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은 비까지 내리니 마음이 한갓지고 좋구나
굵은 비가 내리는 월요일이다. 비가 오는 날에는 마음에 여유가 넘친다. 밭에 나가서 풀이라도 뽑아야 한다는 일말의 의무감에서 해방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통계 조사 아르바이트도 어제 다 마무리했기 때문에, 마음에 책임감이라고는 티끌만큼도 남아 있지 않아 가벼웁다.
가벼운 마음으로 가벼운 글을 적어본다. 야, 비 오는 월요일에 네가 뭘 했는지를 굳이 시간을 들여서 내가 읽을 필요가 있냐? 싶은 그런 거. 일기 같은 거. 아무것도 얻을 게 없는 거. 그냥, 아무 힘도 없는 거.
일주일에 세 편은 쓰겠다던 다짐이 두 편에서 한 편으로 줄더니 다짐 따위 사라진 지 오래다. 다짐으로 할 수 있는 일인가 싶기도 하다. 브런치의 발행 버튼은 왜 이렇게 무거운가?
브런치는, 나의 '꾸준함'이 '재능'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자주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메시지를 보내는 데 말이지. 꾸준함이 재능으로 거듭나는 게 아니라 꾸준함 자체가 재능입니다. 그 재능 나도 갖고 싶다고요.
꾸준하지 못한 여러 이유가 있는데, 오늘은 가볍기로 했으니까 그런 생각일랑은 접어 버려야지. 대신 제목에 적은 것처럼 토마토 청 만든 이야기나 해야지.
썬드라이 토마토와 토마토 바질 청을 만들겠다고 남겨둔 방울토마토가 말라비틀어지는데도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손도 대지 못하다가, 오늘에서야 뚝딱 만들었다는 이야기.
바질 페스토 만들겠다고 키운 바질이 다 커서 이제 꽃대까지 올라왔는데, 역시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방치되어 있다. 아침에 잠시 텃밭에 나가보니 애써 키운 -이라고 말하지만 지 혼자 알아서 큰 - 바질이 강한 빗줄기에 죄다 쓰러져 있는 게 아닌가. 뭐, 이제 놀랍지도 않고.
아아, 그렇다면 페스토고 뭐고 일단 토마토 바질 청부터 만들어보자 하여 시작된 부엌일. 일단 씻은 토마토 물기를 닦고 반으로 잘라 종이 포일을 깐 오븐 팬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소금과 마른 허브를 솔솔 뿌리고 올리브유를 살살 발라 섭씨 100도의 오븐에 넣어 두 시간 즈음 돌렸다. 이건 썬드라이 토마토.
씻은 토마토에 칼로 십자 선을 내고 끓는 물에 넣어 15-20초쯤 데치고 건져서 찬물에 넣은 뒤 껍질을 하나하나 까준다. 거기에 설탕을 토마토 무게의 2/3 정도 넣고 레몬을 씻어 레몬즙을 내어 넣어주었다. 레시피에는 반 개를 짰다는데, 반절 잘라 쓰고 남은 레몬은 결국은 버리게 되길래 하나 다 짜서 넣어 주었다.
레몬 제스트도 넣고 싶었으나 그 어떤 레시피에도 제스트는 들어 있지 않아서 참았다. 보통 레몬 껍질에서 레몬 맛과 향이 더 많이 나기 때문에 베이킹에서는 제스트가 많이 쓰이는데, 토마토 바질 청은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서 레몬 제스트가 어울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설탕과 레몬즙을 넣은 토마토를 살살 섞어 주면 설탕이 녹으면서 액체가 된다. 텃밭에 쓰러져 있던 바질을 두 줄기 끊어 와 깨끗이 씻고 물을 털어내어 손으로 갈기갈기 찢어서 토마토 설탕물에 넣어주고 다시 잘 섞어 주면 끝.
열탕 소독한 병에 담아서 하루 정도 상온에 뒀다가 냉장고에 넣어 보관한다고 한다. 사실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서 어떤 맛일지 모르겠는데, 며칠 전 텃밭에서 내가 기른 맛없는 토마토를 먹어 없애느라 설탕에 재웠다가 먹었더니 너무 맛있는 거라. 그렇지. 역시 설탕이야 싶은 게.
설탕에 절였는데 맛없기가 더 힘들 것이다. 레몬즙은 살짝 상콤한 맛을 낼 테고, 바질은 토마토 단짝이니까.
회사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시간을 다 쏟아부어야 하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고작 아침나절에 밭일을 좀 하거나 전화로 해결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일을 하는 건데, 왜 이렇게 여유가 없다고 징징대는지. 회사 다닐 때는 어찌 살았나 싶다.
에이, 그냥 게을러서 그런 거지 뭐. 쓰러진 바질, 대체 어떻게 할 거야. 아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