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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온 Jul 06. 2024

제 값을 못하는 인간

조엘 코엔과 에단 코엔 감독의 인사이드 르윈


아무도 찾지 않는 재고로 남았다


제 밥벌이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제 집도 구하지 못해 지인들의 집을 전전하는 신세. 음악에 대한 진지한 열망을 지니고 있음에도 따사로운 볕은 르윈만을 피해 다닌다. 그를 더 비참하게 만드는 건 비슷해 보이는 이들, 심지어 자신보다 더 실력 없어 보이는 이들은 음악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는 데 반해 승리를 향한 대열에서 그만 쏙 빠져있다는 것이다. 실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음악을 향한 진정어린 마음까지 갖추고 있음에도 그의 인생은 자꾸 엇나가고 꼬인다. 르윈은 그저 잘나가는 친구들 옆에 놓인 한심하기 짝이 없는 루저다. 누군가가 정말 그에게 저주라도 걸어버린 것마냥 그의 삶은 한심함의 연속이다.


믿었다. 정말로 실력이 있기에 자신의 음악을 믿었다. 명확하고 확고하다. 그는 단순히 음악만 하면 그만인 삶을 원한 게 아니다. 그보다 더 고상하고 기품 있는 포크송을 속물적인 마음이 아닌, 다소 이상적인 마음으로 노래하는 것. 르윈은 그런 음악을 하길 원한다. 그러나 그의 믿음과 이상적인 마음은 현실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우린 한 사람을 비참하게, 힘 빠지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영화가 보여주는 짧은 시간동안의 르윈을 통해 알 수 있다. 르윈은 원하는 바가 뚜렷하고, 그에 임하는 마음도 확고하고, 그곳으로 나아가기 위해 갖춘 자세 또한 명확하다. 실력도 따라준다. 그래서 그는 일단 버텨보기로 한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계속해서 도전하면 언젠가는 되겠지 싶은 마음에 열심히 이곳저곳에서 노래한다. 그러나 세상은 르윈의 주변 친구들은 인정해 주면서도, 그리도 살뜰히 챙기면서도 르윈에게만큼은 끝까지 냉정한 태도를 유지한다. 그는 점점 지쳐가고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자신의 음악에, 아니 자신의 모든 것들에 회의를 느낀다. 찬란한 미래의 르윈을 꿈꾸며 과거의 르윈이 남겼던 모든 노력은 창고 한켠에 쌓인 아무짝에 쓸모없는 재고로 전락한다. 쌓인 재고만큼의 무게, 그 쓸모없음의 무게는 그가 더 이상 미래를 기대하지 못하게 한다. 그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뭐하고 있냐? 인사이드 르윈


르윈은 차가운 현실 앞에 흔들린다. 그의 내면은 노래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있음에도 세상, 정확하게는 시장의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은 아직 준비되지 않은 얼뜨기에 지나지 않는다.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사람에겐 현실은 늘 냉혹하기만 하다. 그래서 그는 가난하다. 가진 것이 없다. 고로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음악을 향한 자신의 진심이 인정받을 수 있도록 그리도 열심히 노력했건만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손에 들린 것이 없기 때문에 그는 그 무엇도 하지 않은 사람이다.


기대한 삶과 어긋나는 삶 사이에서 르윈은 모나졌다. 그는 계속되는 실패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슴도치가 되어버렸다. 그의 모나고, 까칠하고, 빈정거리는 태도는 부정만 당하는 현실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려는, 마음을 다잡으려는 가련한 노력이 만들어낸 산물일 것이다. 실제로 이뤄낸 것은 없지, 이런 그와는 대조적으로 주변의 친구들은 잘나가지. 그는 이러한 비교가 만들어내는 열등감에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외부를 본인과 같은 수준으로 내리까는 것이다. 방어를 위한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누가 그 내막을 알겠는가. 아니 알고 싶어나 할까, 그가 모나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가만히 있어도 예쁨받을까 말까 한데 르윈은 모난 말로 미움만 산다. 성공한 자야 말을 거칠게 해도 저 예민한 기질이 예술가답다고 칭송받겠지만 안타깝게도 르윈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실패자다. 내가 추구하는 것을 이어 나가려면 인정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예쁨받음도 필요하다. 어디에라도 받아들여짐, 내가 부정당하지 않고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런 받아들여짐은 착하게 군 자에게 혹은 성공한 자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이다. 즉, 르윈은 해당 사항 없으며, 앞으로도 본인이 추구하는 것을 인정받긴 어려울 것이다.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


지금의 세상은 돈으로 평가한다. 나도, 내 실력도, 내가 만들어낸 무언가도 시장 앞에서 돈으로 평가된다. 나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면 지금의 시장에 맞춰 옷을 갈아입고, 지금의 시장이 원하는 말과 행동을 하면 된다. 현실이 그러하기에 실력은 있어도 돈벌이는 안 되겠다는 말이 가장 잔혹한 평가일 것이다. 실력이 없다면 노력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실력은 있는데 돈벌이가 안된다는 것은 내가 오랜 시간 동안 열망해 온 음악을, 추구해 온 삶을 버려야 함을 의미한다. 바라던 것이, 추구하던 것이 나 자신이 되어버렸다면 그동안의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나로 갈아 끼워야 한다. 그들이 원하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들이 원하는 가사와 리듬으로 흥얼거려야 한다. 시장이 원하는 게 쉬운 음악이라면 고상함과 진지함이 깊게 밴 나의 음악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돈을 벌 수 있다. 돈을 벌어야만 내가 한심하지 않은 인간임을 증명할 수 있다. 대신 내가 진정으로 원하던 것과 나 자신을 잃게 된다. 세상에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내가 바랐던 목소리를 잃게 된다.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시간과 장소가 이 세상 어딘가에는 있다. 실력만 있다면, 내가 만들어내는 무언가가 정말로 흠잡을 데가 없다면 나에게 어울리는 시간, 장소에서는 그것이 빛을 발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시간과 공간으로 향하는 문은 언제, 어디서 열리는지 알래야 알 수가 없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지금 이 세계, 지금 이 시간에, 두 발 딛고 서 있는 이곳에서 세상이 내게 끊임없이 무관심할 리 없다는 실낱같은 희망 한 줄기에 의존하며 묵묵히 때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그래서 기다린다. 확신은 없지만 일단 나를 믿고, 시간을 믿고 기다린다. 나의 무대가 펼쳐질 그 순간을.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의심은 짙어진다. 주변의 성공을 바라만 보며 고독한 실패를 홀로 음미해야 함에도 지금의 길을 이탈하지 않고 계속해서 걸어가는 게 맞는 걸까. 내 손에 들려 있는 것이라곤 기타 하나와 이젠 재고가 되어버린 과거의 기대뿐인데도 또다시 인내하는 것이 맞는 걸까. 만약 최초에 기대한 바, 원하는 바, 추구하는 바가 남들에 비해 뚜렷한 사람이라면, 그 와중에 고집도 꽤 있는 편이라면 서서히 옥죄어 오는 자기 의심 앞에서 자기방어를 위해 처음 자신의 눈앞에 그려진 미래를 더 견고히 하려는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 의심은 신념을 더욱 자극하고 가던 길을 가라고 계속해서 채찍질하는 연료가 된다. 이들은 의심이 주입해 주는 연료로 한동안, 꽤 오랜 시간 동안 앞을 향해 내달리게 된다.


하지만 우린 사람이다. 의심을 언제까지고 무시할 수는 없고,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계속해서 상처받을 수밖에 없고, 자존심 때문에 상처가 아프지 않은 척, 태연한 척하느라 아픔에 짓눌린 자신을 돌보지 못해 속이 잔뜩 곪아 결국에는 터져버릴 수밖에 없다. 그럼 우린 그제야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자기 의심 앞에서 자기방어를 하느라 들인 시간과 노력으로 인해, 긴 시간과 정성으로 과거와는 많이 달라져 버린 현재의 자기모습으로 인해 이젠 돌이킬 수도 없게 되었다. 깨끗하게 모든 것을 지우고 새로운 판을 깔 수도 없게 되었다. 르윈은 완전히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를 가지게 되었다. 사실 조금만 노력한다면 다른 목소리를 흉내 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목소리뿐만 아니라 마음도 세상에 어울리지 않게 되었다. 자신이 옳다고 여겨왔던 것들을 세상에 맞춰 바꾸려는 마음은 이미 죽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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