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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nisland Jan 19. 2020

변화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디자인 트렌드 / 쇼 윈도우 디자인

혹시, 나도 파괴의 왕...?


웹툰 작가 주호민 님이 과거 몸 담았거나 지나온 곳들이 모두 없어지거나 존폐를 논할 만큼의 큰 사건들이 발생해서 파괴의 신이라고 불리던데...

어쩐지 도 뒤를 돌아보니 지나온 곳들사라지거나 문을 닫은 경우가 많았다.


군 복무 시절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된다는 말년 복무하던 부대가 해체되어 하신 말년 병장의 몸으로 다른 부대옮겨 러온 돌 역할을 했었고,

편입 전 다녔던 인테리어 디자인 학과는 졸업 후 학생수가 줄어들어 결국 사라지고 크루저 디자인 학과로 바뀌었으며,

대학교 시절 전공했던 환경 디자인 학과에서는 로를 희망하던 인테리어 디자인 분야가 사양산업이라는 말을 줄기차게 들어왔었는데 실무를 시작하고 밥 먹듯 하는 야근에 경영악화로 문 닫는 회사들을 보니 왜 모두들 그런 말을 했었는지 대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심지어 다녔던 학교의 환경디자인 학과 다른 유망한 디자인 전공 학과에 통합되 사라졌으니 말이다.

모두가 아니라고 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미련하게도 첫회사를 다니면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 알게 된 사실인데...

나의 생일 4월 14일은 세계적인 호화 유람타이타닉이 대서양 바다 한가운데에서 침몰한 날짜였다.

내가 태어난 날 밤 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은 차가운 바다 위에서 뜨겁게 사랑 나눴던 것이다.

(물론 나의 출생일과는 다른 년도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여기서 끝인가 했다.

이제는 나도 좀 안정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기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지금 회사에서 맡고 있업무 곧 사라질 것 같은 불길한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해 은 촉들을 또 이리저리 굴려보았다.

난 왜 이럴까?

왜 나의 인생은 항상 끝물이나 막차를 타는 걸까?

고 생각했었는데,

이것은 또 다른 기회가 아닐까? 그래 모든 건 변하는 거야.

는 정신 승리로 제는 관점을 조금 바꿔볼까 한다.



윈도우? 쇼 윈도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Window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Microsoft사의 컴퓨터 프로그램이 생각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현재 근무하는 회사의 인테리어 팀으로 전국 브랜드 매장의 시즌 쇼 윈도우 교체와 매장 유지관리를 담당하고 있어 반사적으로 Show-Window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패션이나 건축, 디자인 분야에서 익숙하게 사용하는 쇼 윈도우라는 단어는 매장의 외벽에 상품을 진열, 전시하기 위해 창문의 형태로 설치한 구조물을 말한다.


그렇다...

나의 주 업무 중의 하나인, 그것도 내가 가장 흥미를 느끼던 업무인  윈도우가 패션 브랜드에서 서서히 줄어들고 있 것이다.

최근 미우미우, 구찌, 버버리 등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의 새로운 매장 인테리어를 유심히 살펴보면 예전과 같이 박스 형태의 디스플레이 공간은 사라지고 매장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스루 방식의 통창으로 설치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기존의 쇼 윈도우라는 단어의 개념이 서서히 사라지고 매장 내부를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시스루 윈도우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GUCCI / BURBERRY 매장 쇼 윈도우 (2019. 12)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매 시즌 전국, 전 세계에 분포해 있는 수백 개 매장의 쇼 윈도우를 새로운 콘셉트로 교체한다는 게 말이 쉽지 전국 각 매장을 대상으로 1년에 4번에서 많게는 9번 까지도 윈도우를 교체 위해 소요되는 물리적 비용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지출을 줄이기 위해 다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라지는 것 그리고, 남아 있는 것


사라지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남는 것은 무엇인지, 지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윈도우의 본연의 역할은 무엇인가?
바로, 상품의 진열과 시즌 콘셉트의 전시, 홍보이다.


작년 크리스마스 시즌 투덜거리기 좋아하는 물류팀 담당자분이 미친듯한 해외 자재, 디스플레이 소품 수입에 지쳐 점심시간에 이런 말을 했었다.

이 놈의 윈도우도 이젠 방법을 바꿔야 한다고.

쓸데없이 큰돈 들여서 한번 쓰고 버릴 자재들 계속 낭비할게 아니라 모니터 한대만 달아놓고 영상으로 틀면 되지 않냐고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오래전에 보았던 한 가지 디자인이 떠올랐다.

무려 10년 전 증강현실, 인터랙션이라는 용어들이 디자인 분야에서 화두로 떠오르던 그때 그 시절 일본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도쿠진 요시오카 님께서 에르메스를 위해 디자인한 인터랙티브 쇼 윈도우가 그것이다.


Maison Hermès Window Display by Tokujin Yoshioka (2009)

영상 : https://youtu.be/gyNHJQzn3pw


에르메스의 윈도우 내부에 상품이라고는 단 한 장의 스카프만 걸려있다.

그리고 스카프와 동일한 높이에 한 여성의 얼굴이 송출되고 있는 화면이 설치되어 있다.

일정 시간마다 여성은 자신의 앞에 걸려있는 스카프를 향해 입으로 바람을 후~ 하고 분다.

영상에서 바람이 나올 리가 없으니 정확히 말하자면 바람을 부는 제스처를 취한다.

영상 속 행동일 뿐이지만 스카프는 그 타이밍에 맞춰 마치 진짜 바람이 자신을 밀어냈다는 듯 펄럭인다.


윈도우 내부에는 장식을 위한 뽀샤시한 조명도, 화려한 소품도 하나 없이 비어있다.

여기에서 시간이 지나도 쇼 윈도우에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쇼 윈도우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은 매장 앞 거리를 지나가는 잠재 소비자들에게 상품과 브랜드를 매력적으로 어필하여 그들의 발걸음을 매장 안으로 유도하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보기 좋게 이쁜 것, 화려한 장식의 나열은 그저 소비자에게 상품과 브랜드를 알리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덕지덕지 붙어 있던 장식들을 모두 털어내고 마주한 본질은 씨앗과도 같아서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거기서 부터 다시 시작하자.






세상은 멈춰있지 않고 계속 변화한다.

어느새 인터넷에서 사진보다 영상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이 더 익숙하고 편리해진 요즘, 디자인이나 인테리어 건축 분야에서도 영상이나 미디어를 이용한 디자인의 비중이 커져가고 있다.

이런 흐름을 대변이라도 하듯 디자인 프로그램과 표현 기법에도 영상이나 3D 모션 그래픽 작업을 고려한 프로그램들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세상에 전자책이 나타났다고 종이책이 사라지지 않듯, 유튜브가 대세라도 누군가는 아직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듯, 그 변화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본질적인 것들은 변화의 중심에 탄탄하게 남아서 새로움과 만나 오히려 강력한 시너지를 낸다.


변화를 대비해서 나 자신은 무엇을 버리고 또 무엇을 남겨둘 수 있을까?

서핑을 처음 배우러 갔을 때 기초 수업에서 강사님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서핑은 자기가 가고 싶은 데로 가는 게 아니에요, 파도를 따라가야 돼요, 안 그럼 죽어요."


지금 눈 앞에 오는 변화의 파도가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이거나 내가 그리던 모습이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탄탄한 무언가가 있다면 흔들리지 않고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혹시 모를 일이다 놓칠 뻔했던 다양한 기회와 가능성들을 새롭게 발견하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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