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나폴레옹이다 (17)
2024년 5월 5일 일요일 (16일 차)
운하의 도시 프로미스타
어린이날 아침. 한국에 있었다면 사랑하는 손자 이준이와 함께 했을 터인데··· 오늘도 나는 혼자 길을 나선다. 잔뜩 구름이 끼고 바람이 제법 불어온다. 기온도 쌀쌀하여 경량 패딩과 바람막이 점퍼, 넥워머까지 입고 출발했다. 잠은 잘 잤고 발목 근육통은 익숙해졌으니 그냥 가면 된다. 이젠 통증과 동거에 들어갔다.
마을을 빠져나오자마자 910m의 ‘몬스테라레스’ 언덕이 기다리고 있다. 제법 경사는 있어 보이지만 높이 자체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을 하며 마을을 천천히 빠져나갔다. 이 작은 마을 어디에서 머물다 나오는지 골목골목마다 순례자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합류한다. 나는 순례자들의 뒷모습을 보며 천천히 따라 걸었다.
오늘도 까미노 주변 풍경은 예쁘다. 보리밭과 키 큰 포플러 나무가 자라고 있는 들판. 그 뒤로 붉은 양귀비와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아름답다. 무언가 깊은 생각에 빠져 말없이 걷고 있는 순례자까지··· 이대로 액자에 넣어 두면 한 편의 작품이 될 것 같다.
마을 앞 평야를 건너자 작은 시냇물이 흐르고 그 위에 나무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바르세나 다리’이다. 다리 입구 바닥에 무언가 동판이 심겨 있어 유심히 읽어보니 ‘Romans 11:36’이라고 쓰여있다. 로마서 11장 36절.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이런 내용이다. 어떤 사람이 무슨 의도로 다리에 이런 동판을 심어 놓았는지는 모르겠으나,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은 ‘하나님은 천지의 창조주로서 그의 절대적 권리와 권위를 가진다는 개념에서 출발하는 것이므로, 코람 데오(Coram Deo), 즉 하나님 앞에서 권위를 인정하고 경건한 자세로 임하는 것이 신앙인의 첫 번째 자세’라고 생각하며 잠시 숙연한 마음을 가졌다.
언덕을 오르다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보았다. 까스트로헤리스가 너른 보리밭을 품에 두고 눈에 들어온다. 언제 다시 와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 마을도 다시 한번 와 보고 싶은 마을로 내 맘에 자리했다.
올라가는 길은 약 1.5km 정도 제법 가파르게 계속된다. 걷기도 힘든 이 언덕을 자전거로 오르는 젊은 자매들이 나타나자 모두 환호와 박수를 보내주었다. 멋진 젊음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순례자들의 숨소리는 매우 거칠어졌고 한동안 말이 없어졌다.
언덕 정상에 올라 잠시 휴식을 취했다. 언덕에서 내려다보니 까스트로헤리스와 너른 들녘이 한눈에 보이고, 마을이 성당을 중심으로 아기자기하게 모여 있다. 풍요로운 들판에는 보리와 밀이 풍성하게 자라고 먼발치에는 풍력발전기가 힘차게 돌아가고 있는데 발전 타워가 메세타 아름다움에 가시처럼 느껴져서 아쉬웠다. 잠시 땀을 식혀 가기 위해 정상에 있는 돌 의자에 앉아 숨 가쁘게 오르는 순례자들에게 반갑게 아침 인사를 나눴다. 이제 다시 평지를 걸어 건너편 더 너른 메세타 평야로 내려가야 한다.
건너편 메세타로 내려가는 길에 힘겹게 반대 방향으로 올라오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브라질에서 왔다는 할아버지는 벌써 산티아고까지 가서 야고보 무덤을 참배하고, 출발 지점인 생장으로 되돌아가고 있다고 한다. 무려 1,600km를 걷는 것이다. 나에게 한국 사람인가? 물어보더니 며느리가 한국 사람이라며 반갑게 인사한다. 5살과 7살 두 개구쟁이 손주 자랑을 사진까지 보여주며 한참이나 한다. 손주에게 자랑하고 싶었던지 다양하게 사진 촬영을 요구하였다. 힘겹게 언덕을 오르는 할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도 언덕을 내려가 메세타 품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까미노에서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한번 만난 사람은, 아니 먼발치에서라도 얼굴만 마주친 사이라 해도 다시 보게 되면 오래된 친구처럼 반갑게 인사한다. 이건 정말 순례길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다. 소위 '까미노 문화’라고 해야 할까? 오늘도 많은 외국 순례자를 만났는데 이름도 모르는 그들은 한결같이 친구처럼 다가왔다. 평상시 성악설이 맞다고 주장해 온 나이지만, 여기에서만큼은 “인간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하며 성선설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11km 이상 마을이 없는 상태에서 밀밭, 보리밭만 계속된다. 그 위로 제법 세찬 바람이 달려와 얼굴을 때리고 지나간다. “메세타를 무시하지 마!” 경고하는 것 같다. 정말 한참이나 너른 벌판만 보이고 마을이나 농가는 보이지 않는다. 가끔은 궁금했다. 마을도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여기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한참 힘들어했는데 눈앞에 돌로 된 작은 집이 나타났다. 알고 보니 '성 니콜라스'라는 암자인데 여기도 알베르게다. 저녁이 되면 세계 각국 사람들이 함께 요리하고, 같이 먹고, 설거지도 같이 하는 것을 의무로 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모두 친구가 된다고 하니 색다른 경험이 될 거라 생각된다.
니콜라스 암자 바로 앞다리를 건너 강물을 따라가다 보면 오늘의 첫 마을 ‘이테로 데 라 베가’ 마을이 나온다. 오늘 메세타에서 만난 첫 마을이다 보니 마을 유일의 카페에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나도 커피와 간단한 음식을 주문하고 한참을 기다려 아침을 먹고 휴식을 취했다.
다시 8km를 걸어 ‘보아디야’에 도착했다. 이 마을 카페 하나가 커피로 유명하다고 해서 찾아갔는데 여기에도 사람이 많았다. 다행히 자리를 잡고 앉으니, 앞에 있던 미국 젊은이들이 커피 말고 ‘칼리모쵸’를 마셔 보란다. 적포도주에 콜라를 섞은 음료인데 차갑고 탄산이 주는 청량감과 와인이 주는 에너지까지 제법 신선하였다. 칼리모쵸는 적포도주와 사이다, 과일 등을 섞어 마시는 ‘샹그리아’와 같으면서 다른 것 같았다.
다시 출발하는데 길을 잘못 들어 마을 중앙에 있는 성당을 한 바퀴 돌아가게 되었다. 아뿔싸 밥 & 테라 부부가 교회 뒷마당 벤치에 앉아 간소한 점심을 먹고 있는 게 아닌가? 평상시라면 달려가 인사 나누고 또 기념사진 찍고 헤어졌을 터인데, 오늘은 발목도 다시 아파오고 멀리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있어 “에이 또 만나겠지···” 생각하고 인사도 없이 내 갈 길을 분주하게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자주 만나고 반갑게 인사 나누었던 이 부부는 이날 이후 다시 볼 수가 없게 된다. 이들 부부와 만날 때마다 “우리 다시 못 만날지 몰라”하며 기념사진을 촬영한 것이 몇 번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날은 왜 그랬을까? “다시 보겠지~”하고 말도 없이 출발한 게 잘못이었다.
고요한 성당 뒤뜰에서 앉아있던 두 사람,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잔잔하게 미소 짓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부부와의 소중한 기억이 내 마음에 살아있는데 그날 서둘러 길을 떠나던 바보는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었다는 걸 몰랐다. 기념사진 속에 남은 그들의 모습, 그 따뜻한 순간들이 이제는 추억으로만 남아있다. 이젠 다시 만날 수 없지만, 그들의 기억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살아있다. 참으로 멋진 부부였는데··· 산티아고에서 헤어질 때 교환 해야지 하며 전화번호나 연락처를 나누지 못했던 걸 지금도 후회한다. 나는 밥 & 테라를 잃어버린 것이다.
이제 5.5km 남았다. 여기부터 프로미스타까지는 기나긴 ‘까스띠야 운하’를 따라 걷는 길이다. 운하와 미루나무가 잘 어우러져 이색적인 풍경을 관찰할 수 있는 곳임에도 내 발목은 그만 가자고 아까부터 조르고 있다. 더욱이 바람마저 앞바람이고 미루나무 꽃가루는 바닥에 떨어져 눈처럼 흩날리며 내게서 눈물과 콧물을 짜내고 있다. 저 멀리 들판 너머에는 엄청난 비가 오고 있다. 비 오기 전에 프로미스타에 도착해야 한다. 가자, 빨리 가자.
운하 입구에 다다르자 선착장에서 작은 유람선 하나가 출발한다. 저걸 탈 수만 있다면 비도 안 맞고 금방 갈 것 같은데··· 이미 늦었다. 배가 이미 방향을 돌려 출발한 것이다. 조금만 빨리 왔으면 탈 수 있었을 텐데 하고 포기하려다 스틱을 휘두르며 달려갔다. 조금 더 안쓰럽게 보이기 위해 절뚝거리며 달렸다. 웬일인가.
출발하던 선장이 나를 보고 멈춘 것이다. 나는 유람선에 올랐고 아주 여유롭게 프로미스타 입구까지 배를 타고 갔다. 많은 후기에서 이 유람선을 타고 싶은데 타 본 사람이 없다고 불평하였었는데 내가 첫 순례자 탑승객이 된 것일까?
프로미스타 입구에 내리니 비가 내린다. 수로를 따라 걷던 순례자들은 비바람에 고통스럽게 걸어왔는데 나는 너무 편하게 온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이제 숙소를 구해야 한다. 몇 군데 숙소에 연락했으나 이미 만석이란 대답뿐이다. 마지막 방법은 선착순 공립 알베르게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침대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한번 들려나 보자 하고 성당 맞은편 공립 알베르게로 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마지막 침대 하나가 남았다며 웃는다. 그것도 1층 첫 번째 방 바로 문 앞에 있는 단독 침대이다.
까미노에서 숙소를 확보하는 문제는 매일 어렵긴 했어도 어떡하든 숙소가 구해지고 결국 무사히 잠자리에 들게 된다는 것이 신기하다. 어떤 분들은 아예 태평하게 “어떻게 되겠지”하고 가는 데 그분들도 모두 문제가 없었다. 최악의 경우 몇 km 더 걸어가면 된다.
공립 알베르게는 정말 붐볐다. 한 자리도 남지 않고 꽉 메웠으니 비 맞은 몸에서 나는 냄새와 떠드는 소리로 방안은 가득했다. 간단히 샤워 마치고 짐 정리하고 있는데 카카오톡으로 점심을 같이 하자고 연락이 온다. 이미 3시가 지나 식사를 포기하고 물품 정비나 하려 했는데 먼저 도착한 사람이 식당에 가서 자리를 잡고 주인에게 간곡히 부탁했단다. 메뉴 이름을 몰라 번역기를 돌리니 ‘비둘기 고기’라는 엉뚱한 이름이 나왔지만 감으로 주문했는데 아주 맛있는 이베리코 돼지고기였다. 오늘은 모처럼 재수 좋은 날이다.
숙소로 돌아와 하루를 정리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풍성한 늦은 점심의 여파로 저녁은 또 건너뛰었다. 오늘도 정식으로 먹은 건 점심 한 끼밖에 없지만 그래도 풍성했고 행복했다. 나에게 점심 한 끼와 발 뻗어 쉴 수 있는 자리 그리고 밖에는 지금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데 나는 지금 침낭 속에 있으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 것인가?
오늘도 창 밖에서 빗소리가 들려오고, 방안에는 수십 명의 순례자들의 코 고는 소리와 땀 냄새가 가득하다.
어린이날. 어린아이처럼 행복하다.
이때까지는 밥과 테라 부부를 잃어버린 줄을 몰랐었다.
지금도 이 부부의 친절과 미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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