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나폴레옹이다 (19)
2024년 5월 7일 화요일 (18일 차)
까미노의 중간도시 사하군
오늘 가는 사하군(Sahagun)은 거리도, 일정도 까미노의 중간 지점 정도이다.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가야 할 길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보내야겠다.
여러 어려움 특히 발목 복숭아뼈 위쪽 근육의 통증 가운데에서도 순례길 완주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여기까지 왔다. 시작이 반이라 했으니 이제 다 온 것이나 다름없다.
햇살 가득한 날도, 비바람 치는 날도 까미노를 걷기 위해 마지막 남은 몇 푼 안 되는 모든 열정을 지불하였고, 조금은 느리게 조금은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며 노란 화살표만 따라 걸어온 것이다. 만남과 헤어짐, 기쁨과 아픔, 통증과 환희, 소망과 눈물 이런 것으로 까미노와 내 가슴 절반을 채웠고, 이제 남은 절반은 지나온 시간이 가르쳐준 것들로 앞으로의 까미노에서 채워갈 것이다. 여전히 배우고, 사랑하고, 느끼며 남은 내 인생까지도 꿈꿀 것이다.
어제 ‘까리온’에서는 다른 날보다 일찍 도착하여 빨래도 하고 아주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옥상에 있다는 수영장은 꿈으로 날려버렸다. 막상 옥상에 올라가니 햇살이 너무 뜨거워 잠시도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시내도 돌아보고 인근 공립 알베르게에 방문하여 사람들도 만나고 호스텔에서 쉬면서 다음 숙소를 찾아보았다.
다음 계획은 27km 떨어진 ‘테라디요스’까지 가는 것이었는데 아무리 전화를 돌리고 왓츠앱으로 메시지를 보내도 돌아오는 대답은 Sorry 나 Full 이란 단어밖에 없다. 결국 테라디요스 마을을 넘어 한 마을씩 전화를 하다가 ‘사하군’까지 전화를 돌렸는데 여기도 숙소는 모두 Full이다. 마지막 희망. 사하군 공립 알베르게 중 하나인 ‘알베르게 산타 쿠르즈’에 전화하니 “염려 말고 조심히 오라”고 한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가자. 오늘은 갈 길이 아주 멀다. 이른 아침 ‘칼사디야’에 도착했다. 알베르게가 하나 있는 아주 작은 농촌이다. 이곳 하나뿐인 알베르게에서 출발하는 순례자와 아침인사를 나누고 한동안 같이 걸었다. 고도계를 보니 해발 920m. 공기는 상쾌하다 못해 상큼하다.
그런데 까미노에 유난히 자갈이 많아 발목에 자꾸 무리를 준다. 국도를 가만히 보니 한 시간을 걸었는데 지나가는 차는 총 3대에 불과했다. 안 되겠다. 그냥 국도 위로 올라갔다. 걷기가 훨씬 낫다. 이제 노래 부르며 가자.
두 번째 마을 ‘레디고스’에 도착했다. 열려있는 카페를 발견하고 반갑게 들어가 커피와 토르티야 그리고 신맛+단맛 나는 하리보를 주문했다. 하리보는 순례길 걸을 때 먹기 위해 바지 주머니에 소중하게 넣어두었다. 얼굴과 입술, 귀에 온통 피어싱과 문신을 한 여주인은 술 냄새 풍기며 주문을 받는데 제대로 된 음식이 나올지 조금은 염려가 된다. 그런데 웬걸... 나는 스페인에서 가장 맛있는 토르티야를 여기에서 먹어보게 되었다. 이 정도 맛이라면 매일이라도 먹을 수 있겠다. 고기도 잘 다져 넣었고 약간의 후추 냄새와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었던 살짝 매운맛이 매력적이다.
‘테라디요스’. 원계획 상 오늘 여기서 묵어가기로 계획했던 마을까지 왔다. 마을 성당에서 기도도 하고 아픈 다리를 쉬게 해 주려 계획했으나 문이 굳게 닫혀있어 포기했다. 다시 출발하려는데 이정표에 선명하게 391km라고 표시되어 있다. 드디어 400km가 깨진 것이다. 어느새 절반을 걸었구나. 이제 남은 거리가 걸어온 거리보다 작아지고 그 숫자마저 빠르게 줄어들겠지...
‘모라티노스’라는 마을의 카페에 놓인 비치파라솔 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순례자들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냥 봐도 뜨거움이 느껴지는 날씨 아래, 뒷 배경이 작은 나무들과 밀밭으로 되어 있고, 파란 하늘에 흰구름 떠있는 영화 같은 장면에 출연자들이 계속해서 지나간다. 새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면 무성영화 같은 장면이었을 것 같다.
친구들과 같이 온 사람들은 뭔지 재미있어 보인다. 시끄러울 정도로 웃으며 지나갔다. 혼자 온 순례자들은 대부분 말없이 발걸음 마저 터벅터벅 걷는다. 가족과 같이 온 사람들의 걸음걸이는 산책하는 기분이고 자전거 순례자들은 힘차게 달린다.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촬영하다 다시 일어나 걷는다. 아침에 산 하리보를 꺼내 입안에 넣고 빨아보니 신맛에서 마구 침을 쏟아낸다. 이 더운 날씨에 딱 이었다. 내 생각이 맞았다.
메세타는 다양한 매력을 순례자에게 보여준다. 덥고, 뜨겁고, 바람 불고, 춥고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오늘 어떤 매력을 보여줄지 선택은 우리가 아니라 하늘이 결정해 준다. 오늘도 메세타는 나를 배반하지 않았고 자기의 본분을 다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색을 선물하였고 그 대가로 따가운 햇살을 나의 온몸에 뿌려 놓는다. 얼굴은 붉게 타 들어가고 목덜미는 따가움으로 도배되었다. 반 손가락장갑을 벗어보니 손가락 둘째 마디까지 선명하게 검게 그을려 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메세타의 진정한 매력은 다양한 색상에서 오는 화려함 같다. 심긴 작물을 통해 다양하고 아름다운 색깔을 순례자에게 선보여 왔다. 포도밭, 보리밭, 밀밭의 초록색과 갈아놓은 밭에서는 갈색과 황토색, 군데군데 남아있는 유채밭의 노란색, 이름 모를 핑크빛 작물들과 불청객처럼 고개 내민 붉은 양귀비까지··· 저 평원 끝까지 이어져 지평선 위로는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메세타에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다. 아름다움이다. 그것도 싱그러운 아름다움을 이곳에서 실컷 본다.
사하군에 도착했다. 수도원과 성당, 박물관이 많고 특히 순례길의 절반을 통과하는 의미 있는 도시이다.
알베르게 산타 크루즈는 ‘마리스트 파더스’라는 프랑스 수도회에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마리스트 파더스는 겸손, 단순함, 연민, 봉사, 기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성 야고보 무덤으로 가는 순례자들에게 안식을 제공해 주겠다는 사명감으로 무장된 자원 봉사자들이라고 했다.
정말 그랬다. 숙소에 도착하니 자원 봉사자들이 나와 차가운 물 한 잔과 사탕을 주며 신을 벗고 기다리라고 안내하는 등 최선을 다해 봉사하는 마음을 보여 주었다. 한국인에 대해서는 별도로 신경을 쓰는 모습까지 보인다. 심지어 어느 방에는 전부 한국인만 모아 주었는데, 나는 6명이 자는 방에서 호주, 캐나다, 독일, 인도 그리고 국적 불명의 순례자와 함께 머물렀다.
며칠간 조심스레 달래 가며 걸어온 내 발목은 통증이 재발하여 오른 발목과 허리까지 전파시켰다. 특히 사하군 도착하기 5km 전부터는 정말 참을 수 없는 통증이 계속되어 한 걸음 내 딛기가 무서울 정도였다. 아프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이다. 칼로 베는 듯, 바늘로 찌르는 듯 한 통증이 매 걸음마다 고통을 주고 있다. 점점 강도가 높아지고 면적이 넓어지는 통증에 마음이 무겁고 자신감도 떨어지기 시작해서 걱정이 된다. 제일 먼저 약국을 찾아 진통제를 사러 갔지만 시에스타에 들어간지 오래다...
발을 돌려 순례자 중간 인증서를 만들어 준다는 수도원 사무실이 있는 언덕으로 터벅터벅 걸어 올라갔다. 여기도 시에스타에 들어갔으니 당연히 문이 열려 있을 리 없다. 성당 앞 나무그늘 아래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본다. 육체의 통증과 정반대로 하늘은 맑고 높고 푸르렀다.
만감이 교차한다. 지나온 400여 km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특히 첫날 두려움과 기대감으로 넘던 피레네산맥의 긴 등산로가 한 장면처럼 펼쳐졌다. 그리고 거쳐온 수많은 마을과 메세타, 만나고 헤어진 수많은 사람들까지 ···
사무실 문이 열리자 제일 먼저 들어가 인증서를 받았다. 여기 일하는 직원은 친절하게 순례길 중간지점 도착을 축하해 주고 기꺼이 기념사진 촬영까지 도와주었다. 시작이 반이라 했는데 진짜 절반을 걸어왔다. 서울에서 부산 거리를 이미 걸어왔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 판문점까지 가면 끝난다. 이렇게 설명하다 보니 확~ 와닿는다.
우리는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그리 길지도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삶 자체가 여행을 떠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두려움과 염려로 엄청난 짐을 짊어지고 하루하루를 걸어가다 결국 모든 짐을 남겨두고 인생을 마무리한다. 나는 지금 까미노의 절반을 걸어왔다. 내 인생도 절반을 넘어섰으니 까미노가 바로 인생길과 같이 느껴진다.
내일부터는 남은 거리가 점점 짧아지다가 마침내 없어질 것이다. 내가 짊어진 고민의 무게가 여전히 무거운데 이를 다시 짊어지고 남은 절반의 거리를 걸어갈 이유가 있을까? 더 내려놓아야겠다. 내가 지닌 마음의 무게, 염려의 짐을 이곳 사하군에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남은 절반을 즐기며 걸어가야겠다. 숙소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나름 철학적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한방을 쓰는 사람 중에 미국인 부인과 함께 온 인도 사람이 있었다.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눴고 저녁이 되자 슬슬 잠자리를 준비하고 있는데, 말이 없던 백인 남성이 묘한 인종 차별적 행동을 하는 바람에 한순간 작은 방안이 싸늘히 져 버렸다. 인도 사람이 방 문을 꼭 닫지 않았나 보다. 아니 건물이 오래되어서인지 문이 잘 닫히지 않는다. 그런데 이 사람이 정색하며 “너희 나라에서는 이런 것도 제대로 배우지 않았니?” 하며 짜증을 낸 것이다. 갑자기 방안의 모든 사람이 조용해지고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인도 친구는 나에게 이건 명백한 인종차별이란 의견을 낸다. 나는 그냥 참고 자자고 달랬다. 다른 순례자들도 어이없는 표정이지만 이 논란에 끼어들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결국 어색한 분위기에서 모두 이른 잠자리에 들어갔다.
이게 뭔가? 저 사람은 뭐 하러 여기 왔나? 침대에 누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사람이 밉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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