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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독하게 살기로 했다

오늘은 내가 나폴레옹이다 (18)

by Kevin Kim

2024년 5월 6일 월요일 (17일 차)

순례길의 심장 까리온




밤새도록 비가 많이 왔지만 춥지 않게 잘 잤다. 한국에서 가져온 얇은 침낭이 얼마나 소중하게 사용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더 두터운 침낭은 보다 따뜻하겠지만 결국 무게가 깡패다. 나는 소위 농협 침낭이라 불리는 2만 원대 N사 경량 침낭을 가져왔는데 4~5월에 이곳에 오는 사람에게 딱 적당하다는 생각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저녁 세탁해 놓은 양말이 채 마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한번 신었던 양말을 빨래 망에서 다시 찾아 신고 어둠 속으로 출발한다. 이곳에서 속옷이나 양말 등은 보통 며칠씩 입고 신는 게 보통이다. 매일매일 호화롭게 샤워하고 빨래하고 건조해 사용한다는 건 그냥 꿈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공립 알베르게는 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물론 사립 알베르게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시설은 턱 없이 부족하고 빨래할 시간도 없다. 그렇다고 호텔로 가면 되는가? 호텔은 대도시에나 있고 설령 들어간다 해도 세탁기와 건조기가 없다.

덜 마른 양말이나 속옷은 배낭에 매달고 걸으면 잘 마른다


건조가 잘 되는 기능성 재질의 의류나 울 계통의 양말을 가져오면 좋다. 이것들은 설령 이틀 사흘 연속으로 입고 신어도 냄새가 나지 않아 좋고, 땀이 나도 바로 마르고 건조해지기 때문이다. 면 계통의 의류나 양말은 정말 가져오면 안 된다. 이건 충고가 아니라 거의 경고라 해도 될 것 같다. 며칠간 계속 비가 왔기 때문에 나는 지금 양말, 속옷을 며칠째 신고 입고 있다. 내가 가져온 가장 따뜻한 옷인 경량 패딩은 하루도 빼지 않고 입었으니, 그동안 몇 차례나 땀에 절었다 마르기를 반복하고 있고 지난 며칠간은 비까지 흠뻑 젖었었다.


오늘은 하루 종일 국도를 따라가는 길이라고 들었는데, 다소 지루하리라는 정보이지만 건강하고 안전하게 걸어가는 소망을 안고 출발한다.

다른 마을, 도시와 또 다른 순례길 표지석이 이색적이다


출발 준비를 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온 젊은 자매들이 같이 가자고 한다. 이들은 첫날 피레네를 같이 넘은 자매와 나중에 팜플로나에 들어갈 때 만난 30대 청년이다. 60세 중반인 내가 30대 청년들과 어울리는 것도 그렇지만, 나는 혼자 천천히 걷고 싶었기 때문에 먼저 가라 했다. 더 큰 이유는 이 자매들이 까미노에서 다양한 청년들과 교제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며 걷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언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순례자들은 표정과 몸짓으로 소통하기에...


그들은 씩씩하게 먼저 출발했다. 나는 이미 이 청년들에게 “될 수 있으면 혼자 걸으며 세계에서 온 다양한 순례자들을 만나보고, 이야기 듣고, 많은 생각을 나눠보는 게 좋겠다. 단체로 걷지 말고 혼자 걸어보라”라고 몇 번이나 조언했었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에서 온 50대 아저씨들과 한 팀이 되어 매일매일 같이 걷고, 같은 숙소에서 머물며, 슈퍼에서 장을 봐 같이 밥 해 먹는다. 안타깝게 생각했다. 어느 날 숙소에서 한 아주머니가 혼잣말로 “아니 젊은 아가씨들이 여기까지 와서 아저씨들 밥 해 먹이고 다니네. 정말 철도 없어···” 한다.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조용히 혼자 걷는 젊은 순례자, 진정 까미노의 맛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순례길에서 외로움과 고독은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이다. 현대사회는 너무 분주하고 복잡하고 외로울 틈도 없었다. 매일 약속이며 회의며 모임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별도로 마련해야 할 정도 아닌가? 아마 어떤 이는 이런 복잡함에서 피난 오듯 이곳 까미노로 왔을 것이다. 따라서 외로움을 이겨내는 것도, 고독과 동거하는 것도 순례자의 의무이자 숙명인데, 이 젊은이들은 편한 방법을 택한 것이다. 너무 안타깝다.


물론 팀을 짜는 건 한국 사람들의 특성인 것 같다. 사실 대부분의 한국 순례자는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팀을 만들어 같이 걷고, 숙박도 같이하고, 저녁도 같이 만들어 먹곤 했다. 그리고 끝까지 같이 다닌다. 일부는 아예 단체로 여행사를 통해 오기도 한다. 각자의 생각과 철학, 가치관 그리고 여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순례길의 진수를 맞보고 싶다면 ‘혼자 걸으라!’ 추천하고 싶다.

혼자 걸어보면 바람이, 햇살이, 나무가, 들풀이 말을 걸어온다. 이거 진짜다.


스페인은 과거 800여 년 동안이나 이슬람의 지배를 받은 나라다. 1492년 가톨릭 연합군에 의해 이슬람 세력이 퇴각할 때까지 이슬람은 오랜 기간 스페인을 지배하고 영향을 미쳤다. 8세기에 이베리아반도에 진출한 이슬람은 관용과 포용 정책을 했다고 한다. 종교, 민족,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억압하지 않았고, 당시 이곳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을 경제, 행정, 학문 분야에 고루 발탁했다. 당시 이슬람 통치자들은 관용과 공존을 뜻하는 ‘콘비벤시아(Convivencia)’ 철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았고, 크게 번성하여 프랑스와 인접한 피레네산맥 아래까지 진출하였다.


많은 문화 유적지도 남겼는데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과 코르도바의 메스키다는 세계 문화유산으로 손색이 없는 아름다움과 역사성을 자랑하고 있다. 지금 걷고 있는 까미노 프랑스 길은 이베리아반도의 북쪽에 펼쳐져 있어 이슬람 지배를 받지 않은 곳이지만, 방문했던 많은 성당의 건축양식에서 이슬람 문화의 흔적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물론 제대로 된 이슬람 건축양식을 보려면 코르도바나 그라나다를 가 봐야 하겠지만 예전에 가봤으니 이번 여행에서는 통과!

스페인에서 만날 수 있는 이슬람 건축문화 흔적들


3.5km 지점, ‘포브라시온 데 캄포스’ 마을을 지나는데 이정표가 왼쪽, 오른쪽으로 두 개가 있고 모두 까미노라고 적혀 있다. 또? 어쩌라고··· 5일 차 푸엔데 라 레이나에서도 그랬듯 둘 다 까미노 일 것이다. 알아보니 하나는 개천을 따라가는 대안 길이고, 다른 하나는 국도를 지루하게 따라가는 원래 까미노라고 한다. 개천 길을 혼자 종용히 걷고도 싶었지만 원래 까미노를 택하고 국도 방향으로 가기로 했다. 그리고 정말 정말 지루한 여정이 되었다.

어느 길을 택하느냐는 개인 취향이다?


나도 이곳에 와서 알게 된 일이지만 전통적인 까미노(Original Camino) 말고 소위 ‘대안길(Alternative way)’이 곳곳에 개발되어 있다. 어떤 마을은 프라이버시 침해를 이유로 까미노에 속하는 것을 반대한다 하고, 이와 반대로 어떤 마을은 마을의 발전을 위해 우리 동네에도 까미노 순례길이 지나가도록 해 달라는 요구가 발생하고 있어, 이런 두 갈래 길이 순례길 곳곳에 나타났다고 한다. 누가 말리겠나? 각자 생각이 다른걸··· 하여간, 오늘의 메세타는 국도를 길게 따라가는 여정으로 어제까지와 완전히 다르다.


세 번째 마을 ‘빌랄카자르 시르가’에서 잠시 멈추어 아침을 먹고 가기로 했다. 문을 연 식당이나 카페를 찾다 근처 호텔 간판을 따라 골목길을 한참이나 들어가 커피 한 잔과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그런데 카드는 안 받는단다. 20유로를 냈더니 잔돈을 10센트와 20센트짜리로만 골라서 준다. 따질만한 열정이 없어진 지 오래다. 그냥 한 주먹 다 쓸어 담고 나왔다.

오늘은 정말 맑고 화창한 날씨다. 하늘이 준 선물이다


순례길에 와서 발견한 이상한 현상이 있다. 배낭을 한번 메면 다시 내려놓기가 여간 쉽지 않다. 길을 가다가 잠시 쉴 때도 가방을 내려놓고 편히 쉬면 될 것을 그냥 배낭을 멘 채로 서 있을 때가 많다. 배낭에 물이 있어도 꺼내 마실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나만 그런가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도 그렇단다. 배낭을 내렸다 다시 올리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말인가?


대안이 필요하다. 물이나 간식 등 중간중간 필요한 물건들은 쉽게 꺼낼 수 있는 위치에 넣어두거나 작은 가방 하나 사서 가슴 앞쪽에 두면 좋다. 이거 진심이다. 길을 걷다 보면 목이 말라도, 배가 고파도, 더워서 옷을 벗을 일이 있어도 웬만하면 그냥 참고 간다. 멈추기가 싫어서인지, 아니면 ‘귀차니즘’ 인지 모르겠다.


또다시 역주행 순례자를 만났다. 스페인 사람 후안이라고 한다. "왜 당신은 길을 반대로 걷는가?" 하고 물어보니 의외의 대답이 나온다. 반대로 걸어보면 훨씬 더 재미있단다. 특별히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자들과 같은 방향으로 걸으면 다른 사람들의 등 뒤만 볼 수 있는데 반대로 걸으면 순례자들의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좋단다. 정말 의외의 대답이고 의미 있는 철학이다. 도로를 가리키며 ‘상행선’과 ‘하행선’이 있는데 자기는 하행선을 택했을 뿐이라며 역주행이 아니라 다른 방향이란다. 정말 멋진 철학 아닌가?

그런데 사실 반대 방향으로 걷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정 방향으로 걸어도 종종 이정표를 놓치고 길을 잃어버리는데 역방향으로 걸으면 이정표 찾기가 더 어려워진다. 방금 만난 후안도 그 얘기를 한다. “반대 길로 걷다 보니 수시로 길을 잃어버리곤 하지만, 그것이 순례길 아니겠느냐?"라며 오히려 인생 여정과 비슷해서 좋다며 넉살을 떤다. 길을 잃어버리면 되돌아가지 않고 그냥 걷다 보면 다시 까미노가 나오더란다. 오늘 인생의 큰 선배를 만난 기분이다.

저 멀리 까리온 시내가 보인다. 항상 교회 첨탑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멀리 지평선 위로 성당 첨탑이 조그맣게 보인다. 이제 5km 정도만 가면 된다는 이야기다. 오늘은 제법 그럴싸한 호스텔을 예약했는데 옥상에 수영장도 있고, 방도 제법 크고 깨끗해 보였고 숙소 바로 옆에는 빨래방도 있다. 일찍 출발한 보상으로 도착하면 여유 있게 샤워하고 빨래하고 수영장도 들려보고 시원한 콜라도 한잔 하는 것이다. 빨리 가서 얼음 넣은 콜라 한잔하자.


2~3km 남겨진 길 한복판에 아주머니가 앉아 있다. 무슨 어려움이 있나 하고 다가가니 텀블러를 들어 보인다. “지금 ‘까리온’에 도착해 봐야 숙소도 안 열었을 테니, 그냥 조용한 여기에서 커피 마시면서 오랜만에 따뜻한 햇볕이나 실컷 쬐고 가겠다”라고 한다. 진정한 순례자의 모습이다.

순례길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부인이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생각난다. 그는 쓸데없는 욕심을 버리고 자연에 적합한 것만 취하면 인간은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어느 날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일광욕 중인 디오게네스 찾아왔다. 무엇이든지 바라는 걸 나에게 말해보라는 대왕의 말에 “햇빛을 가리지 말아 주시오”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나도 이 아줌마에게 햇빛을 가리고 싶지 않아 자리를 뜨고 말았다.


까리온에 도착해 입구에 있는 성당에 들렸다. 대도시의 커다란 성당과는 분명 많이 다르지만 나름의 예술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어 좋았다. 다만 이 성당에 대한 자세한 자료를 찾을 수 없어 아쉽게 느껴진다.

까리온 성당 내부


전화로 예약된 호스텔에 도착했다. 모처럼 편하게 그리고 호화롭게 쉬어야지··· 그런데 2시부터 체크인이라며 문을 닫아 놓았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마을 광장에서 콜라를 마시며 기다렸다. 날씨가 너무 좋았다. 성당이 보이는 광장에 앉아 이곳으로 들어오는 순례자들을 여유로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기분··· 먼저 온 자의 여유다.


2시가 되자 호스텔 문이 열린다. 서둘러 접수를 마치고 근처 빨래방에 갔다. 많은 순례자들이 빨래방으로 모여들어 자연스럽게 사랑방이 꾸려졌다. 한국 사람도, 브라질 아저씨도, 일본 순례자도 그리고 대만 아가씨도 빨랫감을 한 무더기 들고 나타난다. 오늘 국도를 따라 걸어오며 힘들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내일이면 이 순례길의 절반을 걷게 되는 의미 있는 날이 될 거라며 다소 흥분해 있다. 빨래를 기다리며 어디에 가면 무얼 먹을 수 있고 어떤 알베르게가 좋다는 등 소소한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포상, 시원한 콜라... 이거면 충분했다


세탁도 했고 마을도 돌아봤고 별로 할 일이 없다. 조용히 침대에 누워 ‘레벤가 데 캄포스’ 마을의 공동묘지를 지나가다 본 할머니 생각에 깊이 빠져 들어 나의 남은 삶에 대해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멀리서 무심히 바라보니 연세가 제법 되신 할머니가 문 닫힌 공동묘지 입구 창살을 잡고 멍하니 서 있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그리워 새벽 미명에 찾아오셨나? 아니면 어젯밤 꿈속에서 할아버지를 만났었는지도 모르겠다. 가까이 다가가니 되돌아서는 할머니의 발걸음은 유난히 느렸고 슬픈 표정의 할머니 얼굴 눈가에 눈물이 고여있었다.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음 앞에 서게 된다. 인간의 삶은 한 번뿐 이라고 해서 일생이라고 한단다. 우리 생은 다시 시도할 수도 없고 반복되지도 않는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니 죽느냐 사느냐가 아니라 어찌 살다 죽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심판이 있으리니 죽음 이후에 올 심판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걸어서 마을로 되돌아가시는 할머니를 한참이나 바라보는데 슬픔이 느껴졌다. 몇 년 전 소천하신 어머니가 겹쳐 떠올려졌기 때문이다. 아버님을 일찍 여의고 혼자되어 자식 넷을 기르신 어머님은 이 땅에서 소임을 마무리하고 몇 해전 하늘나라로 가신 것이다. 혼자 계시는 동안 저 할머니처럼 남편을 많이 그리워했을 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그리고 이제야 생각하게 된 것이 무척이나 죄송했다.

오늘도 순례자의 무덤이 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난 지금부터 독하게 살 거야!"이다. 지금까지도 사실 독하게 살아온 것 같다. 내 인생 나름의 세상의 성공을 위해 바둥거리며 잘 잠을 줄이고, 일만 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나름의 성공을 거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독기는 방향이 다르다. 세상의 유혹과 사탄의 속삭임을 이겨내기 위해 정말 독하게 마음먹고 경건하게 살겠다는 의미이다. 얼마 남지 않은 내 인생을 헛되이 보낼 순 없다. 나는 이 순례길을 마치면 북인도로 갈 예정이다. 이곳에서 몇 곳의 초등학교와 고아원을 방문할 계획인데, 이곳에서 새로운 봉사 모델과 소명을 찾게 되는 소망을 가져 본다.


동영상 :

https://youtu.be/kCr2WzhD1C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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