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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nisland May 01. 2020

꽃을 사는 남자

믿고 맡겨주세요. 디자인, 의사소통의 중요성


꽃을 사는 남자


5-6년 전,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튤립 한송이를 산적이 있었다.

(이 일이 벌써 이렇게나 오래되었다니...)

지하철 역과 연결되어 있는 복합 쇼핑몰 같은 곳에 입점한 꽃 가게에 들러서 특별한 날은 아니지만 여자 친구의 마음을 조금 더 기쁘게 하기 위해 어떤 꽃이 적당할까 고민하며 가게로 들어섰다.

꽃을 잘 몰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가게 주인이자 플로리스트로 보이는 분이 튤립 하나를 추천해주셨고 연한 분홍색이 마침 여자 친구에게도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그 튤립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믿고 맡겨주세요.

그리고는 플로리스트 분이 직접 포장을 하기 시작했는데 내가 평소에 알고 있던 투명 필름지로 꽃다발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누런색 종이로 꽃을 둘러싸는 것이 아닌가?

꽃다발은 자고로 투명 필름지로 만들어진 꽃다발이 최고라고만 알고 있던 나는 이렇게 해주세요 하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깐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몇 초 뒤 플로리스트 분이 누런색 종이 위에 투명 필름지를 두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필름지까지 덧대어 완성된 꽃다발은 내가 알고 있던 투명 필름지로 포장된 꽃다발보다 훨씬 보기 좋은 데다가 두 가지의 전혀 다른 질감과 색상의 포장지가 뒤섞여 특유의 감성을 뿜어내고 있었다.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방식의 꽃다발 포장은 아주 옛날, 촌스럽고 진부하기 짝이 없는 다 지나간 유행이었고 요즘은 다른 트렌드가 대세인데 그걸 몰랐던 것이다.

꽃다발을 받아 들고 가게를 나오면서 참견하지 않기를 잘했구나 싶었다.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상품


한편, 플로리스트 분께서 고객인 나에게 어떤 포장을 원하는지, 포장 과정이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되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이다라는 말을 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물론 꽃다발을 만드는 시간은 아주 짧았고 나도 우려한 부분을 먼저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적으로 누군가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자면, 디자인을 의뢰한 클라이언트가 디자이너에게 바라는 마음이 이런 것이 아닐까?

디자이너의 일은 고객에게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것을 판매해야 하는 일이다.

마치 봉이 김선달이 한강 물을 떠다가 팔았다는 것처럼 일종의 입발림과 사기가 난무할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하고 모호한 경계에 서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단 돈 얼마라도 지불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러한 중간 과정에서 고객이 결과물을 예상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3D, 2D 등의 시각적인 자료를 사용한다.

이것은 일종의 도구를 이용한 의사소통 방식이라고 볼 수 있으며 원활한 의사소통은 최종 결과물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높이기 위해 필수적이다.

결과물에 대한 시각적인 정보 외에도 진행 상황 공유하기 위한 미팅이나, 일정에 대한 연락 등

이러한 소통은 결과물에 대한 이해를 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고객의 신뢰도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사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사람은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 앞서 쌓아온 경험을 보고 찾아온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앞의 경험이나 포트폴리오들은 고객 자신이 구매할 것과 비슷할 수도 있는 것이지 자신이 구매할 것아니기 때문이다.



디자인이란 꽃다발을 선물하는 것과 같다.


다시 꽃다발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꽃가게에 방문했을 때의 나는 이쁜 꽃다발을 요청하면서 내 기억 속 가장 이뻤던 꽃다발인 10여 년 전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받아봤을 법한 투명 필름으로 포장한 꽃다발을 떠올렸고, 플로리스트가 이쁜 꽃다발로 제안한 것은 그 당시 유행하 두 가지 포장지가 섞인 것으로 고객이 떠올린 것과는 차이가 있었지만 트렌드와 포장 방식 등을 고려했을 때 훨씬 더 요즘의 이쁜 꽃다발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여자 친구의 입장에서는 남자 친구에게 정확히 꽃다발을 원한다고 말한적은 없었다.

하지만 모두에게 언제나 반갑고 긍정적인 의미로 다가갈 수 있는, 특히 연인 사이에서는 더욱 그 의미가 큰 꽃다발을 선물하는 것은 관계에 있어서 남다른 의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넨도 디자인 책 넨도 디자인 이야기에서도 언급된

"디자인이란 꽃다발을 선물하는 것과 같다."

라는 말은 단순히 상대방의 요청에 수동적으로 응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과 이해를 통해 '상대가 본질적으로 원하는 것'을 예측해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디자이너로서 꼭 지녀야 할 본질인 대상이나 상대방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자연스러운 관찰과 이해 그리고 배려를 '꽃다발을 선물한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디자이너를 찾아온 고객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사례와 설명 등을 통해서 디자이너에게 전달하고 디자이너는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든 내용을 취합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객의 속 뜻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관찰하는 것이다.

이쁘고 따뜻한 느낌의 집, 세련되고 미니멀한 가게 등 고객이 제시한 사례와 설명은 고객이 알고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설명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조금 더 전문가인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고객과 소통하며 진정 고객이 원하는 것이 그 사진 속의 결과물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인지 아니면 사례를 통해 다른 무엇인가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캐치해야 만한다.

디자이너는 항상 클라이언트가 요구한 것보다 더 나은 것을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카스틸리오니 전 @ 예술의전당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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