버리기로 했다. 나를 단순하게, 명쾌하게 만들기로 했다. 단순하고 정갈한 삶 안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바라보기로 했다. 간결한 규칙 속에서 자유롭게 흘러보기로 했다. 그간의 습관을 벗어던지기 힘든 것도, 자유롭게 행동하기 어려운 것도 알고 있다. 오늘의 약속 앞에서도 내가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아서, 당차게 글을 써내려 왔으나 사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이 시점에서도 어떤 방식이 가장 나를 자유롭게 만들어줄지 명확하지 않아서 글을 끝마치기가 유난히 힘들었다. 그러나 너무 오랜 시간을 나의 무기력에 대해 고민하고 무기력의 굴레에서 벗어나길 희망해왔기에 이제는 무기력이란 짐을 벗어던지려는 실질적인 행동을 해봐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이 글을, 무기력에 대한 나의 고민을 마무리 짓기로 결심했다. 내일 새롭게 시작될 월요일 아침은 이런 나의 작은 용기와 의지로 힘차게 맞이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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