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차가 되기 전, 잠깐 멈추기로 했다
해를 넘기니 어느덧 1n년 차보다 곧 20년 차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연차가 되었다.
이런 고연차에 들어선 지금, 나는 회사 생활에 아주 작은 쉼표를 찍어보려 한다.
왜냐고 그 이유를 누군가 적어보라 하면 끝없이 나열할 수 있겠지만, 그 이유가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누군가에겐 공감 가득한 이유로 느껴질 것이고, 누군가에겐 핑계로 보일 테니 말이다.
예전에 아이 키우기와 일하기 사이에서 버거워하던 한 선배는 말했다.
"우리같이 차장급 고연차에 휴직 쓰긴 어렵지.. 그냥 다녀야지."
수동적인 나는 그 이야기를 그대로 새겨들었다.
'그래, 고연차는 휴직 불가.'
하지만 지금에서야 그 말이 나에게 메아리처럼 되돌아와 울렸다. 괜한 오기와 함께.
내 인생의 한 절반 쯤은 왔을까. 이 시점에서 나에게 정말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다 컸다고 생각했던 아이는, 일찍 깨어버린 아침이면 어김없이 출근하는 나를 붙들고 운다.
겨우 단어를 이어 붙여 말하는 유아기 아이가 울면서 엄마 바지가랑이 붙잡던 때 만큼이나, 자기 할 일 스스로 다 할 줄 아는 초등학생이 엄마 가지 말라며 우는 모습 역시 엄마 마음은 미어진다.
이런 날이면 사춘기 아이가 학교가기 싫은 핑계를 찾듯, 나는 왜 회사를 다녀야 하는지 이유를 다시 찾아본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돈이다.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한, 아이들에게 금수저는 못 물려도 적어도 나중에 짐이 되는 부모는 안되기 위한, 그 최소한의 대책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맞벌이를 해야 겨우 흑자 경영이 가능한 요즘 시대에, 직장을 이렇게 다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임을 모르지 않는다.
단순히 내 소중한 시간을 상납하고 시간과 교환된 돈을 받는 대가만의 이유로 별 생각 없이 회사를 다니고 싶지는 않다. 누구든 그러하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가정에서 써야할 시간과 에너지를 일터로 더 끌어와 할애하고 싶지도 않다.
어쩌면 직책과 승진에 대한 일말의 욕심이 없이 다니는 나같은 사람은, 경쟁을 기본 룰로 삼아 발전하는 회사로써는 다소 배반적인 태도의 직원일지도 모르겠다. 소위 회사가 바라는 인재상의 범주에는 들지 않는 것 같다.
도돌이표로 끝나지 않는 생각의 끝에서 내린 나의 결론, 그 것은 내 회사 생활에 작은 쉼표를 두기로 했다는 것이다.
사람은 초심이란 것을 쉽사리 망각하고 살아간다. 나 또한 어렵게 내린 이 결론의 초심을 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다.
지지고 볶는다는 표현이 맞을까.
어느 정도 적당히 살아본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자면, 그냥 살아가던 그 시간, 내 사람들과 살을 부대끼며 울고 웃는 그 시간 속에 나의 행복이 있었다.
바람처럼 흘러갈 이 행복한 시간들을 붙잡아, 내 행복의 순간들을 고이고이 적어보고 싶다.
그러다보면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대한 물음과 그 해답을 찾기위해 맴돌던 생각의 도돌이표에서 벗어나 언젠가는 마침표를 찍어낼 수 있지 않을까.