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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에서 온 리처드

오늘은 내가 나폴레옹이다 (32)

by Kevin Kim

2024년 5월 20일 월요일 (31일 차)

'포르토마린'에서 왕의 궁전 '팔라스 데 레이'까지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배낭을 정리하고 알베르게를 빠져나왔다. 숙소 앞 호수에서는 물안개가 올라오고 호수 건너 마을의 불빛이 아름답게 날아오고 있었다. 통상 이 시각에는 사람이 없어 혼자 걷곤 했었는데 오늘은 새벽임에도 사람이 많다.

아침 물안개가 가득한 포르토마린


마을을 빠져나오는데 등 뒤에 커다란 거구가 걸어온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온 ‘리처드’라고 소개한다. 이 청년은 이번이 두 번째 순례길이란다. 작년에 이 길을 걸었는데 자꾸 생각 나 다시 왔다고 한다. 함께 마을을 내려오니 다리를 건너 순례길이 이어지게 되어 있다. 다리 끝에는 좌측, 우측 두 개의 이정표가 있는데... “리처드! 작년에 어느 길로 갔어?" "글쎄 기억이 안 나네" 이런? 순 헛똑똑이다···

어느 길을 택하나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오른쪽 길을 택하여 숲 속 길로 들어갔다. 새벽임에도 사람들이 줄을 지어 걸어간다. 조용하고 한적했던 그래서 많은 생각과 눈물까지도 흘리며 걸었던 순례길이 소풍 길이 되어 버렸다. 어두운 숲길이 무서울 틈도 없이 시끌벅적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걸어가는 중간에도 밴이나 대형 버스가 멈추면 작은 가방을 멘 순례자들이 쏟아져 나온다.

순례자들을 내려놓고 가는 밴. 저 차량 안에는 대형 트렁크 가방들이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이들은 팔팔해서인지 뛰듯이 가는 사람도 있다. 앞에 절룩거리며 걷던 어떤 할아버지가 한마디 한다. "What's the right thing to do?" 어 이거?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말인데··· 나와 리처드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한참을 웃었다.


순례길에 무슨 정의를 논할 필요가 있겠냐 마는 그래도 이 할아버지의 외침은 마음으로 다가왔다. 궁금하긴 하다.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 급기야 앞에 정차되어 있던 대형 버스 유리창을 무심히 바라봤는데 앞 유리에 선명한 한글··· "ㅇㅇㅇ방송 성 야고보 순례길 탐방". 살짝 들여다본 버스에는 커다란 가방과 옷가지 각종 한국 음식이 가득 보인다. 전기밥솥도... 할 말이 없다.

단체 순례자들의 배낭을 다음 목적지 숙소에 이송하는 밴


하여간 오늘은 이 오스트리아 친구하고 같이 걸을 운명 인가 보다. 한국 음식 중 고기 넣고, 마늘, 파, 양파 넣고, 불판 위에 올려 구워 먹는 그것이 제일 맛있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보기에 불고기 이야기인 것 같다. 자기는 집에서도 불고기를 만들어 먹을 정도로 좋아한다고 하고, 특히 김치는 정말 좋아하는 마니아라고 자랑을 늘어놓으며 한시도 쉬지 않고 주절주절 한국에 대해 할 말이 참 많은 친구였다. 자기가 먹어본 온갖 종류의 김치 이름을 하나하나 되짚어간다.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걷다 보면 한적한 길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100kg 정도 되는 거구가 절뚝거리며 걷는다. 걱정이 되어 “무릎 아프니? 괜찮아?”라고 물으니, 작년보다 나아진 거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몸무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작년에 12kg 배낭을 가져왔는데 정말 고생을 많이 해 올해는 초 경량 배낭을 구매해서 물건 다 버리고 6kg만 챙겨 가져왔더니 날아갈 것 같단다. 어쩌란 말이냐? 나는 70kg 몸무게에 12kg 배낭을 메고 걷고 있는데 100kg이 넘는 이 거구는 고작 6kg 배낭이라고 한다.


리처드는 서양 사람치고는 걸음걸이가 느려 같이 걸을 만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오스트리아 판 마마보이였다. 모든 일, 뭘 먹고 뭘 마시는지, 어디에 있는지 수시로 사진을 찍어 빈에 있는 엄마에게 수시로 보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혼난다며 웃는다. 얼굴에 “착함”이 쓰여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산티아고 광장에 도착했을 때 금발의 굉장한 미인이 마중 나와 있었다.


오늘 까미노는 그다지 힘든 편이 아니어서 2시간 정도 걸어 10km를 왔다. 길가에 ‘곤자르 카페테리아’라는 제법 큰 식당이 있다. 갑자기 리처드는 ‘모닝 비어’를 먹어야 한다고 난리다. 아니 모닝커피는 들어 봤어도 모닝 비어라니. 하여간 나는 미국식 조찬을 주문했는데 지금까지 순례길에서 거쳐왔던 카페와는 정말 달랐다. 고작 커피와 토르티야나 크루아상이 아침 메뉴의 전부였는데, 미국식 조찬은 오렌지 주스에 커피와 토스트, 베이컨, 써니 사이드 업 2개가 아침으로 나왔다. 제법 그럴듯한 음식이다. 사람이 많아지니 서비스도 달라진 듯하다. 리처드는 정말로 1,000cc 생맥주만 주문했다.


식사를 마치고 출발하려는데 리처드가 부담이 되었다. 말이 너무 많고 질문이 많아 정신이 하나도 없다. 나는 며칠 남지 않은 순례길에서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기 때문에 조용한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이곳에 온 결정적 이유, 즉 '소명과 은퇴'란 두 가지 명제에 대해 기쁘게 설계하고 감사함으로 받을 준비가 급 선무이다. 정중하게 따로 걷다가 다시 만나자고 이야기하니 쿨하게 “오케이!” 한다.


혼자 걷는데 어느 마을 무너진 창고 벽에 다음 같은 낙서가 눈에 들어온다. “The Tide is High, But I'm Holding on. (아무리 파도가 높다 해도 나는 잘 견디고 있어요.)". 오래된 팝송 가사로 기억된다. 어느 순례자가 썼을 것 같은 이 낙서가 눈에 확 들어온다. 고통이, 고난이 아무리 심하다 해도, 참고 견디면 이겨낼 수 있다. 지금까지 걸어온 700여 km가 그랬다. 이제 100km 도 남지 않았다. 젊은이들이여 참고 견뎌라. 그러면 너희들 때가 온다. 그 길이 멀어 보여도 반드시 그때가 온다.

나는 순례길에 쓰인 낙서를 하나도 허투루 보지 않고 메모했다


아무리 사람이 많아졌다 해도 걷다 보니 한적한 길을 오롯이 혼자 걷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때가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이럴 때 생각도 하고 혼자 노래도 불러본다. 하늘도 쳐다보고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날이 맑으면 맑은 대로 기분 좋게 걸었다. 이럴 때 어떤 속삭임이 들려오기도 했다. 그게 무슨 소리든 상관없다. 내 귀에 들린 그대로가 내 마음에 들려온 이야기인 것이다. 더욱이 며칠 남지 않았기에 1분 1초가, 한 번의 사연이, 한 번의 현상이 귀하고 감사하게 다가왔다.



여기서부터는 자전거 순례자들도 눈에 많이 띈다. 하루에 80km 정도를 달려 열흘 또는 12일 정도에 완주한다고 한다. 평지와 내리막에서는 정말 부러울 정도로 빠르게 지나간다. 부럽다. 그러나, 오르막이 오면 오히려 걷는 사람이 더 나은 듯했다. 그런데 웬걸, 어떤 순례자는 전기 자전거를 타고 간다. 하~ 정말···


‘벤타스 데 나론’이란 마을까지 왔다. '카사 모라르'라는 카페에 들러 물 한 병 사서 마당에 앉았다. 이 집에서 키우는 개인지 엄청난 크기의 셰퍼드 한 마리가 내 발 위에 턱을 얹고 떡 하니 눕는다. 어찌하랴. 근데 조금 무섭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마침 크리스가 오더니 개를 불러 데리고 간다. 다행이다. 나는 강아지를 좋아하는데 여기 개들은 너무 커서 싫다.


그건 그렇고··· 크리스는 왜 항상 필요할 때마다 나타나지?

가게 주인이 키우는 듯한 셰퍼드


다시 걷다가 발을 말리고 가야지 하고 '카사 타니아'라는 카페로 들어가니 리처드가 나를 부른다. 언제 나를 앞질러 갔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이 친구 손에는 또 맥주가 들려 있다. "모닝 비어!" 외치며 반갑게 불러준다. 이제 10km 정도만 가면 된다. 리처드와 같이 걸을 운명인가? 우리는 다시 함께 출발했다.

오스트리아 리처드와 프랑스 아저씨


앞에 할머니 한 분이 다리를 심하게 절면서 걷고 있다. 알래스카에서 오셨다는 유난히 키가 작은 75세 할머니. 다가가 증세를 물어보니 딱 내 경험이었다. 전해질을 설명해 주었더니 전해질 가져왔는데 귀찮아서 먹지 않았다며 바로 물에 타 마시겠다고 한다. 당신은 이제 삶이 얼마 남지 않아 마지막 여행으로 여기를 선택하고 왔다고 한다. 무슨 병이라도 있는 것일까? 얼굴이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았다. 사연은 모르겠지만 괜히 눈물이 나려 한다. 손을 꼭 잡아드리고 앞서 갔다.


똑 같이 걸어가는 것 같아도 사연도 염려도 고통도 다 각각 달랐다


이번에는 아주머니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걷고 있다. 뭔가 이상해 보인다. 알고 보니 한 분은 시력 장애가 있었고, 다른 한 분이 손을 잡고 걷고 있다. 무엇이 이 들을 이 길에 걷게 한 것일까? 더 편한 삶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순례길을 걸어야 해결될 그런 문제가 있는 것일까? 나는 이분의 사연이 궁금했지만 차마 다가가 물어보지 못했다.

친구인듯한 두 분이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갔다


분명한 그리고 명확한 이유가 있는 순례자들은 이 까미노의 가치를 확실하게 느낄 것이다. 목표만 가지고 와서 "나는 며칠 만에 다 걸었어" 하고 자랑하는 젊은이들이나 저녁마다 잔치를 벌이며 웃고 떠드는 이 들은 오늘 만난 알래스카 할머니나 시력장애 아주머니가 느낀 '무언가'를 결코 맛볼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왕의 궁전이라는 의미의 ‘팔라스 데 레이’에 도착했다. 오늘 30km 정도를 걸었고 그동안 누계로 100만 보를 넘게 걸어왔다. 마을 입구에서 리처드와 아쉬운 헤어짐을 가졌다. 나는 여기에서 머물기로 했고 이 친구는 6km를 더 가서 '카사노바'에 숙소를 잡았단다. 리처드가 갑자기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온통 다 풀어헤친다. 뭐라는가? 궁금했는데 배낭 안에서 뭔가를 찾아 꺼내 준다. 내일 아침 출발 전 꼭 챙겨 먹으라며 ‘근육 이완제’ 두 알을 건네주고 간다. 천하의 어떤 선물보다 귀하게 느껴졌다.


까미노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었는데 또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우선은 헤어짐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커다란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섬세하고 말이 많은 친구였는데 한국에 대한 관심과 사랑도 남달랐다.

팔레스 데 레이 성당. 무사 도착을 기도하고 숙소로 갔다


오늘 숙소는 며칠 전 ‘트리아카스텔라’ 알베르게 주인이 전화로 예약해 준 숙소다. ‘알베르게 오우테이로’. 조용하고 깨끗했고 주인은 친절했다. 나에게 “오늘 한국인들이 많이 오네...” 하고 이야기한다. 이때까지 나는 무슨 이야기인지 몰랐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어제 포르토마린에서의 그 한국인 무리가 그룹으로 몰려들어 왔다.

오늘의 알베르게


저녁 시간이 되자 거실 겸 주방 쪽이 한국어로 시끌벅적하다. 밥을 하고 뭔가 요리를 하는 듯하다. 나는 원래 저녁 먹으러 시내에 나갈 계획이었는데, 지금 내 방 밖 주방에 있는 이 사람들을 뚫고 지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포기하고 쉬기로 했다.


침대에 바람막이 점퍼를 걸고 누워있는데 같은 방에 있던 젊은 자매 둘이 나에게 온다. 뭔가 주섬 주섬 건네주고 가는데 보니 한국 과자와 견과류들이다. 나는 대만 아가씨들로 착각하고 있었는데 한국에서 온 청년들이었다. 사리아에서 출발했다며 이것저것 챙겨주어 저녁 대신 잘 먹고 침대에 앉아 동영상 편집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무런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는데도 내 형편을 알아채고 직접 챙겨 주는 이 청년들의 마음씨가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들은 누구일까?


https://youtu.be/gMStZgIPkd8?si=pb2o04fXFEcRQUw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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