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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온 Jun 16. 2024

상실했을 때야에 비로소 당신이 들립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2008)


짐으로 이뤄진 관계


당신이라는 존재가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당신이 대놓고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때 혹은 말없이 눈빛으로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때. 우린 당신을 사랑하거나 혹은 사랑해야 하므로 당신의 요구를 가벼이 흘리지 못한다. 당신이 내게 쏟아낸 짐들이 나의 언저리를 잔뜩 메우고 있다. 이 짐의 둘레는 나를 가두고 서서히 옭아맨다. 부담스럽고 갑갑하다. 그럼 난 당신이 지운 갑갑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당신의 요구를 해결하면 되는데 또 그러진 않는다. 당신의 요구 앞에선 왠지 모를 반항심이 고개를 들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난 당신의 요구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태로 정체되어 있다.


당신은 당신대로 답답하다. 왜 이거 하나 해주지 못하나, 왜 이거 하나 들어주지 못하나 싶은 마음에 속이 상한다. 그 속상한 마음은 당신의 얼굴 위로, 당신의 언어 위로 드러난다. 난 당신의 표면 위에 드러난 그 속상함을 읽는다. 그럼 난 왜 당신을 위해 그거 하나 해주지 못하나, 왜 당신을 위해 그거 하나 들어주지 못하나 싶은 마음에 죄책감이 든다.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혹은 사랑해야 하므로 당신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어도, 당신이 속상하지 않도록 그 요구를 해결해 주고 싶어도 왠지 모를 이놈의 반항심이 자꾸 앞을 가로막는다.


가족, 서로에게 짐을 지우는 사이, 그런 무거운 관계성을 지닌 존재들의 합.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관계이자 서로 사랑해야만 하는 관계이다. 이러한 절대 가볍지 않은 사랑의 관계를 전제로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그 요구를 상대방이 들어주길 기대한다. 하지만 우린 서로의 요구를 매번 들어주지 못한다. 당신의 요구 앞에 늘 반항심이 솟아나기 때문이다.


난 당신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삶은 여기 있고, 당신이 내게서 원하는 삶은 저기에 있다. 당신을 사랑하기에 당신이 원하는 바를 들어주고 싶지만 내가 당장 원하는 삶은 당신 쪽에 있지 않다. 내 쪽에 있다. 각자 원하는 바가 서로 다른 공간에 자리 잡고 있다. 당신이 원하는 것들이 담긴 공간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 힘든 여정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곳으로 가는 길엔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의 무게와, 당신의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의 무게와, 이러한 사랑과 기대의 마음을 나의 무능력으로 인해 모두 망쳐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의 무게와, 무엇보다도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과 당신이 내게서 원하는 나의 모습이 달라서 오는 불만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워 나를 버겁게 한다. 그래서 당신의 방까지 도달하기가 어렵다. 당신에게로의 여정을 힘들게 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당신이 오늘 내게 건넨 하나의 짐은 이전의 짐에 누적된 상태로 나에게 도달한다. 어제 이뤄주지 못한 짐은 오늘의 짐과 함께 당도한다. 이뤄주지 못한 그 모든 것들의 무게가 또 하나의 부담으로 지워진다. 우리의 관계가 한층 더 무거워진다. 버거워서 마주하는 것도 버거워진다.



상실이 주는 해방감


상실을 맞이하게 되면 슬픔과 아픔에 휩싸인다. 그리고 잔인하게도 간혹 그 안에서 해방감을 느끼기도 한다. 서로에게 켜켜이 지워져 있던 짐이라는 빚이 상실의 순간 탕감된다(반대로 되려 상실의 순간, 쌓여있던 부담이 갈 곳을 잃고 방황하다 미쳐 날뛰는 경우도 있다). 부담의 무게가 걷히고 나서야 당신이 보인다. 당신이 내게 요구했던 것들 이면에 깔린 마음이 보인다. 당신의 요구가 드디어 내게 들린다.


부담은 아주 무겁고 강렬한 감정이다. 해결하기도, 벗어나기도 힘들면서 매일 가중되기만 하기에 상당히 무겁고 슬픔, 분노, 기쁨과 같은 감정 못지않게 강렬하다. 이러한 무거움과 강렬함 때문에 우린 부담감과 이 부담감이 끌어들이는 무력감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현재의 나를 통째로 가져다 받친다. 부담, 부담, 부담과 무기력, 무기력, 무기력에 쓸려 들어가고 쓸려 나온다. 이 수동적인 상황 아래에서 자발적인 나를 상실하고, 진정한 나의 바람도 상실한다. 다른 생각을 해볼 여유 또한 상실한다. 나의 평범한 일상은 사랑하는 이를 잃을 때도 상실할 수 있지만 이렇듯 살아있는 사랑하는 이가 만들어내는 부담감 속에서도 상실할 수 있다.


사랑하는 이, 사랑해야만 하는 이가 세상을 떠날 때 그들은 그들이 만들어냈던, 내게 부여했던 짐을 함께 들고 떠난다. 그들을 잃은 데서 크나큰 슬픔을 느끼는 한편, 당신의 요구를 성공적으로 이뤄주지 못하면 어쩌나 싶은 불안과,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해야만 한다는 불만을 상실한 데에서 크나큰 해방감을 느낀다. 당신이 지운 짐은 사라지고 당신을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과 당신이 여전히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만 남는다. 어쩌면 당신이 그간 나에게 지워온 짐의 무게로 인해 엉망이 되어버린 현재의 내가 당신을 향한 솔직한 심정을 드러낼 수도 있다. 나를 힘들게 했던 당신을 향해 맹렬히 폭주할 수도 있다. 사랑해야 했기에 억눌러 왔던 마음이 당신의 상실 속에서 꽃 피울 수도 있다. 상실 끝에 남은 마음이 어떤 형태이건 우린 부담으로부터 해방된다.



비로소 들리는 당신의 목소리


상실은 소멸을 뜻하지 않는다. 상실에 도달하면 그제야 당신을 향한 나의 진심과 나에게로 향했던 당신의 진심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당신의 요구가 깨끗하게 들린다. 당신이 사라진 자리에 깨끗해진 당신의 요구가 남았다. 깨끗해진 당신의 목소리가 남았다. 선명해진 목소리에 따라 뒤늦게 당신의 요구에 따른다. 아이가 하나 더 있어야 한다는 당신의 말에 이끌려 아이를 낳고, 늘 차를 샀으면 했던 당신의 말에 이끌려 차를 사는 것과 같이.


우린 상실이란 종말 끝에서야 드디어 당신을 향한 진정한 발걸음을 뗄 수 있게 된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나서야 당신에게로 발걸음할 수 있게 된다. 좀 더 빨랐으면, 당신이 떠나기 전에 당신에게 당도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우린 사람이기에, 부담의 무게에 한없이 무기력해지는 인간이기에 지금에서야 당신에게 이를 수밖에 없다. 내가 그 가벼움을 등에 업고 나서야, 당신에게 나아갈 힘을 얻고 나서야, 당신이란 무게로부터 한 겹 가벼워지고 나서야만 비로소 당신에게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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