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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린결말 Jun 08. 2022

비 오는 날이 이렇게 좋을 줄 몰랐지

마음의 자유를 누리는 날



올해 5월은 유독 가물었다. 4월 이십 며칠에 비가 내린 뒤 6월 5일까지 비다운 비가 내리질 않았다. 고추밭에 페트병을 이용해서 수동으로 물을 세 번이나 줘야 했다. 오월 중하순에 밑이 드는 마늘에게도 조 씨 어르신네 지하수를 빌려 두 번이나 물을 줬다. 하지만 호스로 물을 준다 해도 땅 속으로 물이 스며들기란 쉽지 않다. 겉흙만 젖기 일쑤다.


숨이 꼴딱 넘어갈 것 같은 때에 다행히 비가 왔다. 굵은 빗줄기는 아니었지만 하루 종일 내린 덕에 해갈에 도움이 되었다. 5일 일요일 하루 비로도 충분하다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지냈는데 웬걸, 화요일에도 아침부터 굵은 비가 내렸다. 고추밭고랑에 물이 고일 정도로. 물론 그건 구배가 맞지 않는다는 뜻이니 내일쯤 삽질로 땅의 기울기를 다시 맞춰야 하지만.


도시에 살 때는 비가 오는 날이 지금만큼 좋지는 않았다. 비 오는 날 지하철과 버스를 타며 출근하는 길은 얼마나 꿉꿉했던가. 젖은 바짓단이 다리에 붙어 치덕 거리는데 옆에 서 있는 사람의 젖은 우산 덕에 더 젖어야 했다. 아침에 헤어드라이어로 열심히 말린 머리는 습기에 덥수룩해졌고 숨어 있던 돼지털 머리카락이 일제히 솟구쳐 올랐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어딘가로 이동해야 하는 삶에서 비는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해물파전에 막걸리를 먹기에 최적의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 외에는 비가 좋을 이유가 딱히 없었다.



데크 나무판자 사이 틈으로 자라는 잔디는 뽑아도 뽑아도 계속 자란다.


이동할 일이 없는 이곳에서 비는 그저 반가운 손님이다. 나는 다락방 책상이나 작은방 책상에 앉아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글도 쓰며 빈둥거린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밭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사무실에서 하는 일은 비가 와도 상관없이 할 수 있지만, 밖에서 하는 일은 비가 오면 할 수 없다. 공식적으로 주어지는 휴가인 셈이다.


물론 비가 오지 않아도 밭일이 없을 때는 집에서 개인적인 일을 한다. 하지만 그 맛이 다르다. 여기서 산 지 두 해가 다 되어가지만, 햇살 좋고 바람 좋은 날 집 안에 있는 일이 아직도 백 퍼센트 마음 편하지만은 않다. 직무 유기의 죄를 짓는 기분이랄까. 날이 좋으니 밖에서 건설적인 일을 해야 할 것만 같다. 없는 일도 찾아내서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였다. 아니야, 지금 이거 맞아, 이러려고 여기 온 거야, 돈 벌려고 일할 거였으면 뭐하러 여기서 일을 해, 도시에서 계속 일하지, 잘하고 있어.


작년까지는 혼자서 동네 어른들 눈치까지 보기도 했다. 어쩌다 만난 어른들이 “아니, 집에 콕 박혀서 나오지를 않어. 뭘 하는겨?” 하고 물으면 그게 꼭 “젊은 사람이 저렇게 일도 안 하고 게으르게 집에만…쯧쯧” 하고 타박하는 소리로 들렸다. 이 놈의 자격지심은 당최 떨어지질 않네.


여기 어른들은 일평생을 무슨 일이든 몸을 쓰는 일을 해오신 분들이다. 팔십 가까이 되어서도 경운기도 몰고 오토바이도 타면서 고추 농사며 강낭콩 농사며 벼농사며 온갖 농사를 짓는다. 그러니 시퍼렇게 젊은 이들이 집 안에만 틀어박혀서 나오질 않으면 한심하고 게으르게 여겨질 것이다. 아, 물론 게으른 것은 맞다. ‘한심’의 여부는 좀 다른 문제고.


하지만 비가 오는 날에는 밖에서 일을 할 수 없다. 정정당당하게 집에 콕 박혀서 빈둥거릴 수 있다. 나를 다그치는  자신과 동네 어른들의 시선 - 그것도 내가 만든 것이겠지만 -에서 온전히 해방된다는 뜻이다. 가스활명수라도 마신 것처럼 가슴팍이 시원해진다.


올해부터는 뭐 하느라 집에서 안 나오냐고 묻는 어른들에게, 입으로는 “저 집에서 일해요. 컴퓨터로 하는 일이요.”라고 말하고 손으로는 키보드를 마구 세게 두드리는 시늉을 했다. 물론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이다. 여기 어른들에게 컴퓨터로 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나는 이제 '어려운 일 하는 사람'으로 포지셔닝되었다.



작디 작은 집단에서도 부정적인 피드백은 받지 않으려고 용쓰며 살고 있다. 그분들이 딱히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또 그렇다 한들 내게 커다란 피해가 오지도 않을 텐데. 그저 뒤에서 뭐라 뭐라 몇 마디 나누시는 게 다 일 텐데.


나는 왜 늘 스스로를 억압하는가. 왜 자진해서 자유를 박탈하는가. 풀리지 않는 숙제이다. 비 오는 날은 그런 숙제를 잊게 만든다. 자연이 선물해주는 마음의 자유. 비, 기꺼이 추앙이라도 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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