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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보영 Jul 18. 2019

시론 <나는 멜론을 좋아합니다>

시론 <나는 멜론을 좋아합니다>     



  시로 여는 세상에 시와 함께 발표할 시론을 써야 한다. 지금 쓰는 이 일기가 얼렁뚱땅 시론이 되면 이득일 것이다.     


  오늘 뭐 했지. 유령을 만났다. 유령은 동네 친구의 이름이다. 내가 사는 역과 유령이 사는 역의 중앙에 고가다리가 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 다리를 굴다리라고 부른다. “굴다리는 어떻게 생긴 거지? 굴처럼 구멍이 뚫려 있는 건가?” 하고 물으니 유령은 “굴처럼 아치형으로 생긴 걸걸?” 하고 대답한다. 자전거를 타고 굴다리까지 가서 유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령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리 쪽을 보니, 유령은 내 앞을 지나쳐 십 미터 앞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나는 유령이 내 앞을 지나간 것도 모른 채 서 있었던 것이다. 전화를 받으며 유령에게 “뒤돌아 봐! 나 여기 있어!” 하고 외쳤다. 그런데 내가 안 보이는지 계속 헤맸다. 유령의 입장에서는 인간이 유령이어서 안 보이나 보다. “뒤! 뒤!” 하고 말할 때마다 유령이 몸의 방향을 틀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아니, 앞, 아니 오른쪽!”하고 외쳤다. 주변에 있는 인간이 나밖에 없는데 보지 못하는 걸 보니 왠지 섬뜩했다. 우리가 차원이 다른 세계에 속해 있는 기분이 들었다.      


유령은 흰 모자에 흰 원피스를 입고 있어서 정말 유령 같았다. 우리는 근처 카페에 가서 아포가토와 콩가루 셰이크를 주문해서 나눠 먹었다. 우리 동네에는 아주 큰 정신 병원이 있다. 건물 전체가 정신 병원이고 정신 병동이 함께 있는 병원이다. 유령은 불면증 때문에 졸피뎀을 처방받으러 내원했다. 로비에 한기가 돌았다. 한 사람이 절도 있게 오른쪽과 왼쪽을 번갈아 바라보며 ‘싫어!’ ‘싫어!’하고 외치고 있었다. 또 한 사람은 목을 앞으로 빼고 시계만 째려보다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냈다. 카운터 직원은 전화를 받고 있었는데 "멜론? 멜론이오? 멜론? 아니 멜론? 멜론이라고요? 멜론? 아아 메로온!” 하고 멜론 파닉스 공부를 하는 것 같았다. 유령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정자세로 가만히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다른 환자가 부동의 유령을 보고 흠칫 놀라는 것을 보고 유령도 흠칫했다. "멜론은 껍질을 까서 잘게 잘라서 속살만 가져오세요” 하고 카운터 직원이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 입원 환자가 멜론을 좋아해서 몇 통 가져와도 되느냐고 보호자가 물었던 것인데 환자가 멜론으로 자신의 머리통을 깨 자살할 위험이 있으므로, 껍질을 까서 속살만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며칠 후, 이 병원에서는 한 사고가 일어났다. 이것은 이 동네 주민인 유령과 내가 아닌, 유령의 친구 (그녀는 우리 동네에서 근무한다. 이런 우연이) 가 알려준 뉴스이다. 한 환자를 가족들이 강제 입원시키려고 했고, 그것에 저항한 환자가 7층으로 올가가 투신자살을 한 것이다. 남일처럼 들리지 않았다.      


  시론을 써야 하는데 왜 나는 이런 이야기나 쓰고 있는 거지. 나는 멜론 이야기에서 울컥했다. 피자를 좋아해서 다행이다. 정신 병동에서 피자를 금지하지는 않겠지. 피자로 내 머리를 후려쳐 깨부술 수는 없으니까... 끽해야 피자로 머리를 덮을 수는 있겠지...추울 테니까...그런 것까지도 뭐라고 하진 않겠지? 그 환자는 그저 멜론을 사랑하는 인간일 수도 있었을 텐데. 사랑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가져가서는 안 되는 상황. 그게 시인가. 당신은 시를 좋아하지만 시는 껍질이 단단하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당신과 시를 홀로 두었을 때 당신은 그것으로 당신의 머리를 깨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과 함께하고 싶거든 껍질을 벗겨 속살을 토막 내 가져오세요. 우리 병원은 그것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아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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