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린결말 May 25. 2022

손님 초대의 슬픔과 기쁨

손님 초대는 싫지만 좋은 풍경은 함께 보고 싶어



7명의 식구들이 하룻밤 자고 돌아갔다. 20년 7월 말에 이사를 온 뒤 8월 중순에 친정 식구들을 처음으로 초대했다. 토요일 점심과 저녁, 일요일 아침 고작 세끼를 먹고 돌아갔는데 남편과 나는 파김치가 되었다. “왜 벽지는 흰색으로 했니 나중에 누렇게 변색되는데, 주방까지 어찌 흰색으로 했니 때 잘 타는데, 주방은 또 왜 이렇게 작니, 손님 화장실을 왜 코딱지만 하게 만들었니, 손님들 오지 말라고 그런 거니, 여기는 왜 방음이 안되니” 등등 한 사람이 한 마디씩만 쏟아대도 순식간에 일곱 마디가 되는 말의 폭격 속에서 정신이 혼미해지고 말았다.


그 경험 이후로 이 집에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것이 더욱 부담스러워졌다. 나는 요리에도 소질이 없고 주방의 요리기구나 식기 등은 2인 가구에 세팅되어 있다. 여러 명의 손님들에게 내어줄 이불과 베개도 부족하고 잠 잘 곳도 마땅치 않다. 여름에는 찜통 겨울에는 냉골이 되는 다락은 봄과 가을 아주 잠깐의 시간만 이용 가능한데,  창고가 있어서 그런가 할아버지 냄새가 난다. 냄새를 덮을 방향제는 고양이 때문에 사용하기 어렵다. 좁은 거실에는 고양이 화장실이며 물그릇, 밥그릇도 있어 정신이 없고 타일 바닥에서는 여름에도 냉기와 습기가 올라와서 손님을 재우기에 마땅치 않다. 이래저래 여러 명의 손님을 맞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집이다.


사실 부족한 건 집 만은 아니다. 나는 상당히 내향적인 사람이다. 약속이 취소되면 아쉬우면서도 기쁘고 모임에서 웃고 떠들며 누구보다 재밌게 놀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늘 공허한 기분에 사로잡히곤 한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읽었던 이야기는 딱 내 얘기를 하고 있네 싶었다. 내향인은 집에 손님이 오면 집도 더 이상 자신의 집이 아니게 되고 내 침대에 누워도 편하지 않으며 손님이 떠나는 순간까지 계속 일하는 기분이 든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그렇다. 손님이 있는 1박 2일 동안 나는 격무에 시달리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친애하는 사람들을 데려다 옆에 앉혀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날들도 있다. 모종판에서 새싹들이 생의 에너지를 잔뜩 품고 솟구쳐 올라올 때, 다 자라지 않은 여리고 아삭한 열무로 비빔국수를 말아먹을 때, 모기도 파리도 없는 선선한 봄의 오후에 서쪽 대나무 숲이 마당에 시원한 그림자를 만들 때, 거의 모든 나무들이 짙은 초록색으로 변신을 마친 후에 집 앞 오래된 단감나무만은 뒤늦게 틔워낸 잎들이 여전히 여리고 싱그러운 연둣빛으로 빛날 때, 집 옆 도로가에서 제 혼자 떨어진 굵은 밤톨을 주울 때, 나만 이 풍경을 보는 것이 미안해진다. 좋아할 것이 눈에 선히 보이는 그들을 옆에 두고 함께 보고 싶다.



화사한 꽃밭 하나 없지만 매일 보아도 질리지 않는 오월의 오후 세시 풍경



하지만 그런 마음도 잠시뿐. 뒤돌아서 구석구석 지저분한 우리 집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걸 다 언제 치우나 싶어 까마득해진다. ‘편하게 살자’가 모토인 우리가 사는 이 집 곳곳에는 게으른 흔적들이 가득하다. 제 멋대로 처박힌 짐들로 가득한 창고, 농사 옷이나 시시콜콜한 물건들을 무질서하게 집어넣은 박스가 놓인 현관, 다 먹지 못한 서리태 포대자루가 놓인 작은방. 맞춤하게 깔끔한 곳이 한 군데도 없다. SNS에 올리는 말끔하고 예쁜 네모난 사진 바깥으로는 차마 내보일 수 없는 지저분함이 자리하고 있다. 네모를 뺀 나머지가 이곳의 실상이지만 그걸 보여줄 용기는 없다. 친애하는 이들은 네모의 이미지만 보고 이곳을 흠모한다. 나는 그렇게 사기꾼이 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종결되었다. 이제 더 이상 코로나 핑계를 댈 수도 없어졌다. 드디어 결전의 날을 잡았다. 그날까지 사부작사부작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해야 한다. 미리 사람들에게 집이 성실하게 지저분하다고 말해 뒀지만 지저분함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를 테다. 내 눈에는 이 정도면 깔끔하지 싶어도 그들은 흠칫 놀랄지도. 그 김에 집안 대청소를 한다는 생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들이라면 내 집의 먼지보다는 창 밖의 소박한 풍경에 더 큰 마음을 주겠지. 풍경만 믿고 간다.



*메인 사진 출처:  Maddi Bazzocco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귀농 아니고 귀촌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